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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맞기 위한 새로운 삶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12.05 21:21
▲ Benjamin West, 「Death on the Pale Horse」 (1796) ⓒGetty Image
만민이 각각 자기 신의 이름으로 살겠지만, 우리는 영원무궁히 우리 하나님 야훼의 이름으로 살 것이다.(미가서 4,5)

이 구절은 이사야 2,1-4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1-4절에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1-4절은 역사의 종말에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 민족과 민족 사이에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민족들은 모두 야훼가 어떤 분인 줄 알게 되고 야훼의 말씀을 찾아 그가 계신 산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민족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먼 곳 강대국들 간의 갈등을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무기가 필요 없는 새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약탈이나 수탈당할까 걱정하지 않고 자기가 지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려주시는 이 아름다운 미래는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반응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위 본문은 바로 그 반응의 한 가지입니다.

그 말 속에는 1-4절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들어있습니다. 각 민족마다 자신이 섬기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야훼를 찾을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은 그와 같은 미래가 오리라는 기대를 접게 만듭니다. 전쟁이 더 이상 없고 모두가 창조 목적에 맞게 사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을 훼손당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세상, 좋은 꿈이기는 하지만 실현가능이 없는 꿈일 뿐이지요 하고 듣는 이마다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말하는 5절의 사람은 바로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비록 현실은 그 ‘꿈’과 동떨어져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새세상이며,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미래입니다. 그는 야훼의 이름이 그 미래를 맞기 위한 새로운 삶을 이끌어가는 원칙임을 확인합니다.

야훼의 이름으로 사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그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야훼의 성전 곧 야훼의 집처럼 그는 야훼의 사람입니다. 야훼의 존재, 야훼의 길, 야훼의 역사가 그의 삶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야훼’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이라는 바울의 고백과 상통합니다(갈 2,20).

우리 하나님 야훼의 이름으로 사는 오늘이기를. 새세상의 꿈을 앞당겨 삶으로 희망과 평화를 낳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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