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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노동자, 청년 전태일에게 현실을 말하다오늘날 청년 노동자와 전태일 정신 ⑴
오세요 목사(한국민중신학회) | 승인 2020.11.09 15:46
▲ 전태일(왼쪽)이 평화시장 화장실 옆에서 재단보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태일재단 제공
이 글은 지난 11월5일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한국교회, 전태일을 기억하다> 심포지엄에서 민중신학회 오세요 목사님이 발표하신 발표문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오세요 목사님과 전태일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22세의 노동자 전태일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87 년 노동자 대투쟁을 비롯한 크고 작은 노동쟁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0년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 블릭'에 의뢰하여 만 19-55세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39.9%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규직(34.7%)보다 비정규직(48.8%)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전태일이 일하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노동 처우가 나아졌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정규직의 69.8%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52.8%가 그렇다고 답했다. 세대별로 나눠보자면 50대는 81.4%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20대는 절반가량인 50.5%에 그쳤다.(미주 1) 또한 올 한해 지금까지 15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며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또한 늘어가고 있다. 본 글은 오늘날 ‘청년 노동자’, ‘청년 전태일’, ‘전태일 정신’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작용하는지, 그리고 각각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청년’이라는 모호한 사람들

오늘날 청년 노동자의 현실을 다루기에 앞서 검토해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청년이 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 청년이라는 단어를 먼저 규정하지 않고 ‘청년 노동자’라는 개념을 말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가니 인생의 백년가지 주마같도다
- 학도가 (작사, 작곡 미상)

청년이란 고정된 개념이라고 보기에 다소 애매한 개념이다. 혹자는 청년이라는 특정 연령대가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명확한 기준은 제시되지 않는다.

청년기본법에 따르면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이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청년으로 제시하고 있다(단,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할 경우 15세 이상 34세 이하, 2019년 9월 10일 개정).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에 따르면 (예비)청년창업자는 39세 이하의 사람을, 중소기업 인력지원 특별법에 따르면 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사람을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거대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선 45세 미만을 청년으로 규정한다. 몇몇 지자체의 청년발전 기본조례는 49세 이하를 청년 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이 모호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의 균일한 대상으로 청년이 라 부를 수 있을까?

청년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쓰였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쓰여왔는가? 19세기 말엽 동경 유학생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청년은 1910년대부터 본격적인 근대문학이 등장하면서 사회와 문학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근대는 과학과 합리주의의 시대였으며 합리적인 인간상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되는 시기였다. 이런 인간형을 만드는 것은 ‘교육’이었으며, 또한 근대적 교육의 내면화는 동시에 식민지 규율 속으로 편입됨을 의미했다.

이 시기의 신교육운동에는 민중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식이라는 새로운 힘에 대한 담론이 대두되었으며 이 담론의 중심에는 성숙의 과정에 놓여있는 청년이 있었다.(미주 2) 청년은 봉건적 구습을 타파하는 근대적 인물상으로 빚어진다. 이러한 청년의 구성은 일본의 조선 강탈 이후 새로운 성격을 부여받는다.

국권 상실 이후 지식인의 상실감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 배를 벗어나고 발전을 실현시킬 대상을 찾았으며 그 대상으로 청년이 호명된다. 청년이라는 가득 차지 않은 기표는 이렇게 개인의 안위보다 더 큰 가치를 갈망하는 젊은이라는 기의로 채 워지기 시작한다.(3) 이들은 스스로를 신교육을 받고 신문학을 쓰고 읽는 신청년으로 정체화 하였는데 이는 기존의 봉건적 구습의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1917년 창간된 조선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 ‘기독청년’을 통해 기독청년이라는 개념이 구성되기 시작하는데, ‘이광수’와 ‘전영택’의 글에서부터 ‘기독교 + 청년’이 아닌 ‘기독청년’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기독교 사회화라는 원칙에 따라 기독청년은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과학(신학문)을 익힌 신체건강한 청년으로 민족개혁과 기독교 사회화를 이룰 주체로 호명하였으므로 기독청년은 기독교의 목적을 이루고 민족의 천년대계를 확립 할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로 호명되었다.

