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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므낫세에게 따라 붙는 꼬리표이스라엘 역사 알기 ⒀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0.12.10 15:45

남왕국 멸망의 원인 므낫세(주전 695-641년)

‘므낫세’라는 이름은 성경을 읽어나가는 사람에게 참 친숙한 이름입니다. ‘요셉’의 장남이면서(창41:51)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의 조상이 된 사람의 이름이 ‘므낫세’이기에(창48:5) 우리에게 친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면서 ‘므낫세’의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열왕기하」에서 그가 남왕국 유다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23:26; 24:4).

하지만 「열왕기」를 세심하게 읽어나가는 독자들은 ‘므낫세’에 관한 기록을 보며 의아함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왕국 왕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인 55년을 통치한 왕치고는 「열왕기하 21장」이 너무나 적은 정보만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절수로는 18절이나 되기 때문에 이미 살펴보았던 ‘아몬’,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보다는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열왕기하 21장 3-7절」은 ‘므낫세’가 행한 우상숭배 목록이고, 「열왕기하 21장 2, 8-9절」은 우상숭배 목록을 감싸고 있는 고발 문구입니다. 「열왕기하 21장 10-15절」은 이런 ‘므낫세’의 죄에 대한 예언자의 선언문입니다. ‘므낫세’에 관한 기록 18절 중에 14절이 우상숭배에 관한 고발입니다.

우상숭배를 제외한 ‘므낫세’의 행위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나타난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는 진술뿐이며, 나머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고만 기술하고 있습니다. 55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역사책의 기록이 ‘우상숭배 했다.’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 두 가지 기술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하 1-18절」의 평행본문인 「역대하 33장 1-20절」은 ‘므낫세’에 관해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립니다. 「역대하 33장 10-13절」은 ‘므낫세’가 아시리아 왕에게 끌려갔다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아무리 악한 일을 행했다 하더라도 회개를 통해 구원으로 이를 수 있다는 신앙을 전합니다.

「역대하 33장 10-13절」의 기록이 실제 일어난 일인지, 역대기 역사가의 창작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열왕기」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므낫세’에 관해서 만큼은 「역대기」의 기록이 실제에 가까울 수 있다는 주장이 많이 보입니다. 열왕기의 역사가가 ‘므낫세’의 회개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역사관에 의해 삭제했다는 주장인데, 어떤 주장이 옳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대하 33장 14절」에는 「열왕기하」에는 나타나지 않는 ‘므낫세’가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현재 ‘히스기야’ 시절로 돌려진 유적들, ‘실로암 터널’이나 ‘히스기야 성벽’ 모두 ‘므낫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 예루살렘 성벽터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예루살렘 관광지 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는 ‘성벽터(Jerusalem Broad Wall)’인데, ‘히스기야 성벽’이라고도 부릅니다. ‘히스기야’가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성경에 남아있기 때문에(대하32:6; 사22:9-10) 이 유적이 ‘히스기야’ 시절의 것인지, ‘므낫세’ 시절의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유적의 연대가 대략적으로 밝혀진다 해도,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이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연결되어 있는데다, 문서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왕의 연대가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최근의 고고학적 자료들로 인해 「역대하」의 기록이 신뢰도가 높다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고 있는데, 지난 글 이스라엘 역사 알기(12) ‘유다 왕 아몬의 죽음과 암-하아레츠의 혁명성’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므낫세’의 회개 사건을 둘러싼 배경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므낫세’가 어떤 사건을 겪고 회개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상황은 당시 주변국 역사에 맞춘 창작으로 봅니다.

