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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쉽게 메워지는 50년의 간극노동자의 인간선언과 그 신학적 메아리 ⑵
최형묵 회장(한국민중신학회) | 승인 2020.11.15 17:10
▲ 고 김용균 영결식에서 어머니 김미숙 씨가 ‘아들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2019년 2월9일) ⓒ뉴스1
이 글은 지난 11월5일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한국교회, 전태일을 기억하다> 심포지엄에서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이자 한국민중신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형묵 회장님의 발표문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최형묵 회장님과 전태일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스러져가며 혼신을 다해 다시 외친 말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였다. 전태일이 병원으로 실려가 떠난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을 누가 죽였는가?” “우리도 사람이다. 16시간 노동이 웬말이냐?”

그때와 지금

이로부터 딱 50년이 지난 오늘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주5일 근무제로 일요일은 쉬게 된 것, 하루 8시간 노동이 표준으로 정착된 것 정도일까? 그나마 휴일 없이 노동해야 하는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 무려 하루 18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들(1)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은 그마저 무색하게 한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전태일 50년 직장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응답하였다.(2) 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노동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안 지켜진다고 답한 것은 정규직(34.7%)보다 청년과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가 훨씬 높아 거의 절반(47.8%)에 이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내용은 ‘노동시간 및 휴가’(51.0%)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임금, 수당, 퇴직금 등 임금체불’(48.0%), ‘모성보호’(43.6%) 순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처우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대와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10명 중 3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늘 노동자들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가 막힌 일 아닌가?

지난 50년 동안 한국경제는 그 양적 규모로 볼 때 그야말로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현재 한국은 국민총생산(GDP)기준으로 볼 때 세계 12위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선진국의 지표로 받아들여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1996년) 오래되었고, 지난 해 2019년부터는 이른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 국가군)에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려 가히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큼 놀랍게 발전하였다. 산업화의 진전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진전도 급속히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조사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2018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민주주의의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국 178개국 가운데 12위를 차지하였다. 한국보다 앞선 경우는 모두 그 인구규모가 작은 유럽 국가들이고, 이른바 ‘30-50클럽’ 가운데서는 가장 앞선 순위에 해당한다.(3) 이 결과는 사실 최근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경험한 체험을 통해 볼 때 놀라운 것은 아니다. 심지어 최근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는 이른바 ‘K-방역’의 성공도 실은 ‘민주적 시민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4)

전태일 열사의 염원은 이루어질까

경제적 산업화의 진전이라는 측면에서나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에서 동시에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 다수가 50년 전이나 지금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체감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놀랍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실상이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주변화, 아니 노동의 위기 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늘 경제의 위기를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경제의 실질적 주체인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실상은 외면당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에 해당하는 장시간의 노동, 부끄럽게도 역시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산업재해, 과도하게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과 그에 따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차별, 따라서 그 차별 가운데서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한 채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현실이 오늘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실상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당한 기본권마저도 극도로 제약을 받고 있다. 헌법과 노동관계 법들은 모두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권리는 보장되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남짓 밖에 되지 않은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노동자의 단결권의 행사에도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정상적인 노사협상이 가능하다면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극한적인 쟁의행위에 나서야 할 까닭이 없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거의 예외 없이 사실상 불법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상·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적 규범으로 확립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그 규범이 통용되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이른바 ‘전태일 3법’의 개정 및 제정이 이제야 추진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 3법 가운데 첫 번째 근로기준법 개정 내용은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제한하는 11조를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바꾸자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두 번째 노동조합법 개정 내용은 제2조에서 근로자에 관해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는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며, 또한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택배기사ㆍ대리운전 기사ㆍ학습지 교사 등을 말하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 근로자에 포함하도록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며, 해당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의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제정하려는 것이다. 이 법은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사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참담하기 그지없이 높은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놀라운 경제적 산업화와 더불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한국사회에서 도대체 어찌하여 이처럼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안전에 대한 요구가 뒷전에 밀려왔던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 상황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태일 죽음 이후 50년, 아니 그보다 앞서 70년 이상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노동배제체제가 있다.

미주

(미주 1) 채윤태, “택배노동자 일일 동행 르포 (1)”, 「한겨레신문」, 2020.10.15. 1면 머리기사.
(미주 2) 이하 내용은 전광준, “전태일 외침 50년 흘렀지만… 청·비·영 절반 ‘근로기준법 안 지켜져”, 「한겨레신문」, 2020.10.5. 참조.
(미주 3)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다』( 서울, 해냄, 2020), 24.
(미주 4)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 ‘의외의 응답편’”, 『시사IN』 663(2020.6.2.); 황정아,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모델’”, 『창작과비평』 189 (2020/가을), 27.

최형묵 회장(한국민중신학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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