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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성(姓)은 당연, 어머니 성(姓)은 합의?‘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팀을 만나다
권이민수 | 승인 2020.12.11 17:13
▲ 어머니의 성을 쓰게 될 때 자신의 이름을 표기한 명패

올해 6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녀에게 엄마 성(姓)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이 청원의 주된 내용은 부부간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원칙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현행 제도를 개선하고 홍보 및 연구에 나서 달라는 것이다.

2005년 한국에서도 호주제가 폐지되고 2008년 민법 781조 1항의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조항은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한 경우”에 부모가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물려주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단서가 붙으며 수정됐다. 그러나 아버지 성은 따로 협의가 필요 없이 물려줄 수 있는 것과 달리 어머니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 시 부부간 협의가 필요해 문제가 됐다.

아버지 성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한 부성주의 사회에서 어머니 성을 물려주는 것을 선택하는 남편이나 가족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생겨났다. 또 자녀의 성을 자녀의 출생 이후가 아닌 혼인신고 시에 정하는 점이 시기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머니 성 물려주기 운동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12월 5일 어머니 성 물려주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팀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팀이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팀의 이모저모

▲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모이게 됐고,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처음에 지난 6월, 모 일간지의 ‘엄마 성 쓰기 기사’의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각자 자신 외에는 생활반경 속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자님께 서로를 소개시켜 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하게 됐습니다. 단체 톡방이 생긴 이후로 각자 처한 상황과 어머니 성 쓰기 실천과정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서로를 응원했어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오프라인에서도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부조리한 절차를 알리고자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국민청원 홍보와 참여를 위해 페이스북 소문내기 이벤트, 카드뉴스 만들기 등을 함께 진행했어요. 국민청원 진행 기간에 ‘수신지’ 웹툰 작가님 외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시고, 저희와 같은 고민을 홀로 하고 계셨던 다른 분들을 만나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지난 10월 개정안이 발의됐는데요. 아직 통과되진 않았지만 그 사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페이스북 메시지로 응원과 자신의 사연을 남겨주신 분들이 큰 힘이 되었어요! 자녀 이름을 어머니 성으로 하고 싶으셨지만, 결국 양성쓰기로 하신 분의 이야기나 어린 시절 어머니 성을 쓴 친구에게 쏟아지던 편견어린 시선을 목격한 경험을 나눠주신 분 등의 사연이었어요.

또 모든 관련기사 댓글에 빼놓지 않고 달리던 내용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이런 내용이었죠. ‘어머니 성도 결국 외할아버지 성이다’, ‘근친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처럼 결혼하면 여자 성을 남편 성으로 바꿔야 이런 소리가 안 나온다’, ‘성이 계속 길어져서 나중엔 이름 부르기 힘들겠다’, ‘여자도 자녀에게 성을 주고 싶으면 돈 벌어라’

음, 그밖에는 저희가 소소한 이벤트를 열어 당첨되신 분들께 선물로 어머니 성으로 바꾼 이름 명찰을 보내드렸는데, 그 이벤트 덕분에 코로나19 같은 이유로 모이지 못했던 분들을 오프라인으로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니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 현재 부성주의 폐지 운동에 함께하는 다른 모임이나 사람들이 있나요?

저희가 다른 단체에 공식적으로 연대 요청을 하지는 못했어요. 그냥 페이스북을 통해서 단체 회원들이 알음알음 국민청원 홍보 등을 같이 해주셨어요. ‘정치하는 엄마들’이나 ‘배드파더스’ 등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녹색당에서는 논평을 내주시기도 했고요. 다음 활동 때는 다른 단체나 모임과 함께 하고 싶어요.

▲ 지난 6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등장한 어머니 성 쓰기 권리를 요구하는 청원

▲ 앞으로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체계와 예산을 가진 조직이 아니라 친구들 모임 같은 느낌으로 모인 팀이에요. 또 다들 직장을 다니거나 출산과 육아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 생활에 바쁘기도 하고요. 그래서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의 시작 자체가 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뜻이 맞아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답답한 현실을 만날 때마다 같이 분노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소소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봤으면 해요.

