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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 사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다이스라엘 역사 알기 ⑼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0.11.12 17:14

서기관의 역할

지난번 글에 이어 ‘요시야’ 시절 종교 개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다음으로 생각해볼 인물은 서기관 ‘사반’입니다.

‘사반’이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서기관’이라는 직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서기관들의 모습 때문에 이들이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며 가르치는 ‘율법학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열왕기에 나타난 서기관의 역할과는 다릅니다.

히브리어로 ‘소페르(סֹפֵר)’인 서기관은 영어 성경에서도 다양한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열왕기하 22장 3절」에 나타난 ‘사반’의 직책에 대해, KJV(킹제임스성경)는 ‘필사자’라는 의미의 ‘scribe’, NIV와 NRSV는 ‘비서관’이라는 의미의 ‘secretary’, 대한성서공회에서 제공하는 영어 성경 CEV는 ‘고위 공직자’라는 의미의 ‘highest officials’로 번역합니다. 참고로 일본어 성경은 ‘書記(서기)’로 번역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기관은 아마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과 같은 ‘필사자’일 것입니다. 

▲ 현대 ‘소페르’의 모습 ⓒWikipedia

위의 사진은 현대의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페르’의 작업 사진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성경을 옮겨적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소페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소페르’의 다양한 번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서기관의 역할은 ‘필사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서기관과 구약성경의 서기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2000년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17호에 게재된 김영진의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의 서기관의 기능”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서기관의 역할에 관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서기관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표현되었고, 이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잘 정리된 논문입니다. 다만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포로기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지 않고 서기관의 역할을 정리하고 있기에, 성경 안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기관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소페르(סֹפֵר)’는 ‘셈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사파르(סָפַר)’의 분사 형태입니다. ‘사파르’는 의미가 확장되어 ‘쓰다’라는 뜻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파생어인 ‘세페르(סֵפֶר)’는 ‘문서’, ‘기록’, ‘편지’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서기관이라는 명칭은 「사무엘하 8장 17절」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다윗’이 국가를 세운 이후 그와 함께한 관료 명칭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후 ‘다윗’이 ‘세바’의 반역을 진압한 후에 그의 관료 명단이 다시 나타나는 「사무엘하 20장 23-26절」에도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도 그의 관료 명단이 나타나는데, 그 목록 중 「열왕기상 4장 3절」에서도 서기관이 나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관료 중 하나였던 서기관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명단만 제시되어 있을 뿐,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들이 등장하는 사건도 없습니다.

서기관의 역할은 「열왕기하 12장 4-16절」에 나타난 ‘요아스’ 시대에 성전 보수와 관련하여 새로운 규정을 제정할 때 처음 등장합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잠시 보았지만, ‘요아스’는 제사장들이 성전에 바쳐진 은을 관리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세웁니다. 성전에 바쳐진 은은 그대로 모았다가 상자가 가득 차면 제사장과 서기관이 함께 액수를 파악하고 봉인하여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전달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열왕기하 22장 3-6절」에서 ‘요시야’와 ‘사반’에 의해 재현됩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열왕기하 12장 10절」의 ‘소페르’를 ‘서기’로 번역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데, 개역개정 성경이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아마도 명사로만 기록된 ‘소페르(סֹפֵר)’와 정관사가 포함된 ‘하소페르(הַסֹּפֵר)’가 다른 직책이라고 말했던 당시의 일부 학설을 채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열왕기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서기관의 역할은 어원 그대로인 ‘셈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아마 나라의 재정과 관련된 일을 했을 것이며, 지금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기획재정부 장관’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들이 금전과 관련된 일을 했다는 점은 「예레미야 32장 6-15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레미야는 토지 매매의 공증을 서기관인 ‘바룩’에게 맡깁니다. 일반적인 상거래에 서기관이 나설 필요는 없었겠지만, 토지 매매와 같은 중요한 일에는 서기관의 공증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기관은 이후 ‘히스기야’ 때에야 다시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18장 17-37절」에는 아시리아의 장군 ‘랍사게’가 남왕국을 농락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랍사게’와 대화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왕궁 책임자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였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관’이라는 직책입니다. 사관의 히브리어는 ‘마쯔키르(מַזְכִּיר)’로 ‘기억하다’ 또는 ‘남성’이라는 뜻을 가진 ‘짜카르(זכר)’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기억하는 직책’, 즉 ‘사건을 기록하여 남기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사관입니다. 서기관 외에 기록을 남기는 직책인 사관이 따로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시절 ‘랍사게’ 앞에 나선 서기관 ‘셉나’의 역할은 추측 가능합니다. 왕궁 책임자인 ‘엘리야김’은 왕의 말을 대신 전하는 역할이었을 것이고, 사관 ‘요아’의 역할은 기록을 남기는 일입니다. 남은 한 가지 역할은 통역입니다. 「열왕기하 18장 26절」에는 유다 말로 조롱하는 ‘랍사게’를 향해 아람어로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합니다. 물론 당시 많은 귀족은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국가의 대표로 아람어를 듣고 통역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이 서기관으로 보입니다.

