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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만’이 아니라 농민‘부터’농민기본소득, 농촌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한민석 | 승인 2020.10.09 00:34
▲ 최용기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동노회 율곡교회 목사 ⓒ화면캡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마태복음 6장11절, 새번역)

재원과 자원이 풍요로운 오늘날의 도시 속에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공허하다. 신의 개입이 없어도 먹고 마실 수 있게 된 도시 속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고백 이면에 어쩌면 지금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과욕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면 생존 자체에 대한 불안을 겪고 있는 농촌 현실 속에서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삶의 자리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9월 29일 ‘한국기독교장로회 농어민선교 목회연합회한국기독교장로회농어민선교목회연합회’(회장 박승규 목사[신기교회], 이하 기장 농목)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농촌교회와 목회>(류장현 교수) 세 번째 세미나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농목연대 농민기본소득 특별위원회’ 최용기 목사(전북동노회 율곡교회)가 발제자로 나선 이번 세미나는 <농촌교회와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최 목사는 먼저 산업화 이후 진행된 무분별한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확대로 인해 농촌의 가치는 땅에 떨어져 농민의 삶 자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증언하였다. 농업, 농촌, 농민이 배제되고 소외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최 목사는 암담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농민 기본소득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기본소득은 성서의 정신

최 목사는 기본소득에 관한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며 성서 속 기본소득 정신이 단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각자 자기의 몫이 있기에 땅과 물과 공기 등 천부적 자원들은 인류 공동 재산이라는 사실을 재천명했다. 이어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는 노동의 업적과 무관하게 삶의 필요에 따라 재화를 나누어 주는 행위이며 업적과 보상을 서로 분리하고 보상과 삶의 필요를 직결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목사는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제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며 기존의 생활 보장제도와 3가지 다른 점을 지적했다. 첫째, 기본소득은 보편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지급된다(보편성). 둘째, 재산과 소득이나 어떠한 행위 같은 조건이 붙지 않고 지급된다(무조건 선무조건성). 셋째, 가구 단위가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한다(개별성).

‘무노동 무임금’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돈을 주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에 대해 최 목사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말을 인용하며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관해 설명했다. 미국 독립운동가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페인은 그의 저서 『토지 분배의 정의』에서 땅은 인류 공통의 ‘재산’이며 그로부터 기금을 걷어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기본소득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을 모두의 몫으로 배당을 받는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농민‘만’이 아니라 농민‘부터’

그렇다면 왜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아닌 농민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 최 목사는 농민 기본소득이 농민‘만’이 아니라 농민‘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며 그러한 정책이 필요한 네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식량과 생명을 머금은 농업이 소멸하게 된다면 공동체의 생존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도시 중심 개발과 농산물 시장개방의 결과로 대부분의 농민이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식량 공급뿐 아니라 농촌은 국토환경, 자연 보전 등 많은 다원적,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과밀 집중된 도시로부터 농촌으로의 자연스러운 인구 흐름을 만들어 도시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 목사는 COVID-19로 도래한 비접촉시대를 살아갈 때 농민 기본소득은 필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농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만약 당장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된다면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농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나라 법률상 ‘농업인’의 기준은 1,000m² 이상의 농지 경영/경작, 연간 농산물 판매액 120만 원 이상 등 그 조건이 까다로워 임차농, 여성 농민, 고령 농민과 같은 ‘농업인’이 아닌 농민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최 목사는 이와 같은 기준을 제시했다.

① 3년 이상 해당 시군에 실거주하면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민
② 농업경영체 등록을 못했다 하더라도 3년 이상 실거주하면서 농업 생산에 종사하고 있는 농민과 농업노동자
③ 해당 시군에서 10년 이상 농업 생산에 종사하고 은퇴한 65세 이상의 농민과 농업노동자

덧붙여 최 목사는 실제 거주 여부와 생산 참여 여부를 행정력만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별로 ‘농민 기본소득위원회’를 조직해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농민 기본소득과 보편복지가 함께 양립해야 농촌이 살 수 있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가 약화할 우려에 대해서도 최 목사는 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기본소득은 사회서비스를 없애지 않으며 오히려 보편복지와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촌은 도시보다 소득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도 부족하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가 함께 양립해야만 신뢰와 규범, 교환과 보상, 협동과 갈등 해소라는 농촌이 지닌 사회적 자본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최 목사는 ‘농민 기본소득’이 판데믹 시대 속에서 밀집된 도시 인구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농민기본소득, 가능성과 한계

최 목사의 발제에 대해 첫째로 이성철 원우는 농촌공동체에서 교회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농촌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와 목회의 새로운 역할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두 번째 논찬자인 유영상 원우는 탈 노동 사회 속에서 농민 기본소득이 청년들에게 안정된 농업노동과 융합된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청년들의 농촌 유입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비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농촌이 한국 자본주의 시장에서 왜 소외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으로 검토하며 소득 차원의 물질적 분배가 아니라 생산 차원에서의 구조적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세종 원우는 농촌에서 18년 동안 살았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농민 기본소득과 더불어 사회, 문화, 복지 서비스가 함께 강화되어 인프라가 확충된다면 농민에게 분명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 환경만으로 청년의 유입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위 논찬들에 대해 최 목사는 30만 원으로 시작하길 제안하는 농민 기본소득이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농민 당사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 답했다. 또한 귀농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농민 기본소득은 시도해볼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이 될 것이라고 최 목사는 전망했다.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우리’를 바라며

주기도문은 ‘우리’라는 표현 속에 모든 성도를 하나로 묶는다. 그래서 하루하루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사람은 단순히 자기만족과 안위를 보전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급감하는 농촌의 현실 속에서 대대적인 농민 기본소득재정은 시급하게 필요하다.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갈망이 농촌과 농촌교회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래본다.

한민석  addmirer1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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