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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교회와 세계를 독점할 권력을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았다교회의 조직 ⑵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01.02 16:08
▲ 종교개혁 초기의 개혁자들의 비판은 교황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Getty Image

이제 교회를 위해 위임된 직분 중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집사직입니다. 본래 집사직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려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직분으로(행 6:1-3), 고대교회의 집사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위임받은 교회의 공적인 직분을 맡고 있었습니다.

집사직의 본분

고대교회에서 집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잘 알려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설이 있습니다. 라우렌티우스(Laurentius)는 교회의 집사였고, 로마에서 빈민을 구호하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그리고 258년, 기독교 박해 때 체포되었고, 교회의 전설적인 하늘의 보화를 관리한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황제는 그에게 이 보화들을 내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라우렌티우스는 돌아가서 그가 돌봐준 사람들 가운데서 황제 앞에 나서려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황제 앞에 서게 된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맹인들, 불구자들, 마비된 자들, 절룩거리는 사람들, 간질병 환자들,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라우렌티우스는 이들과 함께 황제 앞으로 나가서 말했습니다.

“황제께서 탐내는 황금은 수많은 범행의 원인입니다. 그 빛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진짜 보화는 세계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황제의 눈에는 이들이 비참한 무리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빛의 자녀들이고, 교회의 보화이고, 교회의 금, 진주, 보석입니다.”

황제는 진노하여 라우렌티우스를 쇠격자에 묶고 숯불로 천천히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고통을 거두셨습니다.(1) 그러므로 고대교회의 집사들은 성도의 교제가 사회 현실에서도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영적 연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경제적 재화가 교회의 모든 지체들 가운데 고루고루 흐르게 재확립할 책임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2)

그러나 중세 후기의 로마교회는 집사의 직분을 예배의식에서 사제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제한했습니다. 집사직은 그 본질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의 한 단계가 되었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이러한 관습은 사도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 매우 영광스러운 직분을 불쾌하게 훼손시키는 것이었습니다(IV.iv.5)

칼빈은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는 말씀을 따라서 집사의 직분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 한 부류의 집사들은 빈민 구제금을 관리하고 구제물자를 분배하는 일을 맡게 하고, 다른 한 부류의 집사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직접 보살피는 일을 맡게 했습니다. 여자 집사들은 주로 후자의 일을 맡았습니다(IV.iii.9).

여기서 칼빈이 제시하는 교회 재산 운용의 원칙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고대 회의에서 내린 결정과 고대의 저술을 통하여 고대교회가 교회 수입을 네 부분으로 나누고 일부는 성직자 생활비로, 또 일부는 빈민 구제금으로, 또 한 부분은 교회 건물들의 수리비용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가난한 외국인과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한 구호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IV.iv.7).

그러니까 고대교회는 교회 수입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였으며, “감독과 집사들은 빈민을 돕기 위해서 임명되었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IV.iv.6). 그래서 칼빈은 로마 교회가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고, 교회의 재산을 마치 “자기들이 나눌 전리품과 약탈품”(IV.v.15)으로 생각하는 것에 신랄한 비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독교강요』 제3권 7장을 읽을 때, 칼빈의 고린도후서 주석을 인용했었습니다. 그는 고후 8:13-14를 주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공평과 균형이 있기를 원하신다. 즉 사람은 아무도 너무 많이 갖거나, 필요한 것도 가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재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사람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3) 칼빈은 사도적 기원을 갖는 집사 직분을 신약성경에서 되찾아내어 바울이 말하는 경제정의를 제네바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바울과 칼빈의 가르침을 되살려 낼 수 있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분 임명의 규칙들

칼빈은 다시 신약성경을 기초로 하여 교역자들의 임명에 관하여 네 개의 규칙들을 규정합니다. 첫 번째 규칙은 누가 선택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건전한 교리를 믿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IV.iii.12). 두 번째는 그들을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선택하는 어떤 의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것입니다. 칼빈은 신자들이 장로를 세울 때 “금식하며 기도했다”(행14:23)는 사실을 말합니다(IV.iii.12).

