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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순간이동”(고린도후서 13:5-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10.27 16:19
▲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애정과 걱정에서 편지를 썼다. 그들 스스로 믿음을 시험해 보고 검증할 것을 권고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을 등지거나 외면할 수는 있어도, 평안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살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안은 늘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어진 이 평안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주중에 겪은 한 가지 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의 진행이 제가 생각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그 순간 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이 실망감이 온 몸으로 퍼졌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저의 생각과 몸에 가득 찬 것만 같았습니다. ‘아주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싸워주지!’라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고요,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짜증을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일이 없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연기된 것뿐이었어요. 하지만 일이 미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이 상상들이 부정적인 감정들로 번졌습니다.

발생하지 않은 일, 아직 어떻게 될지 결정되지 않은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처럼 여기면서 제 안에 어두운 감정을 점점 키워갔습니다. 성도님들도 이런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시죠?

우리에게 문제가 발생하거나, 생각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쉽게 빠져드는 모습입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 그렇게까지 생각할 일이 아니었는데.’ 하며 혼자 멋쩍게 웃거나, 잠시 후회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도 그랬지만 많은 분들이 실망, 분노, 두려움, 좌절 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에 대해서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게 될 때 빨리 털어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합니다.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여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거나 위축되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쏟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빨리 털어내지 못하고 절망에 휩싸여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영성가들은 외부로부터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이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어떤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했다!’라고 말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나의 밖에 있다고 여깁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외부로부터 오는 일들에 영향 받기를 먼저 선택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 행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오늘 제목처럼 “순간이동”을 해야 합니다.

제목이 “순간이동”이라 당황하셨나요? 오늘 제목의 순간이동은 영화에나 나올 만 한 물리적인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란과 고통의 자리에서 평안의 자리,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의 순간이동을 말합니다.

사실 이럴 때 제가 자주 쓰는 말은 “스위치를 끄십시오.”입니다. 오늘 말씀의 부제목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버튼이 on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버튼을 off시켜 버리면 됩니다. 놀랍게도 부정적인 마음과 상상들이 즉시 힘을 잃고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on의 상태에서 off의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말씀을 읽거나,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를 드리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본다거나,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아니지!”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한 번 흔들어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 안에 힘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을 할 때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힘일까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마음의 순간이동이 가능해집니다.

“5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6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실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질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절하고도 필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 능력을 외면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9절의 말씀처럼 “완전하여지도록”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신의 삶처럼 마음과 삶 모두를 포함해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걱정도 컸습니다. 어떻게든 교회에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가 보내지던 당시의 고린도교회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20-21의 말씀이 이런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0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볼 때에, 여러분이 혹시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것과, 또 내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에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경쟁심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다시 갈 때에, 여러분 때문에 내 하나님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한 부정함과 음란함과 방탕함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슬피 울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범한 잘못들 그리고 내부적인 여러 문제들을 자신이 다시 방문하기 전까지 해결하라고 요청합니다. 5절이 바로 이런 요청의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이런 걱정 때문에 반복적으로 우려들을 표현했습니다. “7 우리는 여러분이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격자임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격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옳은 일을 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잘못됨을 수정할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잘못을 넘어 옳음을 향해 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얼마든지 다시 본래의 자리로 순간이동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켜졌던 부정적인 생각과 삶의 스위치를 off함으로써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전환이 가능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와 성도님들도 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이고, 아름다운 문장인가요? 오로지 진리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기에 다음 구절의 고백도 가능해집니다. “9 우리는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이들은 이토록 나와 타인이 완전하게 되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약해지더라도 당신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강해지는 일이 기쁜 일이 아니라 당신의 강해짐이 나의 기쁨입니다. 당신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사는 완전한 삶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기도를 드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근래에 유행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불멍’입니다. 힐링을 하기 위해서 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말하는데요. 제주도에 사시는 윤태현 목사님이 SNS에서 ‘불멍’에 대해 하신 이야기가 은혜가 되어 성도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불멍의 시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짝 마른 장작>이다. 바짝 마르지 않은 장작은 불이 잘 붙지 않음은 물론이고, 눈 따가운 연기만 뿜어낸다. 그리고 어설프게 불이 붙더라도 이내 꺼져버리고, 결정적으로 타탁타닥 하는 청명한 소리 대신 지글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불멍’의 계절을 아낌없이 즐기기 위해서는 바짝 마른 장작을 준비해야 한다. 볕이 좋은날 바람까지 살랑이면 금상첨화인 그런 날 장작을 널어 말린다. 장작을 말릴 때 중요한 것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과 볕이 있을 때 널어놓고 볕이 있을 때 걷어 들이는 것이다. 볕이 지면 이슬이 내려 장작을 다시 적시기 때문이다. ‘불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화점에 이르게 하는 온도보다 <바짝 마른 장작>이다.

‘불멍’을 위해 바짝 마른 장작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이런 좋은 도구가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믿음 안에서 완전해 지기 위해서는 우리도 잘 말려져야 합니다.

잘 말려지기 위해 매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마음의 순간이동을 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진리)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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