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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길을 예비하리라2020 인권주일 설교문(말라기 2:17-3:5)
NCCK인권센터 | 승인 2020.12.14 15:53
▲ 인권은 하나님의 정의의 실현이다. ⓒGetty Image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어느새 대림절이다. 대림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웃음을 주시는 시간이다. 가장 깊고, 어둡고, 추운 때에 웃음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지금 그 웃음을 빼앗긴 이들도 있다. 우리 사회가 웃음이 주는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라기는 기다림의 절기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희망, 그 기쁨과 웃음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대림절기 속에 인권주일이 있고, 또 성서주일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시 성경의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뜻이다.

본문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이다. 말라기 이후 400년 가까이 예언의 공백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그 시대는 그야말로 캄캄한 암흑의 시기이다. 시편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시 74:9).

하나님의 말씀을 잃은 세상은 등불 없는 어둠처럼 캄캄하였다. 말라기가 예언하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귀환 이후 다시 사회적, 도덕적, 영적 타락에 빠진 그런 시대였다. 절망과 냉소와 불신앙에 빠졌다. 말라기의 예언은 절망과 회의의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타락한 백성은 아주 뻔뻔한 주장을 한다. 당시 성전에서 일하던 제사장 무리는 물론 백성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이 모두 타락한 모습이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말 2:17).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핑계와 변명에 능숙하였다. 선지자 말라기는 이런 백성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분별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회의와 의심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움’을 분명히 선언한다.

선지자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고이다. 말라기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말 2:17)고 묻는 백성을 향해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 3:1)고 약속하고 있다.

신앙풍조가 타락한 그 시대는 경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누구보다 성전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컸다. 그들이 드린 예배와 제물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았다. 제사장은 성전제사를 번거롭게 여겼고, 더러운 떡과 훔친 제물과 흠 있고 병든 짐승을 바쳤다.

백성은 질 낮은 제물을 드리고도 뻔뻔하게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하나님에 대한 공경을 소홀히 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제사장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헌신과 삶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그들이 이 땅에서 정의와 불의의 사이에서 바른 선택을 할 리가 없다.

거룩한 예배가 혼란스럽게 되니 삶의 바탕과 사회질서가 흔들렸고, 생명과 평강, 진리와 의로움이 무너져 내렸다. 한마디로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타락하고 비뚤어진 제사에 대해 경고하신다. 말라기는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성전 문을 닫으라고 한다. 오히려 장차 이방 민족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깨끗한 예물을 드리며, 참되게 경배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정의의 문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슈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그 날은 바로 심판의 때이다. 악인들은 긴장해야 한다. ‘점치고,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는’ 거룩한 계명을 어기는 자 뿐 아니라, ‘품꾼의 삯을 속이고,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율법을 어기는 자를 응징하셔서 정의를 바로 세우신다.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을 향해 돌아올 것을 요청하신다. 하나님은 거듭거듭 마음을 돌이키라고 하신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하라고 하신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

그리고 말라기는 마지막 날에 앞서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말라기에서 마태복음까지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는 참 어둡고 깊은 시련의 시기였다. 성경은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깊이 찾고 구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그 길을 예비하는 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별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장차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어둠을 응시하였다. 그는 길을 예비하는 자로, 마치 엘리야와 같은 인물이었다. 마침내 그 예언이 실현되어 나타난 인물이 세례 요한이다.

“(말라기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마 11:10).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답게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 세상을 고치고, 사람을 치유하신다.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는 원래 ‘마음을 바꾼다’ 혹은 ‘무슨 일을 후회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용한 의미는 ‘새 행실로 돌아온다’는 적극적인 내용이다. 즉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가 맺은 언약에로 돌아오라는 예언자의 외침이 담겨있다.

요한이 말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일까?

“회개는 사람의 내적 갱신을 말하지만 그 자체가 나무가 그 열매를 내듯이 외적 삶에 
표현되는 것이다”(장 칼뱅).

“회개란... 부정의로부터 정의로, 비인간성에서 인간성에로, 우상에서 하나님에게로 자신의
길을 완전히 180도 바꾸는 것이다”(폴 틸리히).

일찍이 말라기는 말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오는 복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늘 그 시대에 맞는 정신을 품어야 한다.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답답한 시절을 보내지만, 사실 한국사를 살펴보면 대단한 격변을 맞았던 분기점의 해이다. 한국전쟁 70년, 4.19혁명 60년, 전태일 분신 50년, 광주민주화운동 40년, 6.15남북선언 20년이다.

청년 전태일의 분신은 한 개인의 희생을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일깨운 대단한 불씨 역할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노동자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었고, 낮은 자리에서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기 위해 정의로 향한 길에 동행하였다.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보면 너무 아픔이 많다. 오늘 우리사회가 누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번영은 그런 아픔과 고통으로 힘겹게 낳은 기쁨이다. 어쩌다 누리는 웃음이 아닌 것이다.

유대교 랍비 휴고그린이 전하는 이야기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맞은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하루는 함께 갇혀있던 아버지가 자신과 친구 몇몇을 수용소 건물 한 구석에 모이게 하였다.

아버지는 그날이 유대인의 성전축제일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였다. 과거 헬라인에게 빼앗겼던 성전예배를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빛의 축제’였다. 8일 동안 계속되는 축제 기간 중 매일 하나의 촛불을 더하여 축제 마지막 날에는 모두 8개의 촛불이 밝혀지게 된다.

아버지는 진흙 주발을 내놓더니 수용소에서 구경하기 힘든 버터를 녹여 심지를 적시고 촛불을 대신하여 불을 켰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귀한 버터를 먹지 않고 낭비하는 것에 대해 항의 하였다. 아버지는 가만히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을 살 수 있어. 하지만 희망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단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은 하나님이었다. 예배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밝히는 일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 내 삶의 빛을 밝히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를 녹여 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대림절이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깊은 밤, 역사의 어둠, 두려움의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인은 빛을 드러내고, 새 길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당부하였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대림절은 아픔 속에서도 고통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절기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고난 받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은총을 베푸신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평화의 왕, 정의의 임금으로 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웃음을 잃은 이들과 함께 하시고, 우는 이들과 함께 희망을 나누게 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NCCK인권센터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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