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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버림받지 않았다두려워 말라(이사야 41,8-16; 마가복음 6,45-52)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9.23 22:49
▲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다. ⓒGetty Image

제2 이사야로 불리는 예언자는 포로기 말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일제 말기를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길어지는 일제강점에 민족정신은 희미해지고 패배감이 짙어지며 일제에 붙어 사는 것이 희망으로 자리를 굳혀갔습니다. 변절과 굴종이 마치 시대정신처럼 되었습니다. 어둠을 어둠인 줄 모른 척하며 닫힌 미래를 살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불꽃같은 예언자가 나타났습니다. 어둠을 불사르고 힘없이 꿇은 무릎에 새힘을 주고 곧추 세우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우리는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외침에 동조하고 희망을 품기보다 비웃고 조롱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입니다. 마치 흐린 밤하늘에 별 하나 뜬 것처럼 캄캄한 어둠은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들과 다를 게 뭐가 있냐고 하거나 좀 더 낫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모르고 우리의 하소연을 듣지 않는다고 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냥 현재 상태가 그들이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에 좌초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향해 한 소리가 외칩니다. 광야에 야훼의 길을 내라! 우리 하나님을 위해 사막에 큰 길을 곧게 닦아라! 야훼의 영광이 그 길을 따라 오실 것이니, 그렇게 하여 하나님을 맞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강대국의 군주들이 출정을 할 때 그가 지나갈 길을 닦는 장면을 연상하면 곧 드러납니다. 야훼가 군주처럼 광야를 거쳐 오실 테니 이 말을 듣는 이들은 그가 군주의 영광으로 오실 수 있도록 거기에 길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포로로 바빌론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훼는 지금 바빌론을 향해 마치 정복자처럼 오실 것이라고 한 소리는 외치고 있습니다. 바빌론이 당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제국의 정복자로 오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사람은 비록 제국의 지배자일지라도 풀과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바빌론 포로들은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습니다. 바빌론 입장에서 보면 그 소리는 여지없는 반역자의 소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의 시큰둥한 반응을 믿음이 없다는 말로 매도해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버림받았다고 한탄하는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설득하기 시작하십니다.

바빌론의 힘에 짓눌리고 폭력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의 현재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아브라함을 친구로 삼은 하나님을 보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그들의 현재를 뛰어넘는 그들의 참 모습을 일깨워주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자긍심을 살리고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애쓰십니다. 역사의 굴레를 벗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위로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곧 그들의 현재와 연관되고 거기서 비롯된 오해와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게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신 것이지만, 그 징계 때문에 바빌론으로 잡혀온 자들은 징계를 버린 것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의 첫마디가 벌을 다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또 하나의 다른 오해는 하나님이 우상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상이 어떤 것인지 그 실제를 밝히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곧바로 인식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역사적 계획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하나님은 참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오해의 요소들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그들에게 드러내시고 그들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심으로 그들을 두려움에서 이끌어내십니다. 이제까지는 외톨이 같았지만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붙들어주시고 아브라함을 친구 삼았던 것처럼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약해진 무릎을 세우시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광야 길을 아무리 걷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게 하시고 예루살렘까지 춤추며 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을 돕고 강하게 하여 그들을 두렵게 하던 자들을 겨처럼 헛된 것으로 만들고 바람에 날리듯 흩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빌론과 두려움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그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그 해방의 역사는 이 땅에 오신 예수에게서 계속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잠시 헤어져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어두워졌습니다. 예수 없이 제자들은 어둠 속에 배 위에 있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마치 이스라엘이 포로로 바빌론에 ‘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바람과 싸우며 배를 젓지만, 힘겹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바빌론의 이스라엘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주님은 어디 계시는지? 우리의 처지를 모르십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언자의 말과 달리 이스라엘이 닦지 않은 ‘광야 길’로 오셨습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길 없는 어둠의 바닷길을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배 가까이 이르자 그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예수를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유령을 보았습니다. 놀라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예언자의 청중들과 달리 제자들은 자신들의 현실이 아니라 예수의 오심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다, 두려워말라고 따뜻한 말로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예수께서 배에 올라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광야 길을 이스라엘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두려움 가운데 외롭게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우리 현실에 개입하시며 길 없는 곳에서도 길을 낼 수 곳에서도 안전하게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말라 속삭이며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무서움에 흔들리는 무릎에 새힘을 더하실 것입니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로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이 마치 광야와 사막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위로 가운데 우리를 안내하시며 새길을 열어갈 것입니다. 함께 희망의 춤을 추며 그 길을 걸어갑시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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