사실 「열왕기」가 남왕국 멸망의 원인을 ‘므낫세’의 죄로만 돌리는 것은 「열왕기」의 기록 안에서도 충돌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미 「열왕기하 20장 12-18절」은 ‘히스기야’ 시절에 바벨론 포로기를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쾌유를 바라며 바벨론에서 온 사절을 환대합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바벨론 사절에게 보물고, 군기고,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히스기야’의 이 행동이 사실이라면 ‘히스기야’는 바벨론과 군사적 동맹을 맺으려고 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히스기야’의 행동 뒤에 예언자 이사야가 그에게 무엇을 했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0장 17-18절」에는 이사야의 예언이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것, 지금까지 쌓아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히스기야’의 아들(또는 자손)은 사로잡혀 바벨론의 환관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벨론에 의해 속국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열왕기 역사가는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빌려 남왕국이 바벨론의 속국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 이때 속국이 되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히스기야’입니다. 어쩌면 열왕기 역사가는 ‘히스기야’가 행한 잘못의 대가는 ‘속국’이었지만, ‘므낫세’가 행한 잘못의 대가는 ‘멸망’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온전히 ‘므낫세’에게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므낫세의 죄악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열왕기하」가 전하고 있는 ‘므낫세’의 죄악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타난 내용은 ‘므낫세’의 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없앴던 ‘산당’을 부활시킵니다. 산당은 예루살렘 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세워진 제의 장소입니다. ‘히스기야’가 제의 중앙화를 위해 지방 산당을 제거했다면, ‘므낫세’는 다시 지방 산당들을 부활시킵니다. 이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바알’ 제단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제의는 성경에서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합니다. 바알, 아세라 제의는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제의입니다. 역사가는 북왕국의 왕 ‘아합’을 언급하며 「열왕기상 16장」 이후의 내용을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아합’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열왕기」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분들도 다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바알 제사장과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은 ‘엘리야의 하나님’이라는 유명한 성가곡으로도 만들어졌고, 많은 성가대를 통해 불려 왔습니다. ‘아합’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언급된 「열왕기상 16장 29-34절」에 바로 이어지는 「열왕기상 17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가뭄을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열왕기상」은 독자들이 ‘아합’의 죄악으로 인해 가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을 「열왕기하 21장 3절」에서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므낫세’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남왕국에 어떤 좋지 않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게끔 이끌어갑니다.

‘일월성신’에 대한 제의도 바알과 아세라 숭배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과거 일월성신 숭배는 아시리아의 종교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과거 연구에서는 아시리아가 자신들의 종교를 속국에 강요하였고, 이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 아시리아의 종교인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아시리아가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봅니다. 물론 아시리아의 신을 섬기도록 하기는 했지만, 속국 고유의 신앙을 막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일월성신에 대한 신앙은 아시리아의 신앙이라기보다 이미 가나안 지방에 널리 퍼져있었던 신앙으로 봅니다. 바벨론 포로기 직후를 배경으로 한 「에스겔 8장 16절」에서도 ‘태양신’ 숭배를 지적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일월성신 숭배는 아시리아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죄악이 아마 많은 교회에서 ‘므낫세’의 가장 악한 죄로 선포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보통 몰렉 제의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학자들은 이 제의가 이스라엘에서 실제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제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신명기 12장 31절; 18장 10절」은 이것이 이방 제의이고 이런 풍조를 따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 제의는 남왕국의 왕 ‘아하스’ 때(왕하16:3)와 ‘므낫세’ 때에 실현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열왕기하 16장 3절」에는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라는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라는 표현이 이방 제의를 따랐음을 비판할 때 사용한 당시의 관용적 표현, 특히 열왕기 역사가의 관용어구라고 말합니다.

이런 언급은 「미가 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31절; 19장 5절; 32장 35절」에도 나타나는데, 이를 관용적 어구라고 말하는 학자들은 ‘미가’와 ‘예레미야’도 열왕기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관용어구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의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는 이 표현이 실제 인신제사의 증거라고 보기도 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에 나타난 언급들은 ‘므낫세’ 시기의 죄악에 대한 고발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님루드(Nimrud) 지역에서 발견된 글귀나 당시 아시리아의 유물 중에는 경제적인 보상을 이유로 자녀를 불에 태웠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해서 한국어로 번역된 자료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코간(Mordechai Cogan)’의 『Imperialism and Religion: Assyria, Judah and Israel in the Eighth and Seventh Centuries B.C.E.』 82페이지에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코간’의 ‘앵커 바이블 커멘터리’(Anchor Bible Commentary) 『Ⅱ Kings』 267페이지에도 잠깐 언급됩니다. ‘코간’은 이런 기록들을 증거로 ‘므낫세’ 시절에 이루어진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행위’가 종교적 행위가 아닌 경제적 보복행위였을 가능성도 있음을 제시합니다.

