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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등장인물과 스칸달론“너는 나의 걸림돌(skandalon)이다”: 마태복음의 스칸달론에 관한 연구 ⑵
김재현(계명대) | 승인 2020.10.28 17:12
▲ 베드로의 고백에 이어 열쇠를 받고 있는 베드로 ⓒGetty Image

설교 부분을 제외한 마태복음의 내러티브 부분에서 스칸달론과 연루되는 최초의 인물이 세례 요한이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마태복음에서 이름이 밝혀진 사람 중 스칸달론과 관련된 이야기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해서 베드로로 끝이 난다. 예수의 선구자였던 세례 요한과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모두 스칸달론의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스칸달론의 위협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반증한다. 마태복음의 핵심적인 인물들은 거의 모두 스칸달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예수 자신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세례 요한과 스칸달론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을 성격묘사(characterization) 할 때, 꼭 “세례자”(the baptist)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이것은 그의 특징을 묘사하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의 역할을 한정하는 기능(limiting function)도 한다.(1) 또한 구약성서의 인용(이사야와 말라기)은 화자의 견해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2) 마태복음에서 요한은 결정적으로 엘리야로 간주된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선포, 행동, 반응에 있어 예수를 선취하는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예언자 보다 위대한 자이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다(마11:9, 11). 하지만, 이런 위대한 인물도 스칸달론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세례자와 관련하여 스칸달론이 언급되는 부분은 마11:6이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 자(μὴ σακαδαλισθῇ)는 복이 있다”(마11:6). 세례자의 질문(11:2-3)에 대한 예수의 대답(4-5)은 6절의 축복문으로 끝이 난다. 이 축복문은 앞에 있었던 산상설교 중 팔복의 축복을 연상시킨다(마5:3-12). 그러나 팔복의 축복이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세례자에게 하신 말씀은 “~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독특하다.

세례 요한은 왜 스칸달론의 위기에 직면하였는가? 유력한 대답은 세례자는 자신이 기다렸던 종말론적 심판자로서의 “오실 그분”(마3:11)과 그가 들은 “그리스도의 일”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3) 이 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스칸달론의 가능성과 절망 속에서 질문”을 하게 된다.(4) 하지만 그가 확실하게 실족해서 신앙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수는 “나를 인하여 넘어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실 때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스칸달론의 가능성에 노출되었지만 결국 이 질문의 시점에서 확실하게 걸려 넘어졌다고 결론내릴 이유는 없다. 예수는 요한이 넘어지지 않도록 격려한 것 같다.(5)

마태복음 중에서 마11:1-6만이 요한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에만 있는 세례 시 예수와 요한의 대화는 마태복음의 세례 요한이 악마적 형상으로 그려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프르치빌스키(B. Przybylski)는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세례가 시험이야기로 보여질 수 있으며, 세례 요한은 부지중의 유혹자(tempter)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6) 포웰(J. E. Powell)도 유사한 주장을 한다. 포웰에 따르면 3:15의 “이제 허락하라”(Ἄφες ἄρτι)는 “나를 떠나가라”로 번역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요한이 허락했다”(τότε ἀφίησιν αὐτόν)도 “요한이 그를 떠났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떠나다”는 말은 시험 이야기의 사단(마4:11)과 연관된다. “사단아 물러가라 그리고 사단은 그를 떠났다”(τότε ἀφίησιν αὐτόν ὁ διάβολος)(마4:11)(7)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은 한글 번역에 “요한이 말려 가로되”(마3:14)로 번역된 본문은 “요한이 (계속해서) 방해했다(διεκώλυεν)”고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르치빌스키와 포웰의 주장이 맞다면, 마3:14-15에서 요한은 예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인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마3:15c가 떠나가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마3:16의 세례의 주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아마도 유혹자로서의 악마적 세례자 상은 구전전승의 내용이고, 마태복음은 이를 “허락”의 문맥에 삽입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스칸달론 

  마태 내러티브에서 예수 자신이 스칸달론의 위기에 노출되셨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놀랍다. 마태복음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신앙고백 직후 예수와 베드로의 갈등을 서술함에 있어 마가복음에 없는 독특한 진술을 첨가시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연적으로(δεῖ) 수난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자(마16:21), 베드로는 그를 꾸짖으며(ἐπιτιμᾶν), 예수께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마16:22). 이 때 예수는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의 걸림돌(σκάνδαλον)이다”(마16:23)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걸림돌이다”는 구절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이 구절은 마태의 독특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자가 사단이 되고 스칸달론이 된다는 사실은 제자도에 내재해 있는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마태는 “너는 나의 걸림돌이다”는 구절을 삽입하여 이러한 충격을 보다 강화시킨다.

