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예수에 대해 증언하는 세례 요한」 (1877) ⓒGetty Image

세례 요한과의 만남으로 예수의 공생애는 시작됩니다. 그는 처음에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대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지우고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경우가 아니면 속죄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어린 양이 사용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켜 예수에게 적용합니다.

요한의 말을 풀어 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게 하신 그의 어린 양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씻기 위해 염소 한 생명이 필요했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세상의 죄이기 때문에 그 죄를 짊어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제물은 하나님의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의 비밀을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대속죄제가 이스라엘을 달라지게 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사건도 동일할 것입니다. 세상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아파하시며 홍수를 일으키셨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자기희생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고 부르시는 것으로 그의 길을 여십니다. 요한의 두 제자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그들은 먼저 예수가 어디 머무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은 당연 아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을 공개하셨고,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안드레는 그때 예수에게서 메시야를 보았습니다.

과연 그곳이 어떤 곳이었길래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지만, 본문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다만 인자는 머리 둘 데도 없다 하셨던 예수의 말에 비추어보면(마 8,20), 하늘 아래 땅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온 천하가 그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에게 꼭 맞는 거처입니다. 여기서 메시야를 본 안드레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후 오늘의 본문에서 빌립을 부르십니다. 빌립이 예수 이야기를 한 동네 사는 안드레나 베드로에게서 들었을 수 있겠지만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그는 주저 없이 예수를 따랐고,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인가가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빌립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에게서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이를 보았습니다. 벅찬 감동이 그를 친구에게 달려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나다나엘에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사렛이란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는 천대받던 땅에서 기대할 만한 것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나다나엘과 친구였던 빌립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당시 친구 빌립의 말만 듣고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빌립이 그에게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한 사람의 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한 마디 말입니다. 예수를 만난 그는 그에 대한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만난 빌립과 나다나엘의 고백은 조금씩 다르게 안드레의 메시야 고백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새로운 희망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에게서 본 것은 세례 요한이 본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의미의 메시야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를 따라 다니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메시야 이해를 교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요? 세례 요한은 그 어린 양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았습니다. 그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를 향해 가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양은 이미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셨습니다. 바로 그가 우리를 새피조물이 되게 하신 우리의 창조주입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우리와 세상의 창조주를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성서의 의도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나다나엘이 그 나름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처럼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볼 수 있기를 빕니다.

그때 우리는 전도서 기자의 증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서 청년의 때가 지난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능력 밖에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시작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우리의 마지막도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처음과 끝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그 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과정도 하나님 앞에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 과정은 우리의 눈이 보는 대로 우리의 마음이 가는 대로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즐겁게 하도록 사는 삶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실현시키는 행복한 삶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방종을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기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우리를 일깨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 찌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그에게 다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마음껏 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피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악입니다. 악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며 최종적으로 악을 꾀하는 자신에게도 불행을 결과할 것입니다. 악 때문에 창조주가 실종되고 사람의 책임이 사라지고 악을 위해 예수에게서 세상 죄를 끌어내리려는 삶이 확산될 것입니다.

예수에게서 창조주를 보고 창조주를 기억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삶이며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이와 같은 온전한 기쁨의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우리의 눈에 창조주 예수가 들어있음을 서로 보고 함께 기뻐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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