▲ 님루드 상상도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아시리아 유적 중 하나인 님루드의 복원도입니다. 1853년 이 유적을 발견한 ‘오스텐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와 건축사학자 ‘제임스 퍼거슨(James Fergusson)’의 상상에 의해 복원된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내용과 큰 연결점은 없지만, 이런 유적에서 발견된 글귀 한 구절도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상 제의 하나하나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논문을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므낫세’가 이런 일을 실제로 자행했는지, 남왕국 내에서 우상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숭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우상을 숭배했으니까 나쁜 왕’이라고 여기는 것은 열왕기 역사가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당시 이스라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므낫세’가 행한 우상숭배 목록은 북왕국의 왕 ‘호세아’가 행한 우상숭배 목록과 거의 똑같습니다(왕하17:8-17). 「열왕기」는 ‘호세아’의 우상숭배가 북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북왕국 멸망의 근본적 원인은 ‘여로보암’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또 남왕국에서 우상숭배를 했다고 기록된 왕은 ‘므낫세’가 유일하지 않습니다. ‘므낫세’가 몰렉 제사를 실제로 행했다 하더라도 ‘아하스’도 몰렉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므낫세’에게 돌려지고 있는 우상숭배 목록은 북왕국 멸망을 떠올리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일 뿐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므낫세’는 이런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므낫세’가 악한 왕이진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훌륭한 왕?

최근 고고학적 자료들을 보면 ‘므낫세’ 시대에 남왕국은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으로 판단됩니다. 남왕국은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 시절에 ‘산헤립’의 침공을 받습니다. ‘산헤립’ 침공으로 인해 남왕국이 입은 피해는 「열왕기하 18장 13-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난 이스라엘 역사 알기(10) ‘난민 여 예언자 훌다, 요시야 종교개혁의 중심’에서 ‘두 번째 구역’을 설명하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실로암 터널’은 아시리아 군대에 수원지를 발각당하지 않으려고 만든 지하수로입니다. 이렇게 ‘히스기야’ 시절의 남왕국은 처참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이랬던 남왕국을 거의 정상화시켜 놓은 왕이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 시절에 무너졌던 지역에 다시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유다는 아라비아 무역의 중요 거점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 유물들에는 글자가 적혀 있는 유물들이 이전보다 많이 발견됩니다. 이는 ‘므낫세’ 시대에 관료제도가 발달했거나 국가 체계가 완성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 므낫세 시절 유물 ⓒThe Times of Israel, 이스라엘 문화재 관리국(Israel Antiquities Authority)

위의 사진은 아마도 가장 최근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2020년 상반기에 발굴된 인장입니다. 예루살렘 구도심에서 3Km 벗어난 외곽지역에서 발견된 ‘히스기야’ 또는 ‘므낫세’ 시절인 주전 7세기로 추정되는 인장입니다. 이 인장에는 ‘왕에게 속한(람멜렉, למלך)’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므낫세’는 ‘엣살핫돈’이 이집트 침공을 단행했을 때, 군사적 지원도 보냈으며, 아시리아 궁전을 건축할 자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증거들을 보면, ‘므낫세’ 시절의 남왕국은 군사, 경제, 문화, 행정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이었으며, ‘히스기야’ 시절보다 훨씬 발전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지방 산당의 문제도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중앙집권체제를 이루기 위해서 지방 산당을 제거합니다(왕하18:4). 하지만 ‘므낫세’는 이를 다시 되돌려놓습니다. 제의의 성전 집중화는 성전 제사장의 권력 강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19-25절」에는 아시리아의 장군 ‘랍사게’가 남왕국을 비방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랍사게’는 남왕국을 향해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라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지방 산당과 제단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에서만 예배드리라는 것이 말이 되냐는 내용입니다.

