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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더 큰 구성의 시작‘토라’는 오경일까, 육경일까?
이정훈 | 승인 2021.01.01 18:06

‘토라’(1)는 ‘신명기’로 끝이 날까, ‘여호수아서’로 끝이 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토라를 ‘법률 모음집’으로 보느냐 혹은 ‘약속을 성취해 가는 이야기’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창세기를 전통적으로 토라의 시작이 아니라 육경이라는 ‘더 큰 구성’(2)의 시작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이해진다는 뜻이다.

▲ 창세기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셉의 죽음은 오경 혹은 육경을 구성하는 큰 주제 중의 하나이다. ⓒGetty Image

성서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요셉의 죽음은 이야기의 진정한 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은 여전히 애굽에 거주하고 있고, ‘레크 레카’(Lekh Lekha, לֶךְ-לְךָ) (3)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창 12:2),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 12:7)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46:4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이스라엘에게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내가 반드시 너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겠다.”라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이 약속은 신명기 아니라 결국 여호수아서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창세기는 다소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언을 남기는 요셉으로, 아마도 예언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창 50:25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일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실 날이 온다. 그 때에 너희는 나의 뼈를 이 곳에서 옮겨서, 그리로 가지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이 약속과 성취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 끝나는가? 모세의 죽음과 함께 ‘토라’에서 끝나는가?

요셉의 유언은 여호수아서, 특히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완성된다.

수 24:32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에서 가져 온 요셉의 유해를 세겜에 묻었다. 그 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에게 금 백 냥을 주고 산 땅인데, 요셉 자손의 유산이 된 곳이다.

사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은 창세기-여호수아서가 ‘수미상관(inclusio)’(4)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의 문학적 작품의 경계를 구분하는 장치로, 특별히 창세기를 언급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여호수아서에 이르는 책들은 하나의 단위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국가)에게 명령하는 여호수아 24:23은 창세기 35:2을 연상시킨다.

여호수아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이제 당신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내버리고, 마음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십시오.”(수 24:23)

야곱은, 자기의 가족과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였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이방 신상들을 다 버려라.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창 35:2)

여호수아 24:2-13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짧게 요약하고 있다. 이 역사 요약은 여호수아 24:2-3에서 시작한다.

24: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24:3 그러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에서 이끌어 내어, 그를 가나안 온 땅에 두루 다니게 하였으며, 자손을 많이 보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

그것은 모세의 죽음이 아니라 여호수아서의 주요 주제인 족장들에게 주신 요단 강 서쪽에 있는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11-13)로 끝난다.

24:11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서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에,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너희를 대항하여 싸웠으므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24:12 내가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냈다. 이 두 왕을 몰아낸 것은 너희의 칼이나 활이 아니다. 24:13 너희가 일구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아니한 성읍을 내가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다. 너희는 너희가 심지도 아니한 포도밭과 올리브 밭에서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역사 요약은 창세기-여호수아서를 하나의 문학 혹은 이야기 단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전기예언서(여호수아-열왕기)(5)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토라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처음 명령하시는 말씀들은 신명기 31:23을 반복하고 있다.

수 1:6 굳세고 용감하여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사람이 바로 너다.

신 31:23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들어갈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은 여호수아서가 우리가 현재 ‘느비임(Nevi’im)’, 즉 ‘예언서’라고 부르고 있는 새로 단위의 시작이 아니라 신명기 마지막 장의 직접적인 연속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여호수아서에서 발견되는 훨씬 더 많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전기예언서들의 다른 책들은 토라에 대한 메아리나 암시를 담고 있지만, 여호수아서 보다는 훨씬 덜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토라의 뒤를 바로 잇는 책이며, 특히 여호수아가 토라의 약속을 성취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여호수아서가 토라를 다양하게 암시하고, 또한 특히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상속받는 거대한 이스라엘에 대한 서술은 토라가 담고 있는 약속을 완성하고 마무리하고 있다. 요셉을 매장하며 마무리 하는, 이러한 모습은 창세기의 마지막 장으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은 창세기-여호수아서에 이르는 이야기 단위를 확정하는 것으로는 매우 적절하다. 그리고 창세기-여호수아는 창세기-신명기 보다 오히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구성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만약 여러분 중에 성경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그리고 열왕기서의 구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9권의 책들을 건네주며, 이 책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용, 주제, 구조를 바탕으로 신명기와 여호수아서보다는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사이를 구분할 것이라 믿는다.

미주

(미주 1) 그리스도교와 고대 히브리인들의 성서 구분은 용어와 책의 구분상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창세기-신명기 부분을 그리스도교는 ‘오경’, 고대 히브리인들은 ‘토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역사비평적 연구’는, 특히 20세기 중반 독일의 Gerhard von Rad(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전통적인 오경 혹은 토라의 구분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토라는 신명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서에서 끝난다고 주장했다. 폰 라트, 『구약성서신학 I』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제2부 참고.
(미주 2) ‘토라’와 관련된 많은 논쟁점은 Thomas B. Dozeman이 편집을 맡은 『Pentateuch, Hexateuch, or Enneateuch: Identifying Literary Works in Genesis through Kings』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11)에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Thomas Römer와 Marc Zvi Brettler가 공저한 “Deuteronomy 34 and the Case for a Persian Hexateuch,”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19 (2000), 401-419을 참조하기 바란다.
(미주 3) 고대 히브리인들이나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1년 동안 토라를 완독하기 위해 정해놓은 독서 분량 중 세 번째 주의 읽을 토라 분량을 일컫는다.
(미주 4) 수미상관(首尾相關)은 문학 용어이다. 이 구조는 운문 문학에서 첫 번째 연이나 행을 마지막 연이나 행에 다시 반복하는 것을 일컫는다. 수미상관법은 시의 구조를 안정되게 만들며 운율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산문에서는 문단의 처음과 끝에 중심 내용을 담는 양괄식 표현 방법과 동일하다.
(미주 5)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히브리인들은 ‘히브리 성서’ 구분은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 구분법과 차이가 있다. 여기에 또한 광의의 그리스도교인 가톨릭과 개신교는 책 권수의 차이도 존재한다. 하여간 고대 히브리인들의 히브리 성서 구분법은 ‘창세기-신명기’를 ‘토라’, ‘여호수아서-사사기-사무엘서-열왕기서’를 ‘전기예언서’, ‘예레미야-이사야-에스겔-12예언서(호세아-말라기)’를 ‘후기예언서’, 즉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를 합쳐 ‘예언서’로, ‘시편-잠언-욥기-아가서-룻-애가-전도서-에스더-다니엘-에스라(+ 느헤미야)-역대기’를 성문서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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