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과학 밑에 자리 잡은 전제의 역사우리 시대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들 ⑴
린 화이트/이정훈 | 승인 2021.01.03 17:24

작년 11월 즈음은 올겨울에 대한 기상에 대한 해외 기사 하나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의 요지는 2012년 이후로 2020년 한해 동안 북극 빙하가 최대로 녹았기 때문에 올해 겨울은 한파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측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매서운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기상 이변은 인류가 직면한 생태계 위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하루이틀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생태계 위기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몇 가지 원인으로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태계 위기의 원인을 세계관의 문제로 파악하려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가르침 특히 기독교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이는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기독교 신학자들은 인간의 편리와 복지를  향상시킨 것은 자연을 비신격화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가르친 기독교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으로 정당화 했던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기독교의 태도를 비판하는 최초의 글이 발표되었는데, 그 글의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자 ‘린 화이트(Lynn White, Jr.)’였다. 린 화이트는 1967년 Science지 155호에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3월10일, 1203-1207)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인 뿌리는 바로 기독교 신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기독교는 인류가 직면한 생태계 위기에 대하여 무거운 죄책감의 짐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은 인간을 섬기는 것 이외에 다른 존재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는 기독교의 통념을 거부할 때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는 계속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으로 세 주에 걸쳐 린 화이트의 고전적인 논문을 번역해 게재한다. 고전을 통해 다시 한 번 생태계 위기를 돌파하는 개신교가 되기를 바란다. - 번역자 주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와의 대화는,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독백을 가만히 들어야할 경우가 있었다. 애통하게도 그가 사망하기 약 1년 전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에 하나인 자연에 대한 인간의 부당한 취급과 그것이 낳은 슬픈 결과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헉슬리는 자신의 시각을 묘사하기 위해 지난여름 자신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국의 작은 산골짜기로 찾아갔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예전에 그 골짜기는 풀이 잘 자란 숲이었지만, 토끼들이 일으킨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역 농부들이 일부러 퍼뜨린 ‘점액종증’(myxomatosis, 토끼들에게 치명적인 병)으로 토끼들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보기 싫은 관목덤불만 자라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속물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심지어 침묵이 더 위대한 수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가 헉슬리의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어 설명한 것은, 1176년 토끼 자체를 영국에 가축으로 들여온 것은 아마도 농민들의 단백질 식품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 린 화이트 ⓒWikipedia

모든 형태의 생명체는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킨다. 가장 경이롭고 유익한 예는 의심의 여지없는 산호의 폴립이다. 산호는 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함으로, 수천 종의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광대한 해저 세계를 만들어낸다. 다수의 종이 된 이래로, 인간은 환경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쳐 왔다. 불을 사용한 인간의 사냥법이 세계의 대초원을 만들어 냈고 홍적세(洪績世)에 지구의 대부분 지역에서 거대한 포유동물을 멸절시키는데 공헌했다는 가설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린다. 적어도 6000년 동안 나일강 하류의 둑들은 자연이 만든 아프리카 밀림의 습지였다기보다는 인공물이었다. 5000제곱마일에 물을 대는 아스완 댐은 이런 오랜 과정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여러 지역에서 개간이나 관개, 지나친 방목, 카르타고인과 싸울 배를 만들기 위한 로마인들의 벌목, 원정에 사용할 무기를 만들기 위한 십자군의 벌목 등은 몇몇 생태계를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프랑스 풍경의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은, 즉 북쪽의 탁 트인 들판과 남쪽과 서쪽의 숲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관찰한 마르크 블로흐에게 중세 농업 방법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를 착수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인간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인간의 사는 방식의 변화는 종종 인간 외적인 자연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출현은 한때 거리 여기저기에 널린 말의 배설물을 먹고 살았던 참새떼의 수효를 격감시켰다.

