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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부름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기쁨(시 97,10-12; 요 2,1-11)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1.21 16:36
▲ Julius Schnorr von Carosfeld, 「The Wedding Feast at Cana」 (1819) ⓒGetty Image

코로나19는 세상의 변화를 적어도 일이십년 앞당기고 있습니다. 그 미래는 준비하고 실험하고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할 시간을 놓친 셈이 되었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강제적으로 그 미래를 살아야 하는 현재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비접촉 사회로의 이행일 것입니다. 간접 접촉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접촉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간접적 만남이 앞으로 중심이 된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람을 만들어낼지 우려가 됩니다.

현재 만남의 상실은 경쟁사회 체제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삶이 고달픈 사람들에게서 마지막 즐거움과 기쁨마저 앗아가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고 그에 따른 자살률도 매우 높은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이것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정도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현재와 미래를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개신교란 말은 본래 가톨릭교회와 그 전통에 저항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사회변화에 저항하는 의미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의 어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결혼식의 흥을 돋우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술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결혼식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을 텐데 예상이 빗나간 모양입니다. 이것은 결혼식을 망칠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결혼식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술이 떨어진 것을 먼저 파악하고 나중엔 하인들에게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에게 술이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에게 이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것일까요?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의 대답이 이를 짐작케 합니다.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는데.”

앞의 말은 헬라어로 ‘무엇 나와 당신에게?’(τί ἐμοὶ καὶ σοί, γύναι, 티 에모이 카이 소이, 귀나이) 뿐이기 때문에 그 말의 진의가 곧바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러 번역들처럼 자신과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처럼 거절의 말로 이해되겠지만, ‘… 오지 않았는데’처럼 뒤가 열려 있다면 ‘…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처럼 승낙의 말로 이해될 것입니다.

마리아의 지시는 후자로 이해하게 합니다. 예수가 거절했다면, 그렇게 지시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그의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어머니를 ‘여자여(귀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성서의 여러 구절들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존칭이 아니라 여자를 부르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아마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집을 떠난 예수는 그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마저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며 동일한 말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요 19,26).

마리아와 예수의 이 같은 관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낳았고, 결혼식장은 ‘좋은’ 포도주로 더욱 흥겨워졌을 것입니다. 물을 떠다 준 하인들은 이를 보고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이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마 5,16 비교), 그들의 입을 통해 예수의 소문이 그 지역에 두루 퍼졌을 것입니다. 

아직 자기를 드러낼 때가 아닌데, 나서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단을 가능케 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마음과 결혼식장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태도가 자기의 경계를 넘어서게 하고 기쁨의 새로운 세계를 엽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결혼식장 같은 축제의 자리는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좋은 보여줄까? gk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시 4,6).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찾는 자들이 권력을 잡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도 기쁨의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위해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해 기쁨을 뿌리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의인들에게 기쁨의 근원이 되시려고 합니다. 의인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악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악을 멀리하고 악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을 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룹니다(롬 13,8-10).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마음에 주시는 기쁨은 ‘누가 우리에게 좋은 보여줄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곡식과 새포도주를 거뒀을 때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의인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기쁨의 새로운 세계는 열립니다. 그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며 시간 뒤에 숨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때가 아니라는 판단보다 더 커서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행동의 동력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들의 힘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미래를 앞당겨 사는 지금 위기의 시대는 위에서 말한 의미의 의인들을 찾고 있습니다. 시대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기쁨의 새로운 세계는 사람들의 만남이 핵심입니다. 만남을 기피하게 하는 어둠의 미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기쁨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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