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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라는 상상력이스라엘 역사 알기 ⑶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0.10.01 16:20

이제 본격적인 이스라엘 연대 추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에 앞서 몇 가지 전제를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글의 전제

⑴ 이 글에서는 ‘역대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열왕기의 내용을 따릅니다. 간혹 역대기 본문이 언급될 수는 있지만, 이는 연대 추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만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역대기는 사무엘, 열왕기와 큰 맥락에서는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글이 너무 복잡해지고 길어질 우려가 있기에 역대기 역사는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집트와 이스라엘 역사 관련 서적들

⑵ 첫 번째 글에서 이집트 연대를 다룬 두 학자를 말씀드렸는데, 이 글은 ‘이언 쇼(Ian Shaw)’가 정리한 연대를 따릅니다. ‘브래스테드(James Henry Breasted)’의 연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참고한 2000년 이후에 출간된 이집트와 관련된 책들이 ‘브래스테드’보다 ‘쇼’에 가까운 연대를 말하고 있으며, 제가 본격적으로 이집트학에 뛰어들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 편의상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⑶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은 주로 CLC에서 출간한 ‘레스터 L. 그래비(Lester L. Grabbe)’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에서 출간한 ‘J. 맥스웰 밀러(J. Maxwell Miller)/존 H. 헤이즈(John H. Hayes)’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참고하게 될 것입니다.

⑷ 이스라엘 역사를 주변국 역사와 맞추다 보면 주변 왕들의 정확한 명칭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출애굽기에는 오직 ‘바로’라는 호칭만이 나타납니다. 이때 여러 정황에 맞춰보아 어떤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본 일반인들이나 목회자분들이 작성해놓은 연대표에서 범하고 있는 가장 큰 실수가 자신이 세운 가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여러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연대를 끼워 맞추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이런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⑸ 마지막으로 저는 성경에 나타난 연대(숫자로 표기된 연대와 나이, 통치 기간 등)는 틀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성경 안에서도 연대가 충돌하는 경우를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은 분명 존재했던 사건으로 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숫자들은 때로 수정될 수도 있지만, 사건들은 최대한 수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미리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무엇을 ‘선택’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지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제 선택이 올바르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연재되는 글의 특성상 분량이 너무 길어질 수 있기에 역대기를 빼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편의상 ‘쇼’의 연대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역대기도 포함한 역사 해석을 하셔도 되고, ‘브래스테드’의 연대를 따르셔도 됩니다. 다만 그것이 해석자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제시한 서적 외에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간한 ‘안토니우스 군네벡(Antonius H. J. Gunneweg)’의 『이스라엘 역사』나 한국문화사에서 출간한 ‘헤르베르트 돈너(Herbert Donner)’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Ⅰ』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그래비’와 ‘밀러/헤이즈’의 책만으로도 기본적인 해석은 가능하겠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두 책을 사용할 따름입니다.

솔로몬의 아내와 스바 여왕 – 잘못된 해석의 예

아래의 예시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집트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내용입니다. 학자들이 설명하는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상당히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에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잘못된 예이기 때문에 굳이 출처를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는 ‘솔로몬’이 이집트의 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또 7장에는 그녀를 위해 집을 건축했다는 언급이 나타나고, 9장에는 이집트 파라오가 가나안 지역 게셀을 탈취해 자신의 딸이자 솔로몬의 아내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을 읽으며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간혹 그녀의 이름이 ‘네페루비티’라는 글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네페루비티’는 이집트 제18왕조의 ‘하트셉수트 여왕(주전 1473-1458년)’의 동생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투트모세 1세(주전 1504-1492년)’의 딸이자, 이복형제인 ‘투트모세 2세(주전 1492-1479년)’의 아내입니다. ‘투트모세 2세’가 일찍 요절하자 그의 2살짜리 아들인 ‘투트모세 3세(주전 1479-1425년)’가 즉위하게 되었는데, 그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의 고모이자 의붓어머니였던 ‘하트셉수트 여왕’이 섭정하게 됩니다.