생태계 변화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하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거의 모르고 있다. 1627년경의 유럽산 들소의 멸종은 광적인 사냥의 단순한 사례에 불과하다. 복잡한 문제에 있어서는 분명한 자료를 찾기가 불가능하다. 프리지아인과 네덜란드인은 수천 년 동안 북해로 영토를 넓혀갔으며, 이 과정은 오늘날의 조이데르 해(Zuider Zee)의 간척사업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동물, 물고기, 연안 생물, 혹은 식물의 종이 멸종했는가? 넵튠(바다의 신)과의 싸움에 관한 그들의 서사시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생태학적 가치를 간과함으로써 생활상의 고통을 받게 되지는 않았는가? 이런 질문은 제기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답은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사람은, 그래서, 그들의 환경에 있어서 종종 역동적인 요소가 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야기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마지막 30년에 들어선 오늘날 생태학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인정되는 자연과학은 몇 세기에 걸쳐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이와 함께 오래된 전문기술의 축적이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서유럽과 북미가 과학과 기술의 결혼을 성립시키고 자연환경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과 경험적인 접근을 결합시킨 것은 불과 약 4세대 전이다. 과학적 지식이 자연에 대한 기술적 지배력을 의미한다고 한 베이컨주의가 폭넓게 실행된 것은 기껏해야 1850년 이후이고, 예외가 있다면 18세기의 화학공장밖에는 없다. 베이컨주의가 통상적인 행위양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농경의 발명 이후 인간의 역사, 그리고 아마도 인간 외적인 지구의 역사에서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거의 즉시 새로운 상황은 생태학의 새로운 개념을 결정화하도록 강요했다; 사실, 생태학이라는 영어 단어는 1873년에 처음 나타났다.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오늘날 인류가 환경에 미친 영향은 그 힘이 막강해져서 그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14세기 초에 최초로 대포가 불을 뿜었을 때, 칼륨과 유황, 광석, 목탄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일꾼들은 숲과 산으로 몰려 들어갔고, 그에 따른 침식과 벌채 때문에 생태계는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수소폭탄은 차원이 다르다. 수소폭탄을 가지고 하는 전쟁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적 특징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1285년 런던에서는 역청탄을 땠기 때문에 스모그 문제를 발생시켰지만, 오늘날 화석연료의 연소는 지구 대기 전체의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려는 위협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우리는 이제 막 추측하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인구폭발, 무계획적인 도시화라는 암(癌), 하수와 쓰레기의 지층 퇴적물로 인간 이외의 어떤 생물도 그처럼 신속하게 자신의 둥지를 더럽히는데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행동에 나서자는 외침은 많다. 그러나 세부적인 제안으로 내세워진 것들은 개별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너무 부분적이고 즉흥적일 뿐 아니라 부정적이다. 예를 들면 폭탄에 저주를 퍼붓고 광고판을 때려 부수고 힌두교도들에게 피임기구를 나누어 주면서 그들이 신성시하는 소를 잡아먹으라고 말하는 것 따위다. 미심쩍은 변화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물론 그 변화를 중단시키거나 낭만적인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 흉측한 주유소를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의 오두막같이 혹은 (서부의) 유령도시의 술집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런 ‘황량한’ 사고방식은 ‘산 기미그나노’(San Gimignano: 트스카니 대공 시기의 이탈리아 도시)나 시에라(Sierr) 고지 할 것 없이 모든 생태계를 클리넥스 티슈가 처음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로 급속 냉동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겉치레로 꾸미는 것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생태계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의 특수한 정책은 치유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새로운 반발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기술과 과학의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전제를 역사적으로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 우리의 사고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를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과학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귀족적이고 사변적이고 지적이었던 반면에 기술은 그보다 낮은 계급의 경험적이고 행위지향적인 것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과학과 기술의 갑작스러운 결합은 분명히 이전 시대의 민주주의 혁명과 관련이 있다. 이 혁명은 사회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두뇌와 손의 기능적 결합을 주장하는 데로 나아갔다. 우리의 생태계 위기는 발생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민주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문제는 민주화된 세계가 자기의 지니고 있는 의미를 지켜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본 원칙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린 화이트/이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린 화이트/이정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