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오늘의 세계를 치유하는 길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은?(호세아 14,4-8; 마태복음 6,24-34)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1.14 16:16
▲ 「Christ’s Sermon on the Mount: The Parable of the Lily」 ⓒWikipedia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방향은 지금 상태에서 보면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지구종말의 시계가 멈출 시간은 현재 분초를 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재촉하는 일들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역적으로 지구적으로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 배후에는 ‘더 많이 더 강하게 더 높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쟁을 낳고 경쟁을 미화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종말을 향한 시계바늘이 더 빨리 움직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부딪히는 생태위기입니다. 이를 예언자 호세아의 말을 빌어 말하면, 이 땅에서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취를 감추고 땅이 슬퍼하고 생명들은 쇠퇴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또 다시 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입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뿐이라면 주님은 그렇게 하는 사람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이 알고 주님이 그 앞에 머물기를 허락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그의 뜻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오늘의 세계에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과 재물 가운데 누가 우리의 주인인지를 묻습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오류가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재물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모욕처럼 들리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재물의 주인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추구한다는 말을 생각하면, 재물은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나 쪽에서 보면 추구하는 주체가 나이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재물이 나를 이끌고 나는 재물을 쫓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면, 재물은 주인이고 나는 그를 따르는 종이 됩니다.

그런데 재물이란 아주 많고 아주 큰 것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본문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지라는 작고 평범한 일상으로 재물에 대한 태도를 대표합니다. 일상이 우리를 사로잡는 방식은 염려와 근심과 걱정입니다. 이렇게 재물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들의 백합화와 솔로몬의 찬란한 옷을 비교하십니다. 백합화는 백합(白合)을 뜻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 말이 복수형으로 백합들이 아니라 많은 꽃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로 百合花는 참 좋은 번역입니다. 바로 우리 교회의 이름입니다.

화려한 장식을 두른 솔로몬의 옷도 들을 가득 메우며 핀 꽃들 가운데 한 송이만 못하다는 말씀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름도 없고 관심을 끌만한 것도 없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내일이면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던져질 들꽃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신 주님의 눈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께서는 들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찾습니다.

들풀을 그런 아름다움으로 옷 입히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모든 정성과 기술과 비용을 들여 만든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옷에 취해 들꽃을 지나치는 우리가 아닌지요? 주님의 눈으로 들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빕니다.

솔로몬의 옷과 들꽃에 대한 태도가 재물과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들풀보다 하나님께 더 귀한데, 들풀을 그렇게 아름답게 키우신 하나님이 사람을 돌보지 않겠냐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생활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게 하고 내일에 대한 우리의 걱정을 떨쳐버리게 합니까?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그러면 우리는 재물 대신 하나님을 진정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하는 그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정의를 펼치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있으며 우리를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은 들풀을 보살피는 것처럼 그의 백성의 삶을 돌보시며 그의 정의를 펼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파국으로 치닫는 오늘의 세상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재물을 섬기는 것이 파국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찾는 것이 그 파국을 막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평화이고 생명이고 보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돌아온 이스라엘의 반역을 고치고 그들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치 아침이슬과 같이 되고 그들의 미래를 백합화처럼 피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파국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리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를 치유하는 길입니다. 그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랑이 꽃 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고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겨질 것입니다. 개인과 집단이 경쟁의 사슬에서 풀려나 들을 메우고 아름다운 꽃들처럼 각자 자기를 실현시킬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깃들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부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를 자랑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숨겨져 있지 않고 어려워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생명이 들의 꽃들처럼 피어나게 하는데 있습니다. 백합화(百合花)들이 어우려져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생명의 세계를 이루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그의 뜻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백합화들 곧 우리들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