아! 즐겁게 수다 떠는 가운데 나왔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어요. ‘미스터리 민원인’이라고 이름 붙여봤는데, 동사무소 혼인시고 접수창구에 가서 혼인신고서에 있는 ‘어머니 성 쓰기’ 관련 항목에 대해 질문을 해보는 것이에요. 마치 혼인신고를 하려고 온 사람처럼 말이죠. 담당자가 이 제도를 얼마나 잘 알고 소개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하는 거 에요. 실제로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가 “(어머니 성 쓰기)는 ‘아니오’라고 체크하시면 되요.” 라는 안내를 받았거나 또는 어머니 성을 쓰겠다고 했더니 이후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담당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봤던 경험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이죠. 지금 제도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제도 하에서도 '어머니 성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최근에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여기에 힘을 보태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에게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메일이나 메시지보내기 운동을 할 수 있겠어요.

또 어머니 성 쓰기를 선택하거나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안타깝게도 기독교문화가 때로는 성차별에 앞장서기도 하는데요. 교계에 혹시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저희 멤버들 중에 골수 기독인들도 있지만, 사실 교계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철저하게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류 기독교문화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오기도 했고요. 좀 더 크게는 차별금지법처럼 이 사회는 개선되어 가기 위한 시도들을 하는데, 교계가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했고요.

교회가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여서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많은 교회는 소위 ‘정상적인’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만 손쉽게 적응하고 생활할 수 있어요. 특히, 정상가족 프레임에 부합하는 가족 형태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열려 있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또는 교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살아가기 마련이에요. 그러나 교회에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 또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수님께서도 전통적인 가족의 그림을 넘어서 신앙 안에서 모두가 새로운 한 공동체가 되는 그림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하고요.

교회가 정말 교회다워질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손가락질하고 외면하던 이들에 대한 손가락질을 거두고, 더 나아가서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 그 외에 혹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언젠가는 우리가 이야기한대로 법과 제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요. 1958년에 만들어진 호주제는 시대가 바뀌면서 2005년 헌재로부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고 이후 폐지되어요. 부성원칙주의도 그렇게 될 것이에요. 2005년 호주제를 폐지하면서 부성원칙주의에 대해서도 검토가 있었는데, 당시에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부성의 사용에 관한 사회 일반의 의식이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부성 사용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도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고 하는, 물려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저희의 존재로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아가 그 과정 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모임은 매우 느슨하고 자유로운 곳이에요. 그러니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라도 연락주시면 좋겠어요. 특히 어머니 성 쓰기를 하려고 준비 중인 분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답답함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그럴 때 하소연 할 수 있는 곳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우연히 만나서 이렇게 뜻 깊은 고민과 활동을 나눌 수 있게 된 우리 멤버들에게 고마워요. 그리고 이 활동을 적극 지지하며 재능기부로 웹툰도 그려주신 수신지 웹툰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기를

현재 ‘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 청원은 28,778명의 동의를 받으며 7월 30일 청원 종료된 상태다.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야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청와대 청원 원칙상 청와대의 답변을 듣기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청와대 대신 국회에서 반응이 왔다. 정의당 정은주 의원이 ‘차별 없이 성•본 쓰기 2법’(민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10월 대표 발의한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강은미, 장혜영, 류호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남인순, 이수진(비), 박용진, 이수진 의원,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자는 부 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조항 수정안과 자녀의 성과 본을 결정해 신고하는 시기를 출생신고 시기로 바꾸는 내용이 담겼다.

흔히 한국은 태어난 날과 시간 등에 따라 각자 부여받은 운명이 있다는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다. 이름은 이 사주와 함께 맞물려 개인의 인생과 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래서인지 포털 사이트에 ‘이름 개명’을 검색하면 본인의 인생을 역전시키고자 이름 개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올라있다.

‘권민수’에서 ‘권이민수’로 바뀌고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사실 크게는 모르겠다. 다만, 어머니의 흔적이 새겨진 내 이름에 나는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인생에 대박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살면서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는 중이다.

특히, 가능하다면 독자 여러분에게도 ‘권이민수 기자’가 명시된 내 기사를 읽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내게 큰 기쁨이다. 개명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행복이다.

본인이 원하는 성과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성을 다 붙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이처럼 개인의 행복추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어서 하루빨리 개정안이 통과되어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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