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현주소

▲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써 입어야 할 예복은 준비된 것이었다. ⓒGetty Image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10월 1일은 추석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도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여 차례도 지내고 그동안 못 나눴던 정도 나누는 귀한 자리이지요.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귀한 곡식과 과일이 풍성한 그야말로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잔치와도 같은 날입니다.

결혼하기 전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 그러나 추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5대 독자이니 친척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저희 3남매가 전부인 명절이니 다른 날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어머니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했고, 자동차가 생긴 덕에 추석 다음날 정도 되면 이제 외갓집에 가는 일이 생겨서 그나마 명절의 기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니 제대로 누렸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7남매 중 장녀고,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형제분들과 가까이 지내셔서 명절 때가 되면 아무리 조금 모여도 30명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잠자리가 불편해서 오래 머물지는 못해도 여러 가지 좋은 추억이 새록새록 나곤 합니다.

그러나, 올 추석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약간은 쓸쓸하기까지 한 명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우려로 여러 가족이 모이는 일이 위험한 일이 되고 만 것이지요. 누구라도 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모든 사람이 걸릴 수도 있는 감염력이 너무나 강한 탓에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들이 위험해지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올 추석은 서로 오고 가지 않기로 한다는 슬픈 소식이 한국에서 들려옵니다. 어서 이 어려움이 극복되고 다시 함께 모여 사랑과 정을 나누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잔치는 참 즐거운 것입니다. 특별히 혼인잔치는 잔치 중에 가장 큰 잔치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혼인잔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만나, 서로를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그리고 있는 요한계시록 등 성경은 잔치를 통하여, 특별히 혼인잔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25:6-8)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5-6)

어떠십니까? 잔치와 연회에 대한 말씀을 통해 주님은 하늘 나라의 신비와 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마태복음 본문 말씀을 읽다 보면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긴 했지만 전혀 논리적이지 않아 보일 뿐만 아니라 너무 일이 커졌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 즉 왕자의 혼인 잔치를 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종들을 일러 잔치 준비가 다 끝나 음식이 다 차려 있고, 소와 살진 짐승이 풍성하다고 전하게 합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임금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에 화가 난 임금은 자기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모두 섬멸하고 도시를 불살라 버립니다. 이후 임금은 다시 종을 보내 아무나, 만나는 대로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모두를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러다가 정작 혼인 잔치가 시작되어 임금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호되게 꾸짖고 잔치에서 쫓아냅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바로 하늘 나라와 같다 하시는 것이지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아무 준비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사정하다시피 해서 연회장을 채운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갑자기 결혼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 정보를 알게 되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당시 중동지방에서는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잔치의 연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복이라는 것이 내가 일부러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혹은 미리 집에서부터 준비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잔치에 초대한 주인이 손님들이 있을 예복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따라서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인이 이미 준비해 놓은 예복을 그저 입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다보면 임금이 마련해 놓은 잔치에 임금이 마련해 놓은 예복을 입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쫓겨났던 것입니다. 왜 쫓겨났습니까? 제가 설명 드리지 않아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임금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임금의 아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니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잔치의 규칙을 무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쫓겨나는 것이 더 이상 동정의 대상이 아니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옷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머물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후에 하나님에게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만들어 입었던 무화과나무로 만든 옷을 대신해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히십니다. 바로 은혜와 용서의 옷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과 대속으로 만든 죄 사함과 용서의 옷이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죄인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이 주시는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 옷을 입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지금 누구인지 도대체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지, 그대로 길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임금의 잔치 자리에 초대받은 것을 분명히 알고서도 옷을 입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임금이 초대했는데, 그렇게 배짱을 갖거나 무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현주소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가리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임금은 그의 종들에게 큰 길에서 만나는 누구나 잔치 자리에 데려오라고 주문합니다. 그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잔치에 참여해서 예복을 입고 잘 차려진 임금의 식탁에서 풍성한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깜빡해서 입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잊고 있었을지라도 누군가는 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 예복을 입지 그래, 곧 혼인잔치가 시작될텐데 입지 않는 이유가 뭔가?”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게 왜 중요하냐며 무시했을 것입니다. 아니 게을러서 나중에 입겠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임금은 그에게 화를 냅니다. 당장 잔치에서 나가라고 명령합니다. 아니 손과 발을 묶으라고 명령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 옷이 성도의 행동이라고 언급합니다. 성화의 은혜는 잔치에 참여하는 전제조건이 아닙니다. 예복은 내가 준비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당연한 도리요 감사의 표시로 예복을 입을 뿐입니다. 나의 수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 7:14)

저는 우리 교회를 섬기기 전에 미국 루터란 소속 한인 루터 교회에서 8년여 섬긴 적이 있습니다. 예배의 예전을 매우 중시하는 전통 교회인데 예배 시간이 되면 안수 집사님들이 중보 기도와 성만찬을 돕기 위해 제단 앞으로 혹은 위로 나올 때 예복을 입게 했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허리를 띱니다. 그런데 허리에 띠는 이 띠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왜 허리에 띠를 띠게 했을까요? 위 아래를 구분하기 위해 띠를 띱니까? 아니면 옷이 흘러내리지 말라고 그렇게 합니까? 그 까닭은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옛날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혹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지성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성막 안에서도, 성전 안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으며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곳이었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선택된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지파별로 제비뽑기 하고 나서, 선택된 그 지파에 소속된 제사장 중에 또 제비뽑기 해서 선택된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그 덕분에 평생에 한 번도 지성소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정결하게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분향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종종 있었습니다. 죄를 정결하게 씻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지성소에 들어가 죽음을 맞은 제사장을 꺼내기 위해 감히 들어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지혜가 허리에 띤 띠이며 방울이었습니다. 혹 부정한 제사장이 죽더라도 방울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띠를 잡아당겨 처리한 것입니다.

즉 오늘날 성도를 대표해 장로님들이 권사, 집사님들이 예복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는 이유는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라갈 때 목숨을 걸고 올라가겠다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교회들은 아이들이 감히 제단 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뒀던 것입니다. 따라서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 성만찬을 돕기 위해 제단 위에 오르기 전 예복을 입을 때 반드시 기도해야 하며, 임금의 잔치 자리에 참여한 손님이 혼인 예복을 입는 심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것들을 누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주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잔치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의 초대에 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로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초대에 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임금의 잔치 자리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의 잔치입니다. 교회란 구원의 복음으로 잔치하는 희락의 잔치 자리요, 기쁨의 잔치 자리입니다. 구원을 즐거워하는 잔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천국 초청의 비유는, 사거리에서 부름 받아 모여든 모든 자들에게 왕의 예복이 입혀지고 그 영화로운 잔칫집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 것이 은혜, 오직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왕의 잔칫집에 초대받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의 자리입니까, 얼마나 귀한 자리입니까? 그들은 감히 갈 수 없는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오직 은혜의 초청이요, 은혜로운 부르심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청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올바른 자세는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 이 한 가지입니다.

이를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죽음과도 같은 감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립보서 4:4-5)

우리 모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잔치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손에는 하늘 잔치의 초대장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초대에 어떻게 응하시겠습니까?

민기욱 목사(미국 트리니티 한인장로교회) minics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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