사관이 따로 있다고 해도 서기관에게 주어진 문서 작성의 역할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관은 말 그대로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교문서, 내정문서와 같은 행정 문서는 서기관이 직접 작성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쩌면 행정 관료이기 때문에 당연한 역할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작성된 문서를 왕 앞에서 읽는 일도 서기관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열왕기하 22장 10절」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왕 앞에서 읽은 것은 서기관 ‘사반’이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도 서기관들이 왕이나 백성 앞에서 뭔가를 낭독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됩니다(렘36:10,21).

서기관의 역할이 율법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은 「열왕기하 22장」 ‘요시야’ 이후입니다. 사실 율법책의 발견으로 촉발된 ‘요시야’ 종교개혁은 서기관만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2-20절」을 보면 율법책의 확인 작업에는 제사장, 서기관, 여선지자 ‘훌다’가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이후 율법과 관련된 업무는 서기관이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8장 8절」의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나 「에스겔 9장 2-3절」의 ‘서기관의 먹 그릇’이라는 표현은 율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잘못된 규례와 법도를 비판하며 ‘서기관의 거짓의 붓’을 말하였고, 「에스겔」에서 ‘서기관의 먹 그릇’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마에 히브리어 ‘타브(ת)’를 그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시대부터 살았던 예언자이고 ‘에스겔’은 그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 36장」에서 ‘바룩’을 통해 ‘예레미야’의 선포를 전해 들은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였고 이를 당시 왕이었던 ‘여호야김’ 앞에서 낭독합니다. ‘바룩’이 서기관들에게 ‘예레미야’의 예언 두루마리를 가져간 사실부터 그들이 율법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리해보자면, 「열왕기」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해 살펴본 서기관의 기초 역할은 재무와 관련된 일입니다. 재무 관련 업무만 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수반된 문서 작성도 수행했을 것입니다. 때로 서기관은 외교 업무도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기관의 업무가 늘어났다기보다 외교 업무를 보는 이들도 서기관이라는 호칭 안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 업무에도 외교문서는 당연히 수반됩니다. 「열왕기」에 사용된 문서를 의미하는 ‘세페르’는 보통 ‘공식 문서’를 뜻합니다(왕상21:8; 왕하5:5ff; 10:1f, 6f 참고).

서기관은 지금으로 보자면 행정고시에 합격한 국가직 공무원 정도가 될 듯합니다. 그런데 ‘요시야’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서기관의 역할은 일반 공무원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합니다. 바로 율법과 관련된 일, 종교적 색채를 빼자면 법에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다루게 됩니다.

서기관 사반 집안

이제 이런 전환기에 있었던 ‘사반’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반’ 자신보다는 그 집안에 대해 살펴본다고 말하는 편이 맞습니다. ‘요시야’ 이후 포로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어떤 권력 관계가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앞서 이야기한 서기관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반’은 계속 언급되듯이 ‘요시야’와 함께 종교개혁을 일으킨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사실 「열왕기하 22-23장」에서 ‘사반’의 역할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요시야’의 옆에서 종교개혁을 도운 사람으로만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그의 계보를 살펴보겠습니다.

▲ 사반 집안의 계보

‘사반’의 아들들과 손자들의 이름은 「열왕기하」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에스겔」에 등장합니다. 「열왕기」에는 「열왕기하 22-23장」에 ‘사반’과 그의 아들 ‘아히감’이 ‘요시야’와 함께 종교개혁을 이루었다는 내용과 「열왕기하 25장 22절」에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예레미야에서는 그다랴)’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남왕국을 관할하게 되었다는 말만 나옵니다.

‘사반’이 ‘요시야’ 시절 그의 아들인 ‘아히감’과 함께 서기관이라는 관직에 있었다는 점과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남왕국의 총독이 된 점을 보면, ‘사반’ 집안이 ‘요시야’ 이후에도 계속 관직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달리야’가 총독이 되었다는 점은 ‘사반’ 집안이 관료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바벨론에 우호적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열왕기하」보다 ‘사반’의 아들들이 자주 등장하는 책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 26장」에는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의 성전 선포를 들은 제사장과 예언자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사장과 예언자들은 ‘예레미야’를 성전 문으로 끌고 가 재판을 받도록 하는데, 이때 지방 장로들이 ‘예레미야’를 죽여선 안 된다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결국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놓아주도록 하는데, 「예레미야 26장」에 나타난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여호야김’ 시대에 서기관에 의해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또 ‘아히감’이 한 사람의 생사가 걸린 재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29장」에는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시절 바벨론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낸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 편지를 맡은 인물이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였습니다. 이때의 ‘힐기야’가 대제사장 ‘힐기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편지만을 전하기 위해 바벨론으로 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이들은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절이었을 것이며 ‘예레미야’는 그 사절단을 통해 자신의 편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은 그가 ‘시드기야’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줍니다. 또 ‘사반’의 아들 ‘엘라사’는 바벨론 사절단 대표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고위 관직에 있었음을 알게 합니다.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손자 ‘미가야’는 「예레미야 36장」에서 ‘바룩’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전해 받는 서기관 대표로 나타납니다.