이 구절에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16:23)은 내러티브의 앞부분에 있었던 시험이야기를 연상시킨다.(8) 마4:1-10과 평행을 이루는 누가복음 구절을 살펴보면(눅4:8)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4:10의 “사단아 물러가라”는 막8:33을 마태가 받아서 마4:10과 마16:23에 사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태는 베드로를 과거 산에서 예수를 시험했던 그 사단의 반복으로 만들어 그를 더욱 악마적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예수는 사단과 베드로로 말미암아 스칸달론의 위기에 빠지지만 이를 극복한다.

편의상 시험이야기(마4:1-11)를 시험1이라 하고, 베드로의 꾸짖음(마16:21)을 시험2라고 할 때, 스칸달론이라는 말이 명시되지는 않지만 동일한 어휘와 구조로 이루어진 시험3이 있다. 시험3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마27:4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은 시험이야기에서 사단이 예수를 유혹한 바로 그 말이다. 시험3의 군중의 말에서 예수를 실족시키려는 악마의 유혹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마1:21)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다.(9)

예수를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유혹은 시험1과 시험2를 거쳐 시험3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시험1과 시험3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동일한 말로 유혹한다. 시험1과 시험3은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를 의심하게 한다. 예수는 시험1과 시험2에서 동일하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선포한다. 시험1,2,3에서 예수에게 주어진 시험은 수난과 십자가를 회피하라는 것이었다. 마태복음의 기록자의 의견에 따르면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유혹이며 스칸달론이다. 마태의 서사에 따르면 예수는 세 번에 걸친 큰 스칸달론의 위기를 모두 극복했다.

비록 스칸달론이라는 명확한 단어가 사용되지 않지만 겟세마네의 기도 장면(마26:36-46)은 마태복음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스칸달론에 의한 위기를 반영한다. 수난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들보다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는 사단적인 사고방식이라면(마16:23), 겟세마네의 예수는 가능하다면 수난과 십자가(이 잔)를 피하려고 기도한다(마26:39, 42, 44). 그러나 예수는 결코 실족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가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사람의 일들보다 하나님의 일들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겟세마네에서 예수의 모습은 스칸달론을 극복하는 위대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시몬 베드로와 실족

베드로는 마태복음의 스칸달론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마태 서사에서 그는 넘어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앤더슨(J. C. Anderson)에 따르면 베드로는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이”(spokesman)와 “원형적인 제자”(Prototypical Disciple)로,  “강함과 약함”과 “극적 아이러니”를 지니는 인물로 성격묘사(characterization)된다.(10) “강함과 약함”이라는 성격묘사에서도 드러나지만 베드로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는 강한 면모를 보이다가 이내 실족하는 약함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아래의 문장들에서 알 수 있듯 마태복음에는 ‘당신은 ~이다’(σὺ εἶ)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Σὺ εἶ ὁ Χριτὸς)와 “너는 베드로라”(σὺ εἶ Πέτρος) 사이의 평행은 자주 지적되었다.(11) “너는 베드로라”는 마태복음에만 있다.(12) 마태복음은 이 반석 위에 예수의 교회를 세운다고 서술하고 있다(마16:18).(13)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반석이다(마16:19). 하지만 이 부분에서 베드로에 대한 역설적인 “이중말씀”(zwei Worte an Petrus)이 있는데 그것은 너는 베드로라”와 대응하는 “너는 나의 걸림돌이다”(σκάδαλον εἶ ἐμοῦ/)이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메시아의 시험자”(Versucher des Mesias)로 나타난다.(14)

구대커는 탈버트의 마가복음 해석을 발전시켜 베드로의 강함과 약함, 그리고 위대함과 실족의 아이러니가 마태복음에서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지 적절하게 지적했다. 탈버트는 씨뿌리는 비유(막4:1-20)가 마가복음 등장인물의 성격형성(building character)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녀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돌밭”으로 간주했다. 돌밭으로 상징되는 베드로와 제자들은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예수의 말씀을 받지만 이내 환란과 핍박이 오면 두려움과 실패에 빠지고 만다.(15) 구대커의 견해에 따르면, 마태는 마가복음의 이러한 관점을 더욱 발전시킨다. 마태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사건 중 하나는 베드로가 물 위에서 모험하는 장면(마14:22-34)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물 위를 걷지만 바람이 불자 이내 침몰한다. 이 이야기에서 바람은 씨 뿌리는 비유의 태양과 같은 작용을 한다. 마16:23f에서도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서 반석이라는 칭호를 받지만, 이내 걸림돌과 사단이 된다. 겟세마네에 앞서 베드로는 실족 예고 받은 후에도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하지만 그 밤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이내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마26:31-35; 26:69-75).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스칸달론으로서의 베드로라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마16:23). 마가복음이 이미 베드로를 사단으로 불러 충격적인 제자상을 그려 놓았다면, 마태복음은 이러한 악마적인 제자상을 보다 강화시키고 확장시키고 있다.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베드로의 신앙을 더욱 부각시키는 동시에 악마적인 특징을 강화시킴으로써, 스칸달론의 공포와 역설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위대하고 중요한 인물이 넘어질수록 그 넘어지는 사람을 지켜보는 이의 충격과 안타까움은 크다.

