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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습관을 바꾸는 사람들“배우고 맛보라”(시편 34:11-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11.10 15:55
▲ 성서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장소에서도, 어떤 시간에서도 평안 누릴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며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바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과 그래서 삶의 모든 과정과 시간을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믿음과 감사의 고백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다르게 보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 이런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께 감사드리셨나요? 스스로가 믿음 안에 있는 지를 시험해 보고, 검증해 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는 늘 모이기를 힘쓰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요일에 함께 읽은 사도행전 본문에도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5-26의 말씀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단지 안디옥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마치 우리가 초도제일교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인가요?

당시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존경 받고, 칭송 받을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 모여 있던 이들은 자신들과 달랐고 그래서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평생을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고,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과는 다른 삶의 모습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삶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믿음대로 사는 삶은 끊임없이 듣고 배울 때 가능해집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권면합니다.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먼저는 들으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십니다. 이유는 이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들어갈 땅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신명기 6:1-4 “1 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 당신들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것을 지키십시오. 2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 당신들과 당신들 자손이 오래오래 잘 살 것입니다. 3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이 모든 말을 듣고 성심껏 지키면,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당신들이 잘 되고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삶의 습관을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익혀서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자신을 텅 비우고 다시 채워야 했습니다.

시편 1:1-2에도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힘듭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시지 않았는데, 마치 무언가를 경험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다고 하면서 남양주에 있는 사찰 건물을 불태우지 않았습니까? 이 소식을 듣고 참담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이다. 음성을 들었다. 환상을 보았다라고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폭력과 범죄행위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온전히 듣지 않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들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합니다. 잠언 1:7의 말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처럼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자신의 앎과 경험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12-14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어쩌면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행동합니다. 앞에 들려드린 사람들처럼 생명을 사모하지 않고, 혀를 악과 거짓말에 사용하고, 행동으로도 악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생명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자신의 혀를 악에서 금하고, 입술에서 거짓말을 금합니다. 또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라갑니다.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현 대통령인 트럼프라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이번 투표 때 라틴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주었다고 합니다. ‘어? 나를 차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투표할 수 있지?’

무엇 때문에 차별을 당하면서도 트럼프에게 투표를 했을까요? ‘일자리,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 앞에서는 평화도 생명도 어떤 숭고한 가치도 뒷전일 수밖에 없는 건 비단 다른 이들의 모습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일반적이라면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수 있기에,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비웠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삶의 모습이 변해갑니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자신의 이익과 뜻을 좇는 사람은 악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생명을 짓밟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운 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다른 삶을 삽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비울 때 우리는 참 생명과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주중에 제가 겪은 일과 이 일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된 점을 성도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sns에 올린 글의 전문입니다.

“한 장의 ‘내용증명서’가 집으로 도착했다. 교회의 가건물 두 개가 자신의 땅을 침범하였기에 철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19년 초도제일교회로 부임하고, 통일전망대가 가까운 교단 최북단의 교회로서 평화와 통일의 영성을 키워가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일들을 계획했다.

그 중 하나가 숙박이 될 수 있는 교회시설로 만들기 위해 샤워실과 화장실 겸용으로 교회 밖 원래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 한 거 였는데(성도님들의 헌금과 다른 교회들의 도움으로 90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내용증명에 나온 건물 중에 하나라며 철거하라는 것이다.

현재 군청에 토지 측량을 의뢰한 상태다. 실제로 남의 땅을 침범한 것이고, 땅 주인과 협의가 안 된다면 철거해야만 하고 또 철거할 생각이기도 하다. 교회 뒷 편 관리되지 않은 땅은 100평정도. 서울의 20평 아파트가 10억 20억을 부르는 시대에 이 땅의 가격은 공시지가로는 3천에서 3천5백 사이 정도가 된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교회의 어려운 재정으로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37년간 살 수가 없었고 이처럼 오늘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긴 설명을 했는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 일을 겪으며 처음엔 상당한 내상을 입었고 여러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리며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제 다 수포로 돌아가는구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건물 따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결정 날지 모르는데 너무 어리석게 생각했다.

건물이 철거가 될 수도 있다. 계획했던 일이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했던 마음은 어긋날 수 없다. 오히려 이제는 ‘이 마음’을 하나님이 어떻게 활용하실지 기대가 된다. 기도하며, 기다리자.”

저는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반팔을 입고 집 앞 넓은 주차장을 계속해서 돌던 저의 모습을 보신 성도님들이 계실 텐데요. 바로 이 날 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이거나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는 악한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살짝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제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또 성도님들과 어떤 마음으로 사역해야 할지 알려주시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시편 34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피할 때 평안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고 배우며 함께 자라고 성숙해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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