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시아의 예후드 메디나타 지방에서 출토된 기원전 4세기경의 한 드라크마(¼ 쉐켈) 동전. 날개와 바퀴가 달린 해모양의 보좌에 앉아 있는 야훼를 상징. ⓒWikipedia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 계약은 이스라엘 역사의 실질적 출발점입니다. 그 계약의 제안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때까지의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의외입니다. 보통 계약을 맺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을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다리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이집트의 바로와 싸우시고 이스라엘을 건져내셨습니다. 그 싸움에 이스라엘이 보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훼의 명령을 따라 유월절 의식을 치르고 황급히 떠난 것이 이스라엘이 한 것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호소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출 3,8.17).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해방시키시고 정착지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 태우고 주막으로 데려간 사마리아 사람과 닮았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후 시내산에 도착할 때까지 보여준 모습에 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마실 물이 없을 때(2x),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신뢰성을 찾아보기 힘든 그런 그들을 계약의 상대자로 초청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아마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리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런지요?

하나님은 그때까지 자신이 한 일을 이스라엘이 보았다고 하시며 그 의미를 이스라엘에게 일러주십니다. 그가 베푸신 기적들과 이집트 바로와의 싸움은 세계가 그에게 속해 있음을 드러낸 사건들입니다. 자연도 권력도 야훼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제 갓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의 부적절했던 행태를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계약 상대자로 높이시며 존중하십니다.

가장 높은 이가 가장 낮은 자들에 손을 내미십니다.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시내산까지의 짧은 여정에서 부끄러운 속살을 다 보여준 이스라엘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절로 제기되는 계약조건과 약속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데려가시려고 한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더 중요한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목적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에게 데려왔다고 하십니다. 단순히 그의 산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데려오셨습니다.

이는 그들과 대면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와의 관계가 없다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 관계는 남은 여정과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계속되며 지금까지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게 할 것입니다. 그 미래의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계약을 제안하신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할까요?

이스라엘이 그때까지 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과 관련하여 경험한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서도 아무 내색 없이 묵묵히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영예에 마음이 끌렸을까요? 물론 그것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하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안을 별로 주저하는 기색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새로운 형식으로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셨고,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열어갈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계약의 말들이 바로 십계명과 그에 이어지는 계약법전입니다. 이를 실천함으로써 해방된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고 모든 민족들에게 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제사장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을 ‘그 자신’에게 데려오신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스라엘에게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제안한 계획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넘어 세상 모든 민족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 계약과 법은 억압이 아니라 해방이며 탐욕이 아니라 사랑이며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역사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계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그 아들을 이 땅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의 사랑을 기다립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일으킨 사랑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사랑을 자극하고 사랑으로 행동하게 하고 사랑으로 채울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주께서 뜻하시는 대로 사랑의 제사장으로 불릴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 있게 하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전해질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세상은 지금 사랑에 목이 마릅니다. 질병은 이익을 위한 경쟁의 소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질병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새 힘입니다. 사랑으로 존중하고 배려할 때 질병의 세력은 약해질 것입니다. 사랑은 지치지 않게 하고 소진되지 않게 합니다. 우리 사랑의 샘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랑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목마른 땅에 생명을 공급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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