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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一不異(불일불이)창조 세계를 파괴하는 악(창세기 3:17-1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11.01 16:02
▲ Lucas Cranach der Ältere, 「Paradise」 (1530) ⓒGetty Image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부 정책이 나오면 다음날 그 대책이 생긴다.” 어떤 범죄나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대책을 바로 또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정부의 정책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봤자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정책에 대한 대책을 끊임없이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25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사회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은 듯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서 법을 우롱하는 이들의 모습을 많이 봅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에 속한 이들부터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법을 다루는 이들이 법 밖에서 잘못된 일을 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법이나 정부의 정책을 피하며 잘못을 행하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됩니다. 최근 이런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분야가 부동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수많은 정책을 만들어냈지만, 다음날이면 ‘정부 정책을 벗어난 절호의 투자 기회’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나 현수막, 인터넷 광고를 보게 됩니다.

어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일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 사회는 결국 일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대책을 세워가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모습으로 본다면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니 이런 사람의 모습은 과거에도 똑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보전하기 위해 어떤 정책, 사람을 향한 징벌을 내리시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합니다. 오늘 그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람에게 허용된 음식과 그 대책

창세기 1-11장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 선악과 이야기, 가인과 아벨 이야기, 홍수 이야기, 마지막으로 바벨탑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분명 단편 단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때 누군가가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어서 전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하나의 이야기 묶음으로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묶음 작업 속에서 단편이었던 이야기들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됩니다. 창조 이야기와 홍수 이야기는 창조와 재창조라는 의미를 얻게 됩니다.

인간에 의해 땅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태초의 땅과 물이 혼합되어 있는 혼돈 상태로 되돌리시기 위해, 홍수를 내리실 수밖에 없었다는 커다란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누가 이런 작업을 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어떤 이들이 조금 특이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깨닫지 못할, 채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 감춰져 있는 경향이 있고, 약간 엉성한 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와 재창조’ 이야기를 묶은 집단과는 다른 집단이 이 작업을 했다고 봅니다. 이들이 이미 엮인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여 놓은 것인지, 이들이 먼저 엮어놓았던 이야기를 더 후대의 사람들이 ‘창조와 재창조’ 이야기로 각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창세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떤 결론을 내주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먹거리를 지정하십니다. 1장 29절에 보면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시사철 열매가 맺혀있는 에덴동산이라면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 사건이 벌어진 이후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허용된 먹거리는 채소와 열매 뿐이었는데, 앞으로는 고생하며 이를 재배하고 수확해야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도 먹거리에 대한 지정이 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창세기 9장에서 홍수 이후 하나님과 노아가 언약을 맺는 장면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산 동물을 먹도록’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과 9장 사이에 사람이 육식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뜬금없이 육식을 허락하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연관성 있어 보이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분명 인간의 마음에 의해 자행된 살해 행위입니다. 이는 가인의 자손인 라멕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채식과 연결된 이야기는 가인과 아벨의 직업과 그들의 제사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징벌에 따라 사람은 밭을 경작하며 그 소산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은 이 징벌에 대한 대책을 세웁니다. 허락되진 않았지만 금지되지도 않았던 육식입니다.

그렇다면 육식을 위해 축산업을 시작한 아벨이 더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벨이 자신이 키운 양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이야기는 그가 사람의 먹거리를 목적으로 양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가인은 사람에게 허용된 먹거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자신에게는 밭의 소산 이외에도 다른 먹거리, 동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생명을 가볍게 여겼기에 가인은 사람의 목숨도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아벨을 죽입니다. 가인의 자손 라멕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자신은 살인했다고 말합니다. 남의 목숨은 자신의 목숨보다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풍조가 퍼져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홍수 때까지 동물은 동물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태워진 동물들은 서로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창세기 6장 21절을 보면 방주 안에 있던 모든 생명은 노아가 저축한 ‘양식’을 먹습니다. 이 ‘양식’은 히브리어 ‘마아칼(מאכל)’인데, 기본 의미가 ‘먹거리’이기 때문에 고기와 채소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이지만, 창세기에서는 ‘고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동물까지도 홍수로 멸하신 이유는 동물을 잡아 죽이고, 사람마저 죽이는 이 모습이 동물들에게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창세기 9장에 나타난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온 생명 사이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동물이 동물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에게 허용되었듯 동물도 다른 동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대책, 망가지는 세상

창세기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아마 이사야 65장이 기록된 시기와 비슷할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25절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살펴본 창세기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찰스 다윈은 약육강식이 진화를 위한 동물의 기본 본능이라고 말했지만, 창세기를 편집하며 후대에 전달한 이들은 이것이 본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대책을 세워간 사람들로부터 유래한 악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역으로도 작용합니다. 사람이 서로를 죽이는 일을 그쳤을 때, 동물들까지 그런 행위를 멈추게 되며,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않는 선한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말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홍수가 그친 후에 사람들은 홍수에도 지지 않을 높은 건축물을 만듭니다. 바로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에는 이방 민족을 막기 위한 군사력을 강화합니다. 왕을 세움으로 대책을 세웁니다. 자신들의 군사력 이상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에 의해 심판받을 때는 다른 군사력을 가진 국가의 속국이 되어 거대 국가를 막을 대책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사람의 대책 강구는 끊임없이 악을 행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가 평안을 누리는 세상보다는 나만 편하게 잘 사는 세상을 살겠다는 욕망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이런 행동은 끊임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65장이 기록된 시기,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사람들은 이것이 국가의 멸망에서 멈추지 않고 창조 세계 전체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모든 사람이 함께 평안을 누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많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런 일이 없으면 돼’라는 생각입니다. 과거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환경을 파괴해왔습니다.

기상 학자들은 기후 온난화로 인해 최소 2100년에는 전 지구적인 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제를 더 예민하게 바라보는 학자들은 2040년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나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그냥 버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체 기관도 심한 손상이 생기면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학자들은 지금 지구는 회복 불가능 상태라고 말합니다. 다만 더 악화되지 않도록 막는 방법밖에 없다고 합니다.

앞서 정부 정책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가짐,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내 이익을 위해 대책을 세우는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모습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려는 대책을 만드는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파괴하며 아무도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창조절 기간에 우리가 이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내가 살아있는 순간에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금 나라를 망쳐가고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인류의 기원 이야기에 채식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사람의 죄는 결국 창조 세계의 파괴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던 이들의 신앙, 죄를 제거하고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창조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던 이들의 신앙을 다시금 보았으면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지금보다 발전할지 모르지만, 환경은 더욱 가혹해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과거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온 것처럼 돔으로 된 안전지대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악한 일을 행하여 결국 하나님의 창조 세계까지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가기에 창조 세계를 보전시키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함께 평안을 누리는 세상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도 함께 회복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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