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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박사, 분단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길을 열다박순경 박사님을 추모하며!
한국염 목사(정의기억연대운영위원장) | 승인 2020.10.25 14:17
▲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창립 20주년 축하잔치. 앞 두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에 앉아 계신 고 박순경 교수. ⓒ한국염

1979년에 ‘여신학사협의회’를 마치고 신학을 전공한 여성들이 가부장적 신학을 해체하고 성차별적 교회를 평등한 교회로 변혁해보자는 마음으로 여신학자협의회를 결성키로 하였다. 1980년 4월 21일 여신학사협의회 창립총회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하지만 여전도사들  중에는 신학사 학위가 없는 사람들이 있어 회원 자격에 고민이 생겼다.

이때 아무도  예기치 않았던 박순경 박사가  참석해서 “독일에서는 신학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던 신학자라고 부른다. 신학자는 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신학자다.”라고 명쾌하게 정리를 해주셔서 회의 이름도 ‘여신학자협의회’로 바꾸었다. 회장 선출시간이 되자  그 자리에서 분위기가 확 돌아 전형위윈들이 혜성처럼 나타난 박 박사님을 회장으로 선출, 박순경박사님이 여신학자협의회 초대회장이 되셨다.
 
창립총회 후 열린 첫 공개강죄에서 박순경 박사님이 “세계교회의 여성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하셨고, “한국교회와 여성”이라는 패널토의, 장상 교수의 “성서와 여성” 강의가 있었다. 이 세미나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회보」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홍보출판위원이던 내가 원고를 만들고 남편인 최정의팔 목사 편집을 해서 타블로이드 판으로 제작되었다.

1985년 여신협이 산실이 되어 ‘한국여성신학회’가 창립되었다. 박순경 박사님이 초대회장이 되셨고, 내가 서기가 되었다. 창립된 여성신학회는 기독교학회에 가입하고자 했으나 교수와 박사 중심의 이 학회는 “아줌마들이 뭔 신학회냐”고 무시하며 가입을 일축시켰다. 박 박사님 회장 시절에는 끝내 기독교학회 가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대를 볼줄 몰랐던 한국신학회의 권위주의와 가부장성 때문이었다.

박순경 박사님은 여신협 초기부터 통일운동에  불을 붙이셨다. 4차 정립협의회 주제는 “통일과 여성신학”이었고, 박 박사님이 주제강연을 하셨다. 이 정립협의회를 계기로 여신협에 통일문제를 다루는 통일신학작업반이 만들어졌다.

이 작업반 결과물이 <민족통일과 여성신학>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통일반의 일원으로서 원고를 만드는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박 박사님은 여신협 통일운동에 주춧돌을 놓으셨고, 박 박사님으로부터 통일신학 세례를 받은 여신협 회원들이 그 걸음을 뒤따르고 있다.

박 박사님을 회상하며 앨범을 뒤지니 여신협 20주년 행사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달랑 남아있다. 그때 나는 여신협 총무였고, 20주년 행사가 뜻 깊었다고 치하해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박사님, 하나님의 품에서 편히 쉬소서!

한국염 목사(정의기억연대운영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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