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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은 그분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9.20 16:05
▲ 대제사장 예수 ⓒGetty Image
우리에게는 우리의 약함에 공감할 줄 모르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죄 없이 모든 일에 똑같이 시험받으신 대제사장이 있다.(히브리서 4,15)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우리는 예수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귄위가 있고 기적을 베풀 때 희망이 일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위도 어떤 권력도 예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기 때문에 예수에게서 하늘의 위엄을 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서조차 하나님의 아들을 발견합니다.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예수는 언제나 승리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오해할 수 있고 예수의 다른 면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수의 모습은, 히브리서 기자의 말을 빌면, 대제사장, 그것도 공감할 줄 모르는 대제사장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출세가도(?)를 달리며 부와 권력과 명성을 누립니다. 때문에 그는 아픔이나 슬픔을 모르고 약함을 견딜 수 없고 패배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아주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대제사장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대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시험을 받고 고난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출생부터 위기의 연속이었고 공생애 시작부터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는 가진 것 없이 다녔고 노숙인처럼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멸시당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렸습니다. 온갖 조롱과 고통을 당한 채 십자가에  이릅니다.

예수의 이러한 모습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요? 혹시 부끄럽다 할런지요? 엘리트 대제사장  같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은 시험과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18이 예수를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 오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예수께서 그들의 처지를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함께 마신 예수는 우리를 동정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우리와 동일한 정서를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이고 우리의 주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을 지나칠 수 없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우리를 편들고 그들에게 대항하십니다. 우리와 같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의 깊은 속까지 아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공감하시고 우리를 편드시는 예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오늘이기를. 우리를 슬픔에서 건지시고 아픔을 치유하시는 주님 안에서 평강과 용기를 발견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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