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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소중한 것 내어놓기”(창세기 43:6-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10.06 15:43
▲ Harry Anderson, 「Jacob Blessing His Sons」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추석 연휴 가운데 평안하셨나요? 늘 말씀드리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매 순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공중파에서 나훈아 콘서트가 방영되었습니다. 10명중 3명이 봤다고 하는데요. 성도님들은 보셨나요? “테스형”이라는 신곡이 현재 인기입니다. 1절 가사에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가사에 나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은 아주 오래된 질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명확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빛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7년 전 초도제일교회가 고성 초도리에 세워졌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지역에 세우셨고, 우리는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초청받아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빛으로서 빛을 비추며 사는 삶입니다. 어둠속에 있는 이들을 밝은 곳으로 인도하고, 죽어 있는 자들을 깨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축복의 삶이 우리 교회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가 37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결단’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빛이고 자신의 삶의 과정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요셉은 형들을 용서 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요셉과 형들과의 용서, 화해 과정에서 아버지인 야곱의 결단도 중요하게 작용을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다른 아들들 보다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의 네 명의 아내 중에 유일하게 사랑한 라헬로부터 나온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죽었다고 여기며 상심한 채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야곱의 상심한 마음을 창세기 37:32-35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며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슬픔이 너무나 커서 남은 자녀들의 위로도 받지 않겠다는 아버지인 야곱, 그저 스올로 내려가겠다고 말하는 야곱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들어 식량을 구해오라고 아들들을 보냈더니 시므온은 정탐꾼으로 오해 받아 인질로 잡혀버리고, 라헬로부터 나온 마지막 아들인 베냐민은 애굽으로 데려 가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창세기 42:33-34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2:36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라.”

야곱은 애굽에 잡혀 있는 시므온은 생각하지 않고, 라헬로부터 나온 두 아들 중 마지막 남은 베냐민만은 지켜야겠다는 말만합니다. 창세기 42:37-38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에게는 요셉 이후로 베냐민만이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고, 소중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애굽으로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야곱은 아들들의 일로 인해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지체하던 야곱은 결단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이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장면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이 겨우 내 내린 이 결단으로 비로소 정체되어 있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들 앞에 서게 됩니다. 나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아야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희생할 수 있고,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게 되겠지만 끝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야곱을 쉽사리 비난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며 비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야곱과 비슷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내놓지 못하고, 지키기에 급급한 삶을 살다보니 상처주거나, 남을 외면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에서도 하나님과의 형통한 관계를 위해 우리의 소중한 무언가를 내어놓거나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라를 돌보셔서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이삭을 얻게 하십니다. 늦둥이를 가진 부모를 보면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우는지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자녀가 있어도 늦둥이는 특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하물며 100세 되던 해에 얻은 독자 이삭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아들을 다시 달라고 하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겠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그러나 이런 아브라함의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내놓는 결단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이런 축복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해졌음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믿음의 과제가 주어집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아야 할 때가옵니다. 인간적인 일에도, 믿음의 일에도 우리가 소중한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보통 돈이나 물건, 물질을 생각합니다. 또는 내 삶에 너무 바빠 하나님께 내지 못했던 시간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정작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할 소중한 것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분노와 상처로 뒤덮여버린 우리의 자아가 욕망과 목적에 눈이 멀어 버린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무엇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있는 사람, 떨쳐버리지 않고 있는 상처의 기억을 혹시나 끌어안고 계시지는 않나요? 또는 두려움도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저에게 소중한가요?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라면, 여전히 그것들과 씨름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아를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거짓으로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세상적인 축복을 바라며 내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돈을 부르고자, 더 많은 인정을 받고자, 또 다른 삶의 이득을 보고자 내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투자”라고 불러야지 결코 내어놓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37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성도간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 절대 내놓지 못할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줄 아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저와 성도님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큰 희생이라기보다는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소중한 무언가를 내어놓을 줄 알았던 용기 있는 선택들이 모여 이룬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지속 가능하려면 이처럼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어놓아야만 합니다.

창립기념주일인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한 발자국 더 나갈 수 있도록 찬양으로 믿음의 결단을 하겠습니다. 찬양의 제목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입니다. 이 찬양을 부르며 내가 사실은 소중히 여겼던 것들, 하나님보다 사랑했던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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