1910년대 후반에 이르면 청년은 이전세대와 단절을 선언하고 신인류를 자처한 세대를 의미하는 용어가 되는데 이는 역시 기성세대와의 불화를 의 미했으며 기독청년 역시 유교의 타성에 젖어있는 부모세대, 혹은 교역자, 목사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4) 기성세대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지덕체와 영성의 균형을 갖춘 기독청년이라는 개념은 어느정도 196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5)

한편 청년은 군국주의 그리고 해방과 전쟁의 기간 동안 사회 안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기보단 전쟁과 이념의 도구로써 활용되었다. 사회에서 청년의 새로운 면모가 발견된 것은 산업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산업화되는 도시의 청년들은 전후 세대로 전쟁의 상흔이 크게 기억되지 않은 세대였다. 산업화시대의 청년은 산업화의 열매를 독점하는 주체, 재벌로 성장하기를 요구받는 세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의 주체로서의 청년의 상도 등장하게 된다.(6)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모범업체를 만드는 꿈을 가졌던(7) 전태일 역시 청년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할 때는 저항의 주체로서 일종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의 의미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69년 11월 집필하고 박정희에게 발송하지는 못한 탄원서 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루기로 한다.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 저는 피 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써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8)

1970년대 이후 청년들은 저항의 주체로 정체화하면서 동시에 자신들만의 청년문화를 갖게 된 세대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김병익 기자는 청년의 자체문화가 탄생시킨 스타 김민기, 서봉수, 양희은, 이상용, 이장희, 최인호를 언급하며 쓴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무기력한 선배와 폐쇄적인 현실을 야유하면서 순진한 야성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야성은 정치적 좌절과 사회적 패배주의를 우회 극복하는 「새부대에 담길 새 포도주」. 이들의 힘은 거짓을 증오하고 허황함을 비웃으며 안일을 비판하고 상투성을 공격하며 침묵을 슬퍼하는데 있다. … (중략) … 블루진과 통기타와 생맥주 | 이것은 육당과 춘원, 삼일운동과 광주학생운동, 사일구와 육삼데모로 연연이 이어온 청년운동 이 70년대에 착용한 새로운 의상이다. 그리고 청년문화는 잠재된 젊은 힘의 잠재적인 표현(9)

80년대에 접어들며 청년문화는 기성세대, 문화에 대한 거부와 더불어 대안문화로써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러나 386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이 문화는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생들의 문화였고 80년대 대학진학률이 30%대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고려해볼 때 제한적인 세대 개념일 수밖에 없었다. 최성민의 지적에 의하면 청년은 동일 연령대의 농촌 젊은 이가 아니라 대학생만을 수식할 수 있는 표현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청년은 특정 세대가 하나 의 정치, 문화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계급적 개념까지 덧씌워지게 되었 다.(10) 이는 한편으로는 청년의 대표성을 누가 가져가게 되었는지를 나타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청년, 대학생들의 집회 및 시위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1991년의 정원식 총리 달걀 세례 사건과 소련의 붕괴, 1996년의 연세대 사태,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청년, 대학생의 자체 의제설정과 그 영향력은 이전과 비교하여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990년대의 청년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신세대로 호명된다.(11) 이들은 자체 문화의 생산, 향유자라기보단 소비문화의 주체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최성민의 말을 빌리자면 ‘‘소비의 주체’라는표현은 그 자체로 모순되는 표현일 뿐이다. ‘소비자’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상품을 구입하게 만들 ‘객체’일 뿐이다.’(12)

이후 소비의 주체로 있던 청년은 소비에서조차 밀려나 ‘88만원 세대’(2007년)로 명명된다. 이후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하여 청년담론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김선기는 2008년에서 2017년에 이르는 10년간 신문 지면에 등장한 세대의 명칭 30건을 조사하였고 보수 매체에서는 청년세대가 가진 고유한 능력과 잠재력을 강조하고 예찬하는 명명을 하고 구성하는데 반해 진보 매체에서는 청년세대의 탈정치적 성향에 대한 비판과 청년 세대의 정치 및 투표 참여에 대한 요구의 빈도가 각각 높다는 진단을 내놓았다.(13)

일련의 흐름 가운데 청년 담론과 청년을 일컫는 세대 명칭이 자기명명에서 호명의 시기로 넘어가며 청년은 주체적이고 선언적 존재라기보단 필요에 따라 소환되는 이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 미루어볼 때 청년이란 균일한 집단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늘날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을 ‘청년’이라 뭉뚱그려 호출하는 것은 성실하지 못하고 기만적이며 필요에 따른 일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 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청년 노동자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