‘랍사게’의 말처럼 예루살렘에서만 예배를 드리라는 이야기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시대에 교단별로 교회는 서울에 딱 하나만 세울 수 있다고 한다면, 제주도 사람들은 절대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유튜브로 영상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방 산당 제거는 이런 예배도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스기야’나 ‘요시야’의 성소 단일화만을 종교개혁이라고 말하지만, ‘므낫세’의 지방 산당 활성화도 하나의 종교개혁입니다. 이는 종교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황폐해진 남왕국을 복원하기 위한 지방 활성화 정책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고고학적으로도 ‘므낫세’ 시절의 지방 경제는 되살아납니다. 그의 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열왕기」에 기록된 ‘므낫세’의 통치 기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므낫세’는 남왕국과 북왕국의 모든 왕 중에서 가장 긴 55년 동안 왕국을 통치합니다. 왕이 오래 다스릴수록 훌륭한 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신명기」는 왕이 오래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합니다(신17:20). 이는 신명기 사상을 중심으로 갖고 있는 열왕기 역사가에겐 자신의 신앙과 충돌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므낫세’는 어린 나이인 12세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오래 통치했지만, 오래 살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에 기록된 남왕국 왕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와 통치 기간을 합쳐서 그 왕이 죽었을 당시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아사랴’가 68세로 가장 오래 살았고, ‘므낫세’는 그보다 한 살 어린 67세에 죽습니다. 물론 남왕국 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70세에 죽은 ‘다윗’입니다. ‘솔로몬’을 비롯한 몇몇 왕은 왕위에 오른 나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계산할 수도 없습니다.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에 ‘므낫세’가 55년간 남왕국을 통치한 것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만약 오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1-2년 정도의 오차밖에 없을 것입니다. 열왕기 역사가가 ‘므낫세’를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하면서도 그의 통치 기간을 줄일 수 없었던 이유는 ‘므낫세’의 길고 안정적인 통치 기간을 역사서가 기록될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역사가는 거짓이 아닌 진실만을 기록했기 때문에 ‘므낫세’가 싫어도 55년의 통치 기간을 속일 수 없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전에 썼던 이스라엘 역사 알기(5)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열왕기의 왕들 역사 연대’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열왕기」에 나온 왕의 통치 기간, 재위 시점을 모두 따져보면 정확한 계산이 안 됩니다. 말 그대로 틀린 내용을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왕들의 통치 기간은 부풀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는 필사가들이 이 역사서를 옮겨 적으며 실수한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왕국의 안정을 이루었고, 장기간 통치했던 ‘므낫세’가 남왕국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가장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되었을까요? 이는 아마 ‘므낫세’가 펼친 정책과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므낫세’에 관한 기록은 단 두 가지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우상숭배이고 다른 하나는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죄한 사람이라고 하면 힘없는 약자, 또는 민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가 말하는 ‘무죄한 자’는 힘없는 약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므낫세’의 정책으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된 누군가의 항변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은 무죄라는 항변입니다. 「열왕기」의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았을 때, 그 집단은 단일 성소 제의로 이익을 얻었던 집단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이 역시도 확실하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할 뿐입니다.

우리가 「열왕기」를 읽으면서 이런 가능성,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신의 권력을 추구했던 집단이 존재했고, 결국 이들이 권력을 가졌기에 우리는 그들의 권력을 지켜주는 그 신앙 체계를 쫓게 되었다는 생각도 한 번쯤은 해보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를 경계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에는 「열왕기」와 다른 생각과 신앙을 가진 「역대기」가 존재하고, 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예언서들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지금 시대에 교회라는 이름 아래에 권력과 재력을 탐하는 자들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런 모습이 담긴 성경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이들과 같은 사상을 추구하며 쫓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을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가는 분명 자신의 생각, 사관에 따라 역사를 기록합니다. 이에 의해서 훌륭한 왕이 나쁜 왕으로 기록될 수도 있고, 별 볼 일 없는 왕이 뛰어난 왕으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서를 읽어나갈 때,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적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역사를 읽어나가야 조금이라도 올바른 역사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도 고민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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