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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2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12.29 16:52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탄절,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성도님들은 성탄절인 오늘 기쁘신가요?

성탄절이 기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5인 이상 가족끼리도 모이지 못하는 코로나 시대의 연말 그리고 예배드리지 못하는 성탄절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분위기에 이렇게들 말합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가 없다.”겠죠.

제가 어렸을 적 서울의 길거리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가게들도 제법 많았고, 음식이나 물건을 파는 상점들도 스피커를 상점 밖으로 빼놓고 캐롤을 틀어두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지 안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길거리의 많은 집과 가게들이 성탄장식도 했었습니다.

TV를 틀면 성탄절을 알리는 쇼들이 계속해서 방송되었습니다. 캐롤은 몇 주 동안이나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외부적인 요소들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느끼고, 분위기에 취해서 들떠있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절정은 성탄 이브 때 열리는 교회들의 공연이었는데요. 동네의 큰 행사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도 자녀 때문에라도 교회를 나오셨으니까요.

우리는 크리스마스하면 이런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셨으니 당연히 기뻐해야지! 하면서 “기쁨”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교회들보다 세상이 ‘기쁨’의 성탄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대형 상점들과 백화점들은 성탄 트리나 성탄 장식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크고 높은 트리들이 길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쁨과 화려함의 방식으로 많은 이들이 지금껏 크리스마스를 소비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기쁨’과 ‘화려함’ 속에 정작 주인공이 되셔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기쁨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히려 싫어하실 만 한 화려함이 성탄절을 대신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의 사회적 상황은 우울했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성탄트리도 없었고, 캐롤도 없었습니다. 적막하기만 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저는 요즘과 같은 시기가 더욱이나 성탄과 어울리는 그야말로 성탄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지금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식과 정보는 넘치지만 우리는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고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괴롭기만 합니다.

며칠 전 외국인노동자 분이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기숙사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거두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2017년도부터 이미 이런 숙소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도 많은 곳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은 차별과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주만의 모습일까요?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다는 듯 우리 역시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우리 스스로가 빛을 가두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스위트 홈>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는데요. 이 드라마에서는 괴물로 변신한 사람들과 악당들이 끊임없이 나와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이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정작 위험하고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무서운 시대이기에 더욱이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우리에게는 소망이요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절박함’입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 빛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갈망,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는,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절박함을 가진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기쁨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두움과 절망을 찢고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 “너희도 나처럼 될 수 있다.”, “너희가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엄청난 환호와 기쁨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절박함’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마가복음 7:25-30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은 수보로니게 여인과 딸을 ‘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여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네, 저는 개입니다. 하지만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 부스러기라도 저와 제 딸에게 흘려주십시오. 라고 간청합니다.

이런 절박함이 예수님의 마음을 흔듭니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할렐루야!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이들은 오늘날에도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20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성을 잃어가거나 포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너는 내 자녀다.”, “너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지금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절박함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면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마음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자만이, 교만이 오늘 이 시간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지 못하게 합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갈망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이 없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없기에 우리는 기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말씀드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소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한다고.” “네가 빛이라고.” “네가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입니다.

이런 소망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이 저와 성도님들에게 참으로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신이 오신 날 우리는 / 이해인

당신이 어린이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어린이가 되지못한 복잡한 생각과 체면의 무게를 그대로 지닌 채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비록 당신을 모시기엔 부끄러운 가슴이오나 당신을 기꺼이 안아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을 안고 당신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
당신과 함께 따뜻하고 온유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빛으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살라 버리지 못한 죄의 어둠 그대로 지닌 채 당신께 왔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비록 허물투성이의 삶일지라도
당신의 빛을 따르면 길이 열리오니 오직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빛을 가리는 욕심의 어둠
불신의 어둠을 몰아내고 당신의 빛 안에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너무 큰 사랑 앞에 드릴 말씀 없어지는 감사의 밤
늘 받기만 하고 당신께는 드릴 것이 부족한
우리의 가난함을 용서하십시오.

우리의 힘만으로는 헤어날 수 없는
이기심과 무관심의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보다 자유로운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어린이로 오신 하나님의 탄생
이 세상에 빛과 사랑으로 오신 하나님의 탄생
우리가 보고 들은 이 놀라운 일을 다시 믿게 하여 주십시오.
믿을수록 놀라운 이 일을 가장 기쁜 소식으로 다시 말하게 해 주십시오.

불의와 증오의 폭력을 녹이는 당신의 정의,
당신의 용기, 당신의 평화가 세상 곳곳에 스며드는 물이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이 오신 날 우리는
비로소 처음으로 타오르는 축제의 촛불입니다.
처음으로 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은혜로 장식된 한 그루의 아름다운 성탄 나무입니다.

색종이을 오려서 우리 집 유리창에 별을 달 듯이
오늘은 우리 마음의 창마다 당신의 이름을 별처럼 걸어 놓고
당신이 오신 기쁨을 노래합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은방울 쩔렁이며 노래합니다.
사랑의 화음에 맞추어 당신을 찬미하며 우리 모두 하나가 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계에서
모든 이가 사랑이신 당신 안에 당신을 부르며 하나로 태어납니다.

어서 오십시오, 예수님.
우리의 별이 되신 예수님.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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