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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내 아버지 집”(누가복음 2:41-5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1.26 15:26
▲ Gustave Doré, 「Jesus with the Doctors」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주중에 둘째가 생일이었습니다. 몇 주 전부터 “내 생일에는 초코케이크이어야 해.”, “선물은 이걸로 사줘.”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자신이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맡겨 놓은 것을 받는 것 마냥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부모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런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습니다. 마침내 생일이 되고, 자신이 요구한 모든 것을 받고서 하루 종일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행복하면 부모는 당연히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요구하기도 전에 ‘절대적으로’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고 신비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시기에 ‘평안’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 평안과 사랑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다른 헛된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이미 주어진 사랑과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매해마다 목사님들은 다음 해의 목회계획을 세우고 성도님들과 공유를 합니다. 그런데 2020년 말에는 많은 목사님들이 마땅한 목회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세우더라도 단서를 붙였습니다. ‘코로나가 해결되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어느 시기부터는 더 이상 교회들이 양적인 성장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인 성장에 대한 헛된 계획들을 세우며 한 해 한 해를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양적인 성장도 못하고, 믿음의 성숙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교회, 목회자, 성도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TV나 여러 매체들을 통해 매일 같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상황이 더 이상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양적인 성장과 믿음의 성숙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3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재물은 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재물은 인간의 부정적인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양적인 성장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양적인 성장은 단순히 인간적인 욕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큰 교회에 다녀도 그럴 듯한 종교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여도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헌금을 아무리 많이 내어도,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성경을 얼마나 읽었고, 몇 구절을 암송하는지도 이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인가요?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교회도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개개인이 자신 안에 하나님이 심어 주신 온전한 사랑을 드러냄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해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살이 되는 해에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하루가 지난 뒤에야 자신의 아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아들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48b)

성경에는 12살이지만 한국나이로 치면 13살입니다. 조선시대 때 13살이었으면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조선시대 때보다 더 오래된 시대의 13살은 지금의 13살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13살이나 옛날 13살이나 차이가 없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차단했는지도 모릅니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할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49절)

육신의 부모가 있는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 자신이 있어야 할 진정한 집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면 정말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의 집과 하나님의 집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앞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예수님과 부모의 대화를 묵상하며 예수님이 하신 또 다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요한복음 18: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버리거나 혼자 동떨어져 살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전히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추구하시며 사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은 여전히 육신의 부모와 함께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속한 곳은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를 만들어 온 경험과 지식, 목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것들에 매이지 않고 분리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속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과 사랑을 누리며 드러내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형성해 왔던 기준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독립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기에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한 젊은이가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그를 사로잡고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 문제로 고심하던 그는 수도원 원장님을 찾아갔다. “원장님, 제가 속세를 떠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저를 붙들고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수도원 원장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를 데리고 수도원 뒤뜰로 갔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다. 원장은 그 가운데 한 나무 앞으로 갔다. 원장은 그 나무를 자기의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서 원장은 자기의 몸을 몇 번 뒤척뒤척하더니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이 나무가 갑자기 나를 붙들고서는 놓아주지를 않네. 나를 좀 도와주게. 이 나무에서 나를 좀 떼어주기를 바라네.”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수도원 원장은 더 다급한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니, 젊은이! 무엇을 하고 있나? 이 나무가 나를 붙들고서 놓아주지 않는다니까 왜 그냥 그대로 서 있나?” 그는 마지못해서 수도원 원장을 그 나무에서 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가 나무에서 원장을 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원장은 더 안간힘을 쓰면서 나무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끌어안았다. 급기야 그는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님, 그 손을 놓으세요! 나무가 지금 원장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원장님이 나무를 붙들고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수도원 원장은 손을 풀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젊은이. 자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제는 깨닫겠는가? 세상이 자네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자네가 세상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자네가 붙들고 있는 그 손을 과감히 떨쳐버리게. 그것이 자네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네.”

2021년 더 하나님 안에 속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고, 평안과 사랑을 충만히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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