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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 정신오늘날 청년 노동자와 전태일 정신 ⑵
오세요 목사(한국민중신학회) | 승인 2020.11.16 00:56
▲ 배곯는 시다들에게 자신의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집까지 걸어오던 시절. 오른쪽이 전태일 ⓒ전태일재단
이 글은 지난 11월5일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한국교회, 전태일을 기억하다> 심포지엄에서 민중신학회 오세요 목사님이 발표하신 발표문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오세요 목사님과 전태일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전태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청년 노동자’, ‘아름다운 청년’과 ‘전태일 정 신’일 것이다. 이 장에선 ‘청년 전태일’과 ‘전태일 정신’을 검토해보고 이 개념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쓰이는지 검토해보도록 한다.

청년 전태일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 – 그 날이 오면

하지만 전태일의 글에서 청년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사용되는 청년의 인 식 및 용례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태일의 글 가운데 청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글 이 많지는 않다. 그 가운데 자신을 소개하면서 청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볼 때 전태일이 사용하는 청년이라는 단어에는 연령과 세대의 구분이 아닌 현실을 자각하고 변혁 하려는 주체로서의 지점이 보인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근로기준법 이란 우리나라의 법인 것을 잘 압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적당하게 만든 것이 곧 우리 법입니다. 잘 맞지 않을 때에는 맞게 입히려고 노력을 하여야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마치 무슨 사치한 사치품인양, 종업원들에겐 가까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입니다.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써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써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전태일, 1969, 12, 19, 박정희에게 보내려던 편지 중, 강조는 필자)(1)

(중략) … 제가 생각하는 형님이 보시는 서울은 진실을 또는 도덕을 금력이나 권력으 로 도금되어서 그 본질이 아주 깊이 깊이 인간의 뇌의 내면으로 퇴적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좁은 소견에서 노출된 미련한 독단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문체 에서 그렇게 말씀 하신 것 같으더군요. 형의 허식없는 그런 친필을 곰곰히 은미할 때 역시 깊은 좌절감에 빠질수 있는 것이 청년이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도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금년 23세되는 시내 청계천 5가 평화시장 의 재단사 였습니다. 키는 1.61m 정도이고 성격은 명랑합니다. 혈액형은 0형입니다. 고향은 경상북도 대구시내입니다. 어머니 한분과 2남 2녀의 장남입니다. 교육은 대구에서 받았으며 서울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명함을 우이동에 놓고 온날 은 70. 3. 16입니다. 명함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보잘 것 없는 바보회의 회장 얼마 나 우수운 현실 입니까? (전태일, 1970, 6, 30, 이상혁에게 보낸 편지 중, 강조는 필자)(2)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 전태일에게 있어 청년은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인간상이자 또 현실을 변혁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간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전태 일이 자기 자신에게 극히 제한적으로 쓴 ‘청년’이라는 호칭은 사후 전태일을 수식하는 어휘로 고착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사람들은 전태일을 생각할 때 실존인물 전태일보다는 이미 몇 가 지 범주로 해석된 – 혹은 선언, 선포된 – 전태일의 상이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1995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같은 미디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문화사회연구소의 최혁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자이자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전태일이라는 실존인물의 생애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아직도 누군가가 전태일을 호명하면 홍경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게 나만의 사정은 아닌 것 같다. … (중략) … 전태일 동상을 자주 봤고, 심지어 미디어를 통해 전태일의 얼굴을 종종 접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영화 포스터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나만 그럴까? 영화로 전태일의 존재를 접한 세대에게 전태일의 얼굴은 아마도 ‘아름다운 청년’ 홍경인일 것이다.(3)

미디어 속 재현은 언제나 취사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때론 계획적이기도, 때 론 무의식적이기도 하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전태일을 재현한 미디어 가운데 전태 일을 상당 부분 삭제하고 그 가운데 전태일을 찾아 전기를 쓰는 작업을 하는 김영수로 대표되 는 지식인의 고해성사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다.(4) 또한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청년 전태일’은 또 새롭게 형성되는 청년, 청년담론과도 만나게 된다. 2020년에도 청년 노동 자는 쉽게 오늘날의 청년 전태일로 호출되는데 이는 사안을 알리는데 용이하게 작동할지 모르나 각각의 사안을 뭉뚱그리고 납작한 것으로 만들 우려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태일 정신

전태일 정신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전태일의 모습에 따라 그 대답이 다르겠지만 2020년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출범한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 회’의 실행위원장인 한석호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전태일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태일 하면 분신만 생각하는데, 1980년대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50주기 를 맞아 말하려는 시대정신은 세 가지다. 첫 번째가 실천과 조직 정신이다. 전태일은 바보회·삼동회를 만들어 대자보를 만들고 청원도 하다 언론에 보도하게 하고, 집회하다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두 번째가 전태일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로 바로 ‘풀빵 정신’이다. 점심을 못 먹는 어린 ‘시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2km를 걸어서 퇴근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와 극심한 불평등 사회에서 사회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울 것이다. 세 번째는 모범 기업 정신이다. 전태일은 마지막으로 ‘태일피복’이라는 직원이 인간답게 일하며 수익을 내는 이상적 기업을 만들려 했다. 바로 이것이 전태일의 3대 정신이고, 이번 행사는 모두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5) (강조는 필자)

