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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인생이 아니다모두 이처럼 되리라(누가복음 13:1-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1.24 17:18
▲ 실로암 망대가 무너졌다. ⓒGetty Image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오늘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배경이 되는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셨는지, 누가복음은 왜 다른 복음서가 사용하지 않은 이 말씀을 기록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절에서 어떤 사람 두어 명이 예수님께 와서 어떤 갈릴리인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전합니다. 이 사건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를 따라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시골 동네이면서 민란이 자주 발생하던 지역입니다. 요한복음 7장 41절과 52절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가, “갈릴리에서 어찌 그리스도가 나오겠느냐?”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라는 평가는 갈릴리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빌라도에 의해 피를 흘린 갈릴리 사람들은 아마 로마에 대항하며 민란을 일으켰거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어디에서 처형당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의 제물에 피를 섞었다는 표현으로 짐작했을 때,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드리러 왔다가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과 함께 실로암 탑 붕괴 사건을 언급하시며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사건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4절의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로암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실 때, 그의 눈을 실로암에서 씻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실로암을 연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실로암은 연못의 개념은 아닙니다. 열왕기하 20장 20절에는 남왕국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 침입에 대비하여 지하 수로를 만들었는데, 성안에 있는 수로의 끝이 실로암입니다.

이 수로는 예루살렘 성 외부에 있는 물을 성안으로 끌어온 것이기 때문에 너무 길게 연결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남부 지역에 성벽과 맞닿은 위치에 실로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절에 이 성벽과 실로암이 얼마나 증축, 개축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실로암 망대가 있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여전히 성벽 옆에 실로암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망대는 적을 감시하기 위한 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실로암 망대가 붕괴하여 18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건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재해로 인한 사건인지, 부실공사로 인한 사건인지, 망대를 개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계신 두 가지 사건의 역사적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만, 왜 이 두 사건을 언급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사건이 가지는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처형 사건은 정치적 활동에 의한 죽음입니다. 지금은 정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처형 사건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다가 죽임당한 사건입니다.

반면에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은 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입니다. 때로 이 사건을 부실공사 또는 안전을 확보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다가 노역자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이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언급하셨다고 봅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결과가 죽음이었다는 점과 사람들이 그 죽음의 이유를 죄 때문이라고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질책하십니다. 정치 활동을 하다가 죽임당한 사람이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판단하지 말라 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너희의 죄가 이 사람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하셨던 말씀은 이런 의미의 선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죄를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죄의 평가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의 죄를 판단하며 평가하지 말고, 너희 자신의 죄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그 사람의 잘못을 평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행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목적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누가복음은 다른 의미를 덧붙입니다. 누가복음 13-14장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선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도 않았으면서 스스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누가복음의 경고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시작이 되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은 2-3절과 4-5절의 대구를 맞추면서 3절과 5절에 똑같은 말씀을 배치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완전히 똑같이 번역되어 있는데, 헬라어로 보면 ‘이와 같이’라는 부사에는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됩니다. 그래도 뜻은 ‘이와 같이’로 같습니다.

저는 3절과 5절의 번역에서 마지막 단어 ‘망하리라’의 번역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한다’는 단어는 그 사람들이 잘못해서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망한 것처럼 너희도 망하게 된다’는 의미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망한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폴뤼미(ἀπόλλυμι)’는 ‘파괴하다’, ‘죽이다’의 뜻도 있고, ‘죽다’, ‘폐허가 되다’, ‘잃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말 성경의 번역에 따라 말씀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들을 망했다’고 말씀하셨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죽는다”라고 번역한다면, ‘이런 죽음’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누가복음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이들이 망한 이유’가 아니라 ‘이들의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봅니다.

이들의 죽음은 끝을 알 수 없는 죽음입니다. 이들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판단할 수도 없으며, 이 땅에서 삶을 끝마친 이들이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저 죽음으로 끝난 삶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선포됩니다. 회개하고 죄를 뉘우쳐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말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다 죽음을 맞는 사람의 끝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 특히 누가복음이 의도한 것은 ‘이런 죽음을 맞은 인생은 망한 인생이다’가 아닙니다. 죽음은 어떤 사람에게든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누가복음은 그 죽음 이후를 위해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 이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됨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확정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억해야 합니다. 남의 죄를 판단하지 말고 내가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죄를 지적함으로 그의 죄를 고발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형태가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향한 고발이 되어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바르지 못한 이들을 향한 고발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누가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이를 알고 있다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지 말고 확정된 미래를 향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갈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다면 그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삶을 살아갑시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죽음 이후의 세상 뿐 아니라 지금 이 땅에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갈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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