‘사반’ 이후로 그의 아들, 손자들은 계속해서 고위 관직에 올라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시드기야’ 시절 남왕국 땅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보면, 이들은 친바벨론 성향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달리야’가 총독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성향 때문인지 이들은 때로 ‘예레미야’를 돕기도 하며 원만한 관계를 맺었고, ‘시드기야’ 때에는 ‘예레미야’와 함께 망가진 남왕국의 재건을 위해 힘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사반’의 자손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는 성경도 있습니다. 바로 「에스겔 8장 11절」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 집안의 인물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당시 예루살렘에 관한 환상을 보는데, 그의 환상에 나타난 남겨진 남왕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고 성전을 떠나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은 그 환상 중에, 성전 어딘가에 있는,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새겨진 방에서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이방 제의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때 그 70명의 장로 중에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가 있었다고 ‘에스겔’은 말합니다.

‘야아사냐’는 오직 「에스겔」에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에스겔 8-11장」에 나타난 환상은 실제 사건이라기보다 은유에 가깝습니다. 특히 「에스겔 8장」의 성전 환상은 단순한 우상숭배의 문제보다 수많은 이방 민족을 의존하려는 남왕국 백성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상이 그려진 방’이 이집트 제의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반’의 아들이 그 명단에 들어가 있다는 점은 이 우상숭배가 바벨론 제의를 따른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듭니다. 각종 짐승이 그려진 벽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건축된 ‘이슈타르 문(Ishtar Gate)’을 연상케 합니다.

▲ 바벨론 ‘이슈타르 문(Ishtar Gate)’ ⓒWikipedia

위의 사진은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museum)에 전시된 것으로 ‘이슈타르 문’을 복원해 놓은 전시물입니다. 문의 정면에 새겨진 각종 짐승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에스겔 8장」의 우상숭배를 이집트와 연결시키는 이유는 ‘각종 곤충’ 때문입니다. 곤충에 대한 신앙은 이집트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그 방에서 이루어진 우상숭배 문제는 에스겔 연구에서 더 깊이 있게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이 환상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어떤 현상을 비판하기 위한 은유임은 분명합니다.

‘에스겔’의 환상이 하나의 은유라는 이야기는 ‘사반’의 자손들이 우상숭배를 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들, 특히 제사장 집안의 ‘에스겔’은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들을 우상 숭배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에스겔’은 그들과 함께 했던 예언자 ‘예레미야’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합니다.

포로기 이후의 서기관의 변화

남왕국이 완전히 멸망해버리고 바벨론 포로기 겪으면서 서기관이라는 직책은 의미 없는 직책이 되어버립니다.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행정 관리, 법을 연구하고 집행하는 관리는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또 고위 서기관이었던 ‘사반’의 자손들은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겨져 있다가 남왕국이 멸망하던 때에 모두 죽었거나 이집트로 도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포로기 이후 서기관이라는 직책은 완전히 의미가 변하게 됩니다. 본래는 행정 관리가 주업무였다면, 이제는 ‘율법 연구’와 ‘율법 필사’, ‘율법 교육’이 서기관의 업무가 됩니다. 서기관의 업무가 ‘율법’ 중심으로 바뀌자 그 직책을 맡는 구성원도 바뀌게 됩니다. 바로 제사장 집안 출신들이 그 업무를 맡게 됩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에스라’를 ‘학사’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학사’도 ‘소페르’입니다. ‘에스라’가 실존 인물인지 애매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연대도 맞지 않는데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특히 「에스라 7장 1-5절」에 나오는 ‘에스라’의 족보는 ‘사독’의 족보에 ‘에스라’만 이상하게 껴있습니다. 그것도 연대에 맞지 않게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제사장 집안 인물이며 서기관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남왕국에 남겨진 서기관 집안을 비판하였던 점, 포로기 이후 실존 인물인지도 족보가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제사장 집안 출신이라고 말하는 ‘에스라’가 서기관의 역할을 맡아서 율법을 가르치는 점을 보면, 포로기를 겪은 이후 남왕국 백성들 사이에 어떠한 권력 이동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서기관의 역할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다윗’의 혈통이라는 ‘이스마엘’이 자신의 왕조 정통성을 내세우며 총독 ‘그달리야’를 살해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남왕국의 역사를 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왕하25:25-26; 렘41:1-18).

개인적으로 ‘사독’ 집안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남왕국이 점령된 이후에 국가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의 친바벨론 성향은 일부의 반발을 샀을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살아남은 이들은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었기 때문에, ‘사반’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비해 좋지 않은 평가만이 남겨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시야’에서 바벨론 포로기에 이르는 시기는 구약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문서화된 율법에 관심이 생겨난 시기이고, 구약성경 대부분은 포로기 때에 문서화 됩니다. 포로기의 특성상 권력 관계도 크게 변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주요 관직자들인 ‘제사장’, ‘서기관’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남왕국 신앙과 북왕국 신앙의 융합에 힌트가 될 수도 있는 인물, 여선지자 ‘훌다’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훌다’까지 살펴본 이후에야 ‘요시야’ 시절에 발견된 율법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율법책에서 더 나아가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서까지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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