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거기에도 계실까?임마누엘(마태복음 1:22-2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12.05 21:24
▲ Rembrandt, 「Joseph's Dream in the Stable」 (1645) ⓒWikipedia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코로나로 인해 삶의 모습도, 교회의 모습도 변해버린 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이제 12월 한 달만 남았습니다. 내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될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우리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변화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성도님이 교회를 빠져나갔다고 말하지만, 이는 비단 코로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 비대면 예배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분명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을 되돌아봐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림절 기간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기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한 해를 바라보는 시기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모여야 할지, 또 때로 다시 비대면으로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 했을 때, 우리는 어떤 신앙을 계속 붙들어야 할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에게는 마태복음 1장 23절의 말씀이 익숙하지만, 이 말씀은 원래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7장에 관한 말씀도, 예수님 탄생 시에 천사가 전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미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다시 전해드린다고 해도 또 새로운 마음으로 들으시겠지만, 이미 전해드렸던 말씀을 다시 길게 전할 생각은 없습니다.

간단하게만 말씀드리자면, 이사야에서 ‘임마누엘’의 징표는 기쁘거나 즐거운 소식이 아닙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임하리라는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이사야 7장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고 오직 한 구절만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바꿔놓습니다. 심판을 위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임마누엘을 말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누군가가 잘못했다거나 틀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은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면,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결국에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마태복음이 말씀을 잘못 인용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언제나 함께 붙어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나아갈 때 그 길을 돌이키시는 일이 심판이기 때문에 심판은 구원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들고 지쳤을 때 일으켜 세우시는 일이 구원이라면 그 어려움과 힘든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심판과 구원은 항상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우리에게 계속되는 이유는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당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아끼시기 때문에 심판과 구원은 항상 순환됩니다.

다시 임마누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신앙일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심판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 자체가 때로는 우리에게 힘이 되고, 때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가지 않도록 붙들기도 합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신앙을 가졌던 시대에 유대인들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나라에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또 성전이 무너져 내렸을 때 이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포로로 끌려갔을 때 이들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라도 계실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전이 무너진 이후에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라는 건물에 묶여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실 수 있고, 성전이라는 건물이 무너졌다면 다시 지으면 된다. 이런 신앙을 바탕으로 선포된 말씀이 에스겔의 예언입니다.

함께 하심을 믿는가?

임마누엘 신앙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에, 어쩌면 더 쉽게 간과되는 신앙인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까?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중지해야만 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교회에서 식탁 나눔의 교제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주일 이후로 수도권에서는 다시 비대면 예배를 드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모임 예배가 중지되면서 우리는 교회의 붕괴를 고민했습니다. 물론 당연한 고민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이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모여서 식탁을 나누고 교제하며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모이지 못한다면 교회라는 이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많은 분은 교회에서 모이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왜 교회에서 모이지 않으면 신앙이 흔들린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하신다’는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교회에서 모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예배드린다 할지라도,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될까에 관한 고민은 다음 문제입니다. 성도님들의 신앙이 굳게 서 있다면, 교회 공동체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재정 문제나 여러 가지 문제를 당면하게 되긴 하겠지만, 우리의 신앙이 먼저 제대로 있다면, 이는 언젠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간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마치 저 멀리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미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언제나 내 음성을 들으시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드려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멀리 계신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소리, 간구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임마누엘 신앙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중적인 신앙을 가진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내 옆에 계신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에 계신다고 믿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일전에 선배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라고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러면 지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 아니냐는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설교를 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가진 이중성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나 함께 하신다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를 만들어내었고, 그곳을 기피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곳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이 미치지 않는 어떤 공간인 지옥을 만들어내 믿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 마음 한켠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땅의 경제 상황이 최악이고, 지옥 같은 상황이라면,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하늘나라이지 지옥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순간에, 그 바벨론 땅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의 지배를 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임마누엘의 신앙이 항상 자리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곳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곳이라 할지라도, 매순간 눈물밖에 흐르지 않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여전히 사랑하시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시고, 여러분의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려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느끼지 못하기에, 이미 옆에 계신 분을 향해 ‘내 옆으로 와달라, 와서 도와달라’는 간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한 길을 꺼려할 수 있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도우시고 여러분의 길을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