세 번째는 누가 교역자들을 선택할까 하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주관하는 모임들에서 전체 공동체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합니다(IV.iii.15).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공동체가 새로 선출된 교역자들을 받아들이는 의식입니다. 이것은 ‘안수’입니다. 이 안수 이외에 다른 의식은 없었습니다.

안수는 직분의 위엄을 교회에 알리는 표징이었고, 임명을 받는 사람에게는 이제 그가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매인 몸이라는 것을 경고하는데 유익합니다. 그리고 목사들만이 교역자들에게 안수할 수 있었습니다(IV.iii.16).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채택한 이 모델은 로마 가톨릭 모델과 뚜렷한 반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칼빈은 4장부터 7장까지 교황제 이전의 고대 교회의 정치, 그리고 교황권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교회가 어떻게 교회의 합법적인 형태를 뒤엎고, 점차 본래의 질서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가톨릭 모델에서는, 네 개의 규칙들 가운데 어느 것도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감독들은 성직 서품식들에 관한 독점권을 자신들에게 주었고(IV.v.2,4), 게다가, 각각의 교직에 의무로서 주어지는 그 기능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사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고 미사를 거행하기만 합니다(IV.v.9). 집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병자들을 돌보는 일과 같은 초대교회 때 하던 일을 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예배의식적인 역할을 하며 그들의 직무는 단지 “사제가 되기 위한 단계”로 보일 뿐입니다(IV.v.15).

칼빈의 교황제 비판

그러나 칼빈에게 가장 나쁜 위법자는 가톨릭에서 가장 높은 교직인 교황직입니다. 여기서 그의 비판은 두 가지 문제점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첫째는 교황의 수위권이며, 둘째는 그에게 부여된 교회권력입니다. 첫째 문제점에 대하여,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보편적 감독은 단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이유로 비판합니다(IV.vi.6,17).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머리이시며, 우리는 모두 그의 지배 하에서 그가 제정하신 질서와 조직에 따라 서로 연결된다. 교회에 머리가 없을 수 없다는 구실로 세계 교회 위에 한 사람을 앉히려고 하는 그들은 그리스도를 현저히 모독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IV.vi.9).

둘째로, 로마교회는 교황의 지배권이 주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말씀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16:18), 또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그러나 칼빈은 그들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우선 그들은 양을 먹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에게라도 교회에 대한 지배권이 위임되었다는 것과 매며 푸는 일은 곧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논박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에게서 명령을 받은 것과 같이 다른 모든 장로들에게도 교회를 먹이라고 권고하기 때문입니다(벧전5:2). 칼빈에 따르면, 정확히 이 사실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교직을 준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베드로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나누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매고 푸는 것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신 다른 말씀을 인용하며 무익한 논쟁을 끝내자고 합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20장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매고 푼다는 것은 죄를 그대로 두거나 또는 용서한다는 뜻이라고 이 말씀을 통해서 명확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매고 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설명되는데, 칼빈은 바울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고후5:18, 10:6). “복음을 선포하는 일꾼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며 동시에 이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IV.vi.3). 이것이 바로 칼빈이 로마교회와 전적으로 달리 해석하는 “열쇠의 권한”입니다. 칼빈은 이 열쇠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복음의 교훈이 우리 앞에 하늘을 열어주는 것이므로 ‘열쇠’라는 말은 적절한 은유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이며 풀린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신앙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얻으며 어떤 사람은 불신앙으로 인해서 더욱 속박을 받는다는 뜻에 불과하다. 교황이 이 일만을 자기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무도 그를 시기하거나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IV.vi.4).

이 두 번째 문제에 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가톨릭의 입장을 요약합니다: “그 요점은, 로마 감독만이 교리를 판정하고 정의하든, 법을 제정하든, 규율을 세우든, 또는 재판을 하든 최고의 재판권을 가졌다는 것이다”(IV.vii.19). 여기서 칼빈이 문제 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이 권력이 교황에게 집중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지, 교회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쟁점은 교회의 영적 권위에 대한 논의에서 다시 다루어집니다.

미주

(미주 1) J. M. 로호만/오영석 옮김,『사도신경해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4), 196.
(미주 2) 앙드레 비엘레/박성원 옮김,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64.
(미주 3) Ibid., 18 이하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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