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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의 렌즈로 읽는 성경‘회복적 정의’에 근거한 회복적 교회 그리고 장애인 ⑵
황필규 위원장(NCCK 장애인소위원회) | 승인 2021.01.13 01:33
▲ 회복적 정의는 마지막 심판의 날의 잣대이기도 하다. ⓒGetty Image

지난 글에서 소개한 ‘회복적 정의’와 관련 성경을 해석하는 몇 가지 예를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먼저 ‘회복적 정의’를 노래하는 시편 23편이다. 시편 23편 3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그는 그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를 영어성경으로 살펴보면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the paths of righteousness(Justice) for his name’s sake.”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소생시키신다(회복시킨다)”, “의의 길로(정의의 길로)”와 “인도하신다”(3절)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회복적 정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왜 회복적 정의냐 하면, “그분 자신을 위해서”이며,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나를(우리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심으로써”이다.

또한 회복적 정의의 ‘피해 회복’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8:1~11에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즉 “직면을 통한” 피해 회복이다. 예수의 관심은 율법에 의한 유죄 판결이 아니라, 여인의 피해(고통)이다.

회복적 정의는 ‘공동체 정의’이다 

요한복음 10: 14~16에는 ‘한 무리, 한 우리, 한 목자’에게 있어서, “또 이 우리fence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flock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우리 밖’의 존재들 혹은 우리 안에 있는 트러블 메이커들, 이들 모두의 고통, 피해들이 회복되어야 한 무리의 공동체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우리 밖’의 존재들이고, 왜? 그들을 한 무리 안에 포용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고린도전서 12:12-2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지체, 즉 공동체의 구체적인 예로, 12:22, 23에, 약한 자(weaker)가 필요하고, 보잘 것 없는 자(less honorable)에게 더 귀한 것으로 주며(더욱 존중하며, more abundant honor), 그리고 볼품없는 자/내세울 것 없는 자/아름답지 못한 자 unpresentable(unseemly member)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more abundant seemliness)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약해짐, 보잘것 없음, 볼품 없음, 내세울 것 없음으로 ‘피해받은 상태’에 처한 자들에게, 12:25에서, 지체/공동체에, 갈등/분쟁/고통이 있으면, ‘서로 돌봄’이 필요하다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다. 26에서는, 이들의 ‘고통(피해)을 영광’으로 전환/회복시켜라. 그래야 ‘공동체가 회복’된다고 말한다.  

‘사울’에서 ‘바울로의 회복’의 과정

이러한 과정은 사도행전 9장에 자세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울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는 ‘가해자’의 자리에서, 사울의 눈이 안보이게 되는 ‘피해자’의 자리로 옮겨지고, 예수의 제자 아나니아가 사울의 눈을 안수함으로써, 예수의 제자와 사울이 직면의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에, 사울의 눈이 다시 보이게 되는 ‘회복, restore’이 이루어져 관계맺기를 하게 된다.

다음 단계에서, 바나바(위로자)는 사울을 예수의 제자들과 만나게 함으로 2차 직면 사건으로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사울은 예수를 증거하는 자로서 3차 전도여행을 일생 동안 다니면서 자발적 책임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로 인해 초기기독교 공동체에 평화 회복이 이루어져 새 세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바울 서신에 나타난 ‘회복’

갈라디아서 6:1, 2, 4에 보면, “형제, 자매들이여, 한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엮이거든(caught in any trespass / caught on sin), 영적 사람인 당신들은, 온유의 영성 안에서(a spirit of gentleness/meekness), 그것을 회복시키십시오.(restore/katartizete such a one)”라고 되어 있다. 즉 그 회복의 과정은 서로 자신의 내면을 먼저 “돌보십시오”, “당신들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의 역할/짐을 감당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법’을 이행하십시오.(성찰)”라고 쓰고 있다. 특히 4절, “각자 자기 일을 살피고, 자랑할 것은 자기에서 끝내야지. 다른 누군가와 비교/판단해서 하지 마시오.”(마태복음 7장, “비판하지 말라[Do not judge])라고 제시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는 마지막 심판의 잣대

‘피해(자) 회복’의 중점을 두는 것은 마태복음 25:31 이하에서 ‘마지막 심판(양과 염소 분별)’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극히 작은 자들의 피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은 사회적 약자, 공동체 밖의 사람들로서 고통당하는 자들, 피해(자)들로서 배고픈 자, 목마른 자, 나그네/이방인/이주민/난민, 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들이다.

회복적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디아코니아(diakonia)’

‘디아코니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20:28)고 하신 말씀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섬김의 내용은 모든 피해로부터 고통당하는 자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행위이며, 그 과정이기에 그렇다.

황필규 위원장(NCCK 장애인소위원회)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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