▲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세의 삶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한적이 없다. ⓒGetty Image

이 세상에는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외양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속이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착각하여 지상에서의 행복을 끝없이 추구합니다. 인생은 연기(시102:3)나 그림자 같다는 것(시102:11)은 일반인들도 잘 아는 속담이지만,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것처럼 잘 잊어버리거나 소홀히 여겨지는 것은 없습니다. 친지의 부음을 듣거나 가족이나 친지의 장례식에 참여할 때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도 그 일이 지나가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싶게 죽음을 잊어버릴 뿐 아니라 죽을 운명까지도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경솔하게 지상에서 영생을 누리기나 할 것처럼 살아갑니다(III.ix.2).

그리스도인이 현세의 삶을 대하는 태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세 생활은 그 자체만을 본다면, 불안과 동요와 불행이 무수히 많고 순수한 행복은 아무데도 없으며,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도 모두 확실치 못하며 곧 사라질 안개와 같이 허망하며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일이 뒤섞여 있을 뿐입니다(III.ix.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들이 현세 생활의 허무함을 깨닫고 올바로 전진할 수 있도록 여러 모양의 십자가의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칼빈은 결코 신자들의 삶이 이 세상에서 위축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그의 사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사실, 현세의 삶은 내세의 삶에 비추어볼 때, 경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내세의 삶을 얻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하고, 또 하나님의 선하심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학교인 한, 현세의 삶은 결국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로서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III.ix.3). 칼빈은 결코 현세 삶의 즐거움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속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현재의 삶

칼빈은 이어지는 『기독교강요』 제3권 제10장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을 현세 생활에서 즐겨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III.x.1-6).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종류의 역경에 대해 말한 것은 오직 우리의 눈을 그분께 향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목적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칼빈은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내세에 대한 열망은 신자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위로를 마련해 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세상에는 부귀와 영화, 권세를 누리며 깊은 평화를 즐기고 온갖 환락에 젖어 사는 악한 자들이 많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그런 사람들의 사악한 행동 때문에 세상에서 마치 “도살당할 양”(롬8:36) 같은 처지에 있는 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의한 현실은, 시편 기자까지도 악한 자들이 현세에서 창성하는 것을 너무 깊게 생각했을 때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할 만큼(시73:2-4), 신자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는 바울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높이 들어 하늘의 것에 전념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일을 극복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악한 자가 형통하고, 또 그들이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재앙이 그들에게는 없을지라도(시 73:2-4), 마지막 때에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날에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며(계7:17), “자신과의 숭엄한 친교에 들게 하셔서, 결국 그들을 자신의 행복에 참여하게 하실 것”이지만, “그러나 지상에서 창성한 악한 불신자들은 철저히 몰락시키실 것”(III.ix.6)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렇게 현세에서 내세의 삶을 명상하고 준비하며 그에 비추어 현세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삶을 위해 필요한 수단들을 사용해야 하며, 또한 기쁨과 즐 거움을 주는 것들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삶을 사는 방법

칼빈이 10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바로 “현세의 삶과 그 보조수단들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칼빈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1)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하는 것만이 합법적인 사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지 어떤 필요성만을 위해서 만물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맛좋은 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저 연명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즐겁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의복은 단지 벗은 몸을 가리는 용도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과 기품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금과 은과 상아와 대리석에는 그것들을 다른 금속이나 돌보다 더 귀중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주셨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은 단지 필요성으로만 제한할 수 없는 많은 유용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III.x.2).

여기서 칼빈은 두 가지 위험을 경계합니다. 하나는 피조물의 이용을 단지 필요한 용도에만 제한하는 엄격한 금욕생활입니다. 그는 이것이 자비로운 하나님의 합법적인 선물을 우리에게 허용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 그의 모든 감각을 빼앗아 그를 목석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는 사악한 생각이기 때문에 배척합니다. 다른 하나는 육의 정욕을 억제하지 못해 방종한 쾌락생활에 빠지는 무절제입니다(III.x.3). 칼빈은 이 양극단의 위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선용할 수 있게 하는데 필수적인 네 가지 규칙들을 제시합니다.

첫째 규칙은,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주를 인식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 규칙은 ‘절제’와 ‘자족’입니다. 우선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고전7:29-31)는 바울의 교훈대로 ‘절제’하는 일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바울의 말씀에 따라 ‘자족’하기를 권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세 번째 규칙은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우리의 유익에 사용되도록 하셨을 때에, 그것은 언젠가 청산해야 할 위탁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눅16:2)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II.x.5).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소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자들 가운데 칼빈만큼 인간의 일상적인 일, 특히 직업의 성실한 수행에 전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개혁자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겨주신 자신의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가운데 자신이 선택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이 칼빈은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을 그것이 아무리 낮고 천 한 일일지라도, 소명임을 알고 순종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빛날 것이며 아주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유일한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III.x.6).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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