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ároly Markó the Elder, 「The Baptism of Christ in the River Jordan」 (1st century AD) ⓒWikipedia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이 시간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에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그는 빛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이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이사야 예언서가 말씀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는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과 비교하면, 그분의 신발끈조차 풀 수 없을 만큼 작은 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미천한 사람, 즉 예수님에 비하면 종의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신약성경의 앞부분에 4개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결 같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소개하기에 앞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 먼저 말합니다. 교회력의 전통에 따라 대림절 기간이 되면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마가복음 그리고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건을 전하지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그 사실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발끈조차 풀 수 없을 만큼 미천한 존재다.’ 그렇게 요한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서들이 세례자 요한에 대해 굳이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당시의 분봉왕조차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대중의 인기를 가지고 있었고, 급기야 처형시켜야 할 정도로 유대 정치인들에게 장애가 됐던 거물인데 복음서들이 굳이 세례자 요한을 종처럼 표현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고, 그 사실을 대중들이 알고 있다는 게 초기교회 신앙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요한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복음서들은 구약, 특히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낸 자에 불과하다,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 당시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하는 세례와 달랐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죄를 씻는 의례가 아니었습니다. 죄를 씻기 위한 수단으로 세례를 활용했던 세례 운동가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았던 때를 잘 기억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부모님과 교회 선생님들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죄가 씻어질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16살이었던 제가 죄를 씻어, 하얗게 될 거라는 기대에 차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부활절 아침 그렇게 세례식을 기다렸던 것이지요.

자, 예수님 당시 여러 세례 운동가들이 베푸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후에도 역시 죄를 지었을텐데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했던 세례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또한 초기교회로부터 이어져온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어내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제는 회개하고, 삶을 바꿔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개하여 이제는 삶을 바꿔라 하는 요한의 세례 운동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세례자 요한을 극찬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교회 상황으로 볼 때,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 계승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견제했던 정황을 볼 때, 오히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라면 결코 복음서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말씀이지요.

죄를 씻는 세례를 넘어 이제 삶을 바꾸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요한의 메시지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갈라지는 지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태3:10) 요한은 엄하게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셨다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심판하실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신다 그런 얘기입니다. 우리가 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머리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다 담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신지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몇 개가 성경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양 백 마리를 가진 목자의 이야기이지요. 백 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잃었던 한 마리를 기어이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기뻐하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듣고 있던 이성 있는 사람이랄지, 우리처럼 손익을 따지는 현대인 어느 누가 목자를 정상으로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드라크마 은전 하나를 잃었다가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어서, 결국 그것을 찾아 기뻐하는 여인의 이야기, 또한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났던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자, 기뻐하며 아들을 맞아들이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은 상식 밖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고정된 프레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넌센스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다,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 11,9; 13)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명을 주었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성령이라는 생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도록 인도합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아닙니다. 심판하시고 벌주는 엄한 하나님을 가르친 요한도 의미는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하나님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은 무서운 하나님을 대면하라고 주문하는 요한을 넘어서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라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이제 은혜로운 하나님의 영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그분이 말씀하시는 자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자비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우리의 생명의 근원으로 기원으로 원천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살아 계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엄격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했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사니 이제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이 바뀝니다. 이를 회개라 부릅니다. “병자를 고쳐 주라, 원수까지 사랑하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 이런 예수님의 말씀들은 모두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대로 살라는 우리를 향한 명령입니다. 자비를 받은 대로 너도 자비를 베풀라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말씀의 나눔 후 봉헌시간에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의 가사를 가지고 찬송합니다. 찬송가의 가사는 빈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습니다. 팔자라 불리는 운명, 목숨의 시간인 수명을 우리가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제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깨달음도 없이 그저 오래오래 살다 가는 그런 인생. 무슨 선한 게 있겠습니까?

우리는 생명이 허락되는 날 동안 생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깨달음이 있을 때 그런 사람을 참 신앙인이라,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에 잇대어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잇대어 살아갑니다. 세상이 보기엔 우리가 순간을 살아가지만 그 순간이 영원과 잇대어 있다면 우리는 영원을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림절의 참 뜻이며 요한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바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니 교회력의 첫 달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펼쳐질 이 한 주간도 우리 주님과 동행하시는 임마누엘의 영성으로 수명이 아닌 생명을 살아가시는 믿음 식구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민기욱 목사(미국 트리니티 한인장로교회)  minics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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