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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삶으로 시작하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12.31 15:50
▲ John August Swanson, 「Jesus is the Holy Refugee」 ⓒGetty Image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에 보라 주의 사자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고 내가 네게 말할 때까지 거기 있으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한다.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갔다.(마태복음 2,13-14)

빛을 따라 예수에게 왔던 동방박사들은 예수의 빛을 가슴에 안고 먼 길을 떠나갔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헤롯의 검은  시도가 메꾸려 합니다. 헤롯이 움직이기 전에 주의 사자가 잠자는 요셉에게 긴박한 사태의 전환을 급박한 말로 알려줍니다. 일어나 데리고 … 피하라!

예수는 나면서부터 권력자의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찾아온 박사들과 목자들은 어떤 점에서 보면 똑같이 그에게 기름을 부은 예언자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기와 말구유와 변방/동방이 왕과 궁전과 중심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예수는 처음부터 이러한 구도 속의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생의 출발치고는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오신 이유와 목표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예수의 소식 때문에 경쟁자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폭로됩니다. 예수 출생에서 평화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질서와 약탈적 권력을 휘두르는 세속적 질서가 충돌합니다. 이는 아기를 죽이려는 헤롯의 음모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천사들의 노래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질서는 시작부터 좌초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주의 사자의 지시에 따른 예수의 피난생활은 헤롯이 죽기까지 계속되었고, 그의 사후 주의 사자는 다시 예수 일행을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올립니다. 이는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는 호세아 11,1에 빗대어 설명되기도 하지만(15절), 이 설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기 예수가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수립이 세속적 질서로부터의 배제를 뜻하는 그의 난민경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그를 난민이 되게 한 세속적 질서로부터의 ‘해방’이 그 내용임이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세속적 질서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고 따라서 그 과정은 후자의 평화 지향과 평화 실천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해와 고난이 마치 평화에 이르는 길처럼 보입니다.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역사 속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평화, 곧 예수 오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이익과 무력이 주는 불안한 평화와는 달리 사랑과 생명이 주는 진정한 평화입니다.

예수의 빛을 안고 평화의 길을 가는 오늘이기를. 예수에게서 오는 평화의 힘으로 코로나 위협을 이기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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