그런가 하면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은 전태일의 사상적 변화를 3단계로 나눠볼 수 있는데 “1966년 18세의 나이로 미싱사와 재단사 보조를 할 때는 온정주의 인식 단계이고, 1969년은 합법적 틀 안에서 ‘청원과 진정’하는 실천단계, 1970년은 결사 투쟁의 단계”라며 “전태일 정신을 ‘풀빵’이나 ‘모범기업’으로 삼는 것은 당시 전태일이 아직 미숙하거나 방황하는 시기를 전태일 삶의 절정으로 보는 것으로 열사에 대한 능욕”이고, 전태일 정신은 분투하는 불꽃정신이라고 전태일50주기행사위에서 제안한 전태일 정신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6)

이러한 논쟁은 전태일 그리고 전태일 정신의 해석이 그 준거점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간경향 인터뷰에 따르면 한석호 위원장이 전태일 정신으로 풀빵을 지목한 배경에는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연대의 상징이 필요했음을 읽을 수 있다.(7) 반면 문재훈 소장의 비판은 전태일이란 기표가 체제 내적 운동의 논리로 복무하고 있음 을 지적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8) 이 밖에도 전태일 정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무수히 많으며 그것들은 나름의 이유와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전태일의 입을 닫은 사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청년이 자기명명하는 행동하는 주체에서 소비의 주체로 축소되고 결국 객체화되어 자기언어를 잃어버렸던 것처럼 전태일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후 자리 잡힌 주류 전태일 담론은 재현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획일화시킨다.(9) 전태일을 다룬 미디어는 늘어나지만, 재현의 방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이에 반해 오히려 전태일의 일기, 수기, 편지를 모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오래전 절판되어 더 인쇄되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태일은 그의 일생 후반기에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몇 개의 소설 초안을 구상 했다. 이정안은 전태일이 소설의 집필을 마음먹은 이유를 당시 국가 주도의 교양주의 담론이 널리 퍼지며 읽어야 할 책의 중심에 문학이, 문학의 중심에 소설이 위치했다는 사실을 짚는다. 그리고 그를 소설 쓰기로 인도한 결정적 이유는 문학청년으로서의 열정이 아닌 노동현장의 참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10) 전태일에게 소설 집필은 자기언어의 표출이자 자기증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태일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청년 ‘전태일’ 정신’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중지 혹은 청년 전태일, 전태일 정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희년선언이 아닐까?

청년과 청년노동자, 그리고 전태일은 2020년 모두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기언어를 상 실한 존재들은 아닐까? 객체화되고 타자화되고 탈역사화되어 스스로 내는 소리는 제거당한 채 담론이 내는 목소리의 가면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들은 아닐까? 그리고 이 글 역시 그들의 얼굴을 빌려 이야기하려는 욕심의 발현은 아닐까?

미주

(미주 1) 조영래, 『전태일 평전』 (파주: 돌베개, 2006), 217-218.
(미주 2) 전태일, “상혁형에게,” 2016년 2월 17일 등록, 2020년 10월 28일 접속 http://chuntaeil.org/?c=30/31&cat=%EC%9D%BC%EA%B8%B0%EC%99%80+%EB%82%A8%EA%
B8%B4+%EA%B8%80%EB%93%A4&where=subject%7Ctag&uid=389
(미주 3) 최혁규, “전태일이라는 표상을 둘러싼 문제들,” 『진보평론』 85(2020), 129.
(미주 4) 정현백, “우리 안의 전태일, 그리고 기억의 정치,” 『시민과세계』 18(2010), 228.
(미주 5) 원희복, “[원희복의 인물탐구]전태일50주기행사위 실행위원장 한석호 “전태일 정신은 풀빵(나눔)이다”,” 『주간경향』1377 (2020.05.18).
(미주 6) 정대희, “전태일 정신은 '풀빵'이 아니라 '불꽃",” 『오마이뉴스』 (2020.07.17.).
(미주 7) 원희복, 위의 기사.
(미주 8) 문재훈, “풀빵정신? 모범기업정신? 불꽃정신!,” 『가자! 노동해방』 (2020.08.28).
(미주 9) 김성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진정성 담론의 역설,” 『기억과 전망』 37 (2017), 125.
(미주 10) 이정안, “전태일의 글쓰기 변화과정과 그 의미,” 『현대소설연구』 72 (2018), 28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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