베드로의 아이러니(irony)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와 구분되는 “소포클레스적 아이러니” 혹은 “비극적 아이러니”이다. 소포클레스적-비극적 아이러니는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으면 뜻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할 경우”를 의미한다.(16) 베드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걸림돌이면서 동시에 걸려 넘어지는 자가 되었다. 동일한 하나의 돌이 공동체의 반석이면서 동시에 걸림돌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주

(미주 1) J. C. Anderson, Matthew's Narrative Web: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Sheffield, JSOT Press, 1994), p. 84. 마태복음의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예수 그리스도, 시몬 베드로.
(미주 2) Anderson, Matthew's Narrative Web, 84.
(미주 3) H. Ridderbos, 『마태복음(하)』, 오광만 역 (서울, 여수룬, 1990), 330.
(미주 4) Hwa-Sun Lie, Der Begriff Skandalon im Neuen Testament und der Wiederkehrgedanke bei Laotse (Frankfurt/M: Peter Lang & Bern, Herbert Lang, 1973), 27.
(미주 5) 『성서신학사전』, ed. X. L. Dufour, 임춘갑 역 (서울, 종로서적출판주식회사, 1993), 451에서는 이 구절을 “자기(예수)를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말씀으로 읽는다.
(미주 6) B. Przybylski, “The Role of Mt.3:13-4:11 in the Structure and Theology of the Gospel of Matthew,” BThB 4 (1974): 224, D. B. Howell, Matthew’s inclusive story : a study in the narrative rhetoric of the first gospel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0), 123에서 재인용.
(미주 7) 이상 J. E. Powell, The Evolution of The Gospel : A New Translation of the First Gospel with Commentary and Introductory Essay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on Press, 1994), 66 참조.
(미주 8) R. A. Edwards, 『마태의 예수 이야기』, 유복곤 역 (서울, 솔로몬, 1996), 97. 사본에 따라서 ὀπίσω μου가 있는 사본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본이 있다.
(미주 9) Edwards,『마태의 예수 이야기』, p. 143. 마태복음 전체의 시험에 관한 토론으로는 .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AG Zürich und GmbH, Neukirchen-Vluyn, Benzinger Verlag und Neukirchener Verlag, 1985), 164 참조.
(미주 10) Anderson, Matthew’s Narrative Web, 92-97.
(미주 11) H. Riley, The First Gospel (Macon, Georgia, Mercer University Press, 1992), p. 31. 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286.
(미주 12) D. R. A. Hare, 『마태복음』, 최재덕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268에서 헤어는 “너는 베드로라”는 번역보다 “너는 돌(Stone)이라”로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πετρος를 하나의 돌(a stone)로 간주한다.
(미주 13) E. Schweizer, 『마태오복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358에서 슈바이처는 <반석>은 베드로이며 그의 고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볼 때에만 언어유희가 하나의 의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주 14) P. Hoffmann, “Der Petrus-Primat im Matthäusevangelium” in Studien zur Frühgeschichte der Jesus-Bewegung (GmbH, Stuttgar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1994), 340.
(미주 15) M. A. Tolbert, “How the Gospel of Mark builds character?,” Interpretation 47 (1993) : 347-357에서 탈버트는 네 땅을 다음과 같이 등장인물들과 연결시킨다: ① 길가에 떨어진 씨앗: 예수의 반대자인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그리고 다른 종교 지도자들 ② 돌밭에 뿌려진 씨앗: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 ③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 예수를 따르기 원했던 부자 청년, 헤롯, 빌라도 ④ 옥토: 바디매오와 예수에게 고침 받은 익명의 개인들. W. W. Babur, “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the Utter De(con)struction of Matthew and his Church,” Biblical Interpretation 3 (1995): 147-148에서 바버는 “돌밭(πετρῶδες)은 베드로(Πέτρος)의 전기(biography)이다”라고 평가한다.  Goodacre, “The Rock on Rocky Ground.” 70에서 재인용.
(미주 16) http://100.naver.com/100.nhn?docid=105475,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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