나는 인부 1이에요
소금밭, 공사장, 길거리 어디에든 쉽게 있어요 사라져도 모를 일이죠
- 유하 – 인부 1

2016년 5월 28일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스크린 도어를 수리 중이던 용역업체 은성PSD 직원 김 모 씨(당시 19세)였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의아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같은 뉴스를 이미 접한 적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2015년 8월 29일 2호선 강남역, 외주 정비업체 직원 조 모 씨(29). 2013년 1월 29일 2호선 성수역, 외주 정비업체 직원 심 모 씨(37) … 이 외에도 비슷한 사고들이 있었 다. 구의역 김 모 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그동안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던 유사 사건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8년 12월 11일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서부발전의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김용균 씨(24)였다.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나고 많은 사람이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를 발생시킨 기업과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을 요구했다.

뉴스타파의 강혜인 기자의 언급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18세에서 24세 청년의 산재 사망 원인 1위는 배달 노동이었다. 2016년 21명, 2017년 13명, 2018년 30명, 2019년도 상반기까지 8명의 청년 산재 사망자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44%인 32명이 배달 노동 도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4) 유성규 노무사는 사고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단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빠른 서비스를 원 하는 업장들의 요구가 있겠죠. 또 이러한 업장들의 요구를 받은 이제 어플 업체들. 이런 어플 업체들의 압박이 있을 거고요. 또 다른 원인은 노동자들이 한 건 배달하면 3000원 안팎의 수수료를 받거든요. 그런데 1시간 안에 느긋하게 하면 한 2건 정도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럼 현행 최저임금이 8590원입니다, 1시간에 … (중략) … 그러면 두 건을 한다 그러면 6000원. 사실 그런데 6000원도 다 온전히 가져가는 게 아니고 거기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는 값, 기름값, 보험료, 감가상각비 등을 제외를 하고 나면 사실은 훨씬 더 낮은 수수료를 노동자가 가져가게 되는 거거든요. 결국 노동자가 이제 최저시급이라도 챙기려면 위험한 운전을 감수해야 되는 이런 상황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게 두 번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15)

한편 이런 배달노동자의 처우는 기술에 의해 이전보다 좋아지기보다 다소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1위 배달 전문 기업인 ‘배달의 민족’과 ‘배민라이더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AI배차를 확대 실시했다. 배달노동자에게 자동으로 배달이 배정되고 AI가 산출한 경로를 따라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도로 환경이나 지형을 반영하지 않은 직선거리로 주문이 배정되고 이에 따른 배달 권장 시간이 산출된다. 배달노동자들은 이 시간에 맞춰 급하게 운행해야 한다.

다른 배송업체인 ‘쿠팡 이츠’의 경우에는 배달의 신속 정도에 따라 평점이 매겨지는데 평점이 낮을수록 배차받기 어려운 구조이다.(16) 이들 배달 노동자의 상당수는 플랫폼 노동자이다. 이들은 기업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바 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 2019년 2월호에 게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청년(15-29세) 노동자가 67만 8,000여 명으로 전체 청년 노동자의 약 18.4%를 차지했다고 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5,972원으로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의 79.3%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미만 청년 노동자는 주로 음식·숙박업(37.9%)과 도·소매업(23.0%)에 종사했고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률과 시간 외 수당 수혜율은 26.5%, 17.7%로 매우 낮았다.(17)

이처럼 청년노동은 불안정과 고위험이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청년’만의 문제일까?’ 하는 의심을 놓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여성과 노인에게 제공되는 일자리 상당수가 불안정함 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그밖에도 이주노동자의 상당수는 불안정 – 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은 고용허가제(18)로 인해 사업장 변경의 횟수가 3년 동안 3회로 제한되고, 사장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관리 밖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몹시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다.- , 고위험 사업장에서 일한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하루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한다. ‘이달의 기업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산재 사망자 기록을 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산재 사망 노동자는 총 591명으로 월 평균 6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19) 이는 우리의 노동현실이 ‘죽음정치적 노동’을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알려준다.

