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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새로운 정상(New Normal)의 삶을 향하여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0.12.31 16:00

에큐메니안 독자 여러분,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 교회 그리고 하시는 일 가운데 풍요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이 벌써 2020년 마지막 날입니다. 되돌아보면 2020년은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온 1년이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침투해 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인류의 삶의 모습을 결정지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해버린 우리의 일상의 삶은 새로운 정상(new normal)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의 결정짓고 있던 여러 가지 다양한 기준들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을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면서 우리는 그 흐름과 더불어 옛 생각도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흘러가는 시대의 생활방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베소서 4:22~24)

우리는 무엇보다도 차별과 잔인함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20년 한국 사회와 개신교는 극도로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며 증오하는 모습과 자신과 다른 것들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적대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설교하고 축복한 목사들을 면직시키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나와 다른 이웃을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옛 정상(normal)의 모습을 그대로 보입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같은 모양, 같은 생각, 같은 취미, 같은 경제 수준, 같은 고향, 같은 학교 등의 동아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것끼리 살아가는 방법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같은 사람끼리만 모여야 잘 사는 것입니까? 다양한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삶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2021년은 우리가 모두 더욱 포용적인 사람과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어주고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정상(new normal)의 정착을 위하여 에큐메니안은 2021년 한 해 동안에도 건강하고 올바른 언론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후원자 여러분과 독자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극심한 빈부격차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무한한 경쟁을 기본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세계화는 인류의 부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80대 20의 사회(20%의 사람이 세계의 부를 거의 다 독점하고 80%의 사람의 존재가치를 무색케 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90대 10, 99대 1의 사회를 언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잘 사는 사람만이 존중되고 또 소비능력이 없고 경쟁 사회에서 배겨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전혀 취급을 받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가난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이 가난이 정복되고 있다는 환상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치밀한 전력에 의해 우리 자신도 그런 착각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경제의 발전으로 가난은 극복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지로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가난이 극복되어 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인류사회에 갑자기 몰아닥친 코로나 19는 오늘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가난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코로나 19는 우리 모두를 멈추게 했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19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는 이제 멈춤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게 한다는 새로운 진리를 보게 했습니다. 경제성장만 바라보던 우리는 이제 멈춤을 실천하면서 경제성장보다는 공정하고 공평한 분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경제성장 지수로 판단되는 세계가 아니라 행복지수로 판단하는 세계를 꿈꾸어야 합니다.

▲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멈추게 하면서 지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Getty Image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세계로 향해야 합니다

코로나 19는 ‘나만 잘 살면 된다.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뒤엎었습니다. 코로나 19의 극복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함을 전제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코로나 19는 ‘우리’가 생명의 기초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지 않으면 나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인주의,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생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위 개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나만 좋으면 됩니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 모습들입니다.

프랑스어로 ‘주멍푸’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말입니다. 우리말로 ‘내가 알게 뭐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멍푸’를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서로를 불신하게 했고 서로서로 향하여 담을 쌓고 살아가게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가장 많은 인구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도 인류 역사 중에서 가장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들은 앞으로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옛 정상의 모습들입니다. 2021년은 나를 뛰어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큐메니안은 2021년 한 해 동안 이러한 사회의 형성을 위하여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닿겠습니다. 격려해 주시고 힘을 보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섬세한 배려

이제 새롭게 열리는 새해에는 나와 다른 이웃을 향하여 아낌없는 그리고 섬세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세계가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밤새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새벽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뜰 앞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 것을 보니 괜히 그 친구가 간절하게 생각났던 것입니다. 그는 새벽 눈길을 밟으며 그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아직도 새벽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하얀 눈길이 그렇게 고와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 친구의 짐 문 앞에 이르러 친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새벽잠이 깊이 들었는지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나 불렀지만, 전혀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어 발길을 막 돌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친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그 친구가 우뚝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합니다. ‘새벽에 자네가 눈길을 밟고 산골까지 찾아온 소리를 들으니 내 머릿속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오르지 뭔가. 내 어찌 이 앞뜰에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낼 수 있으랴. 내 친구에게 이 발자국이 나지 않은 하얀 눈 위로 내 집에 곱게 걸어 들게 하리라 하는 생각이었네’ 이 친구는 앞마당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하여 뒷문을 열고 뒤꼍을 돌아 문간 앞까지 그를 맞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새벽 눈길로 친구를 찾아간 것 그리고 벗이 찾아온 소리를 듣고 자기 집 마당의 깨끗한 눈 위를 벗에게 먼저 밟고 들어가게 한 것! 그것이 서로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아닙니까?

2021년이 서로 배려하고 서로를 생각해 줄줄 아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을 만들어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오직 경쟁상대로만 보는 옛 정상(old normal)을 버리고 이웃으로 하얀 눈길을 먼저 밟게 하겠다는 세심한 배려를 하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을 시작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2020년은 가고 2021년이 왔습니다. 세월이 가고 오는 길목에서 바울의 권고처럼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읍시다. 새 사람을 입고 이제 2021년을 사뿐하게 시작해 봅시다. 세월이 가고 오는 길목에 선 에큐메니안 후원자 여러분, 그리고 구독자 여러분 모두의 생애에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총이 풍요롭게 임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2020년 12월 31일 에큐메니안 대표 홍인식 목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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