이집트학 학자들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섭정이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판단합니다. 상당히 뛰어난 여왕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녀의 무덤 옆에 있는 장제전(Deir el Bahari)에는 그녀의 가족이 부조되어 있는데, 여기에 그녀의 어린 동생인 ‘네페루비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네페루비티’는 어린 시절의 기록만 있고, 성인이 된 그녀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투트모세 1세 가족

일반적으로 ‘네페루비티’는 어린 시절에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만, 일부 성경만으로 역사를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그녀가 솔로몬과 결혼했기 때문에 이집트 기록에서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또 성공적인 통치를 했던 ‘하트셉수트 여왕’은 열왕기상 10장에 나타난 ‘스바 여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스바 여왕’일 수 있는 근거는 마태복음 12장 42절과 누가복음 11장 31절에 나타난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녀를 ‘남방 여왕’이라고 칭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통 ‘남방’이라고 말하면 이집트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연도를 보신 분들은 이미 이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이 솔로몬과 동시대 인물일 경우에, 출애굽으로부터 솔로몬까지 기간이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연대는 전부 무시되어 있고, 엘리와 사무엘의 기간도 무시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남방으로부터 올라온 뛰어난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과 솔로몬의 아내 중 이집트 공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끼워 맞추기식 해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솔로몬의 통치 연대는 아무리 빨라도 주전 1100년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연도에 대한 고민 없이 적당히 맞추다 보면 이런 오류가 발생합니다.

출애굽과 힉소스 – 고민해볼 만한 예

앞의 내용을 썼던 글은 상당히 긴 글이었는데, 그중에 우리가 고민해볼 만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기록에 종종 나타나는 ‘힉소스(Hyksos)’와 연결시켜서 해석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집트 제15왕조(주전 1650-1550년)를 이루었던 이주민 집단이 있습니다. 이들을 ‘힉소스’라고 부르는데, 힉소스는 ‘이방인 통치자’를 뜻하는 이집트어 ‘헤카우 카수트(hekau khasut)’의 그리스어 표현입니다. 이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부터 이집트로 내려온 집단이기 때문에 이들을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힉소스라 불리는 집단은 100여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립니다.

▲ 힉소스 통치기와 지배 영토

힉소스는 분명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내려온 이주민 집단입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힉소스를 단일 민족으로 보지 않고 ‘서아시아 지방 민족’을 의미하는 ‘아아무(Aamu)’의 일부로 봅니다. 힉소스라는 말 자체가 ‘통치자’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에 아아무 중에서 권력을 잡았던 이들이 힉소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아무에는 가나안인, 특히 아모리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이집트 제12왕조 ‘아메넴하트 2세(주전 1911-1877년)’ 시절 지방 총독이었던 ‘크눔호텝 4세’의 무덤에서 발견됩니다.

▲ 아아무의 방문

위는 발견된 벽화이고 아래는 이를 재구성한 그림입니다. 이들은 주전 1900년경부터 이집트와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이집트에 거주하기 시작한 무리도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힉소스는 결국 나일강 삼각주 지역, ‘아바리스’와 ‘맴피스’ 지역을 차지하여 이집트 제15왕조를 세웁니다. 같은 시기에 이집트 ‘테베’ 지역(현재 룩소르 지역)에는 제16왕조가 세워지게 됩니다. 제16왕조를 계승한 제17왕조의 마지막 왕인 ‘카모세(주전 1555-1550년)’ 때에 이르러서 북부 이집트 탈환이 이루어지는데, 이집트 제18왕조의 시조이자 당시의 장군이었던 ‘아흐모세(주전 1550-1525년)’에 의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 아흐모세의 도끼

위의 그림은 ‘카모세’의 아내인 ‘아흐호텝 2세’의 무덤에서 발굴된 도끼입니다. 제18왕조의 시조인 ‘아흐모세’가 힉소스를 물리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연구는 힉소스를 단일 민족 공동체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보는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 힉소스는 이집트 안에서 자신들의 왕조를 세웠고 거의 100여년 동안 나일강 삼각주 지역을 지배했기 때문에 출애굽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노예 생활과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출애굽기의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는 ‘이스라엘=힉소스’ 도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략 주전 1900년경에 이집트에 유입되어 주전 1500년경에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힉소스 또는 아아무를 이스라엘 민족에 대입하려는 시도는 이해가 됩니다. 출애굽기 12장이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거주한 기간 430년과 대략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통치자 무리인 힉소스라고 말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이런 가설은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힉소스보다 더 큰 개념인, 아아무의 한 부류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아아무 중에서도 힘이 없는 민족이었을 것이고, 이들은 ‘아흐모세’에 의해 정복당한 후에 이집트 제18왕조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힉소스라고 말하는 데에는 분명 무리가 있지만, 이들이 아아무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가설은 아닙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왕정 시대의 연대와 사건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해 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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