이진경은 생명권력(생체-권력)과 노동의 개념을 죽음과 그 가능성에 연결한 것으로 재개념화 하며 죽음정치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죽음에 이르도록 연결지워진” 사람들로부터의 노동의 착취(추출)이며, 그로 인해 이미 죽음이나 생명의 처분가능성이 전제된 삶의 “부양”은, 국가나 제국의 노동의 요구에 응하도록 하는 선에서 제한된다.”(20)는 것이다. 즉 이러한 현실 안에서 노동자는 “노동이 수행된 때나 그 후에 내던져지고, 대체되고, (축자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살해”(21)당한다. 이 가운데 ‘청년’ 노동, ‘청년’ 노동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종의 필요에 따른 재현되고 소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미주

(미주 1) 정성조, “전태일 떠난 지 50년...직장인 40% "근로기준법 안 지켜진다",” 『연합뉴스』 (2020.10.04).
(미주 2) 양선정, “1910년대 근대소설에 나타난 청년상,” 『인문과학연구』 25(2010), 134.
(미주 3) 위의 글, 136-138.
(미주 4) 김민섭, “1910년대 후반 기독교 담론의 형성과 ‘기독청년’의 탄생,” 『한국기독교와 역사』 38(2013), 191-197.
(미주 5) 편집자, “교회청년의 좌표,” 『기독교사상』 11월호(1963), 89.
(미주 6) 최성민, “‘청년’개념과 청년 담론 서사의 변화 양상,” 『현대문학이론연구』 50(2012), 234-236.
(미주 7) 조영래, 『전태일 평전』 (파주: 돌베개, 2006), 223-229.
(미주 8) 위의 책, 217-218.
(미주 9) 김병익, “오늘날의 「젊은우상」들,” 『동아일보』 (1974.03.29).
(미주 10) 최성민, “‘청년’개념과 청년 담론 서사의 변화 양상,” 『현대문학이론연구』 50(2012), 238-239.
(미주 1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y.naver.com)에서 ‘신세대’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신세대는 89년까지 사용빈도가 100회가 안되던 단어였으나 1990년 247건의 기사, 1991년 252건의 기사, 1992년 550건의 기사, 1993년 1,658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이는 90년대들어 신세대라는 어휘가 새로운 의미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미주 12) 위의 글, 239-241.
(미주 13) 김선기, 『청년팔이 사회』 (파주: 오월의 봄, 2019), 2장. 세대론 홍수: 신세대부터 N포세대까지, http://digital.kyobobook.co.kr.
(미주 14) CBS 시사자키 제작진, “19살 사장님들의 죽음, 청년 산재사망 1위는 ‘배달’,” 『노컷뉴스』 (2020.02.03).
(미주 15) 위의 기사
(미주 16) 송락규, ““건물 뚫고 갈 수는 없잖아요”...위험에 내몰린 배달노동자들,” 『KBS』 (2020.10.01).
(미주 17) 이영재,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년 68만명...평균 시급 겨우 5천972원,” 『연합뉴스』 (2019.02.15).
(미주 18)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의 언급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하에서 지적받는 대표적 문제들로는 “① 사업장 변경 권리를 박탈하여 최장 9년 8개월 체류기간 동안 자발적 직장 이동이 불가능, ② 입국 전 근로계약 체결, ③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기숙사 월세를 올려 사실상 최저임금제 무력화, ④ 직장 이동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실근로자’라는 미명하에 재입국 취업 기회 제공, ⑤ 이주노동자에게 정보 제공을 하지 않기 위해 구직활동 시 알선장 미지급, ⑥ 사업장 변경 기간 3개월 제한으로 미등록자 대량 발생, ⑦ 농축산업 내 산업재해 보험 미적용 사업장 취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피해 속출, ⑧ 출국만기보험제도의 퇴직금 권리 제한, ⑨ 입국 전 인권교육 부재 등”이 있다. 우삼열,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의 현실과 그늘,” 『충북지역인권포럼』 (2017), 7.
(미주 19) “노동건강연대,” [이달의 기업살인] 김용균 죽었던 사업장에서 또… 9월, 65명이 집에 못갔다-정부 대 책 현장과 괴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청원 통과, 2020년 10월 13일 등록, 2020년 10월 28일 접속, http://laborhealth.or.kr/39124
(미주 20) 이진경,『서비스 이코노미』, 나병철 역(서울: 소명출판, 2015), 40.
(미주 21) 위의 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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