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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이 전하는 교회의 이상(理想)준비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누가복음 14:28-3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1.30 22:35
▲ 그리스도를 따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Getty Image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지난 주일에 저희는 누가복음 13장 1-5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의 의미와 누가복음을 기록한 집단이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하고자 하셨던 말씀은 남의 죄를 판단하는데 멈추지 말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합니다. 천국에 합당한 삶을 선택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덧붙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누가복음 13-14장은 천국에 합당한 사람,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다양한 말씀 중에서 이와 연관된 말씀들을 의도적으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 마지막인 누가복음 14장 25-35절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26-27절과 33절이 본래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나의 말씀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가족과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 내 제자이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내 제자가 될 수 있다는 하나의 말씀 덩어리를 구성합니다.

누가복음은 이 말씀 덩어리 사이에 비유를 섞어 넣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들입니다. 가족과 목숨을 버리는 일은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비용이 얼마인지를 따져보는 일과 같다고 말합니다. 또 오늘 본문 이후에 나타난 전쟁에 나가는 임금이 자신의 군사와 상대 병력을 파악하는 일과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버리는 일은 소금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맛을 잃은 소금이며,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가 없어서 버려지는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자신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나타납니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복음 공동체가 강조했던 신앙 자세입니다. 그렇기에 33절에 나타난 말씀이 예수님께서 정말로 하셨던 말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4장 25-35절은 자신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가족과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준비 단계일 뿐입니다. 이는 공사 전에 비용을 계산해보는 일, 전쟁 전에 병력을 파악하는 일과 같은 단계입니다.

이런 준비 단계를 마친 사람은 이제 자신의 소유를 팔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과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도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않았다면, 아직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 속에서 누가복음 13-14장을 생각해본다면, 13장은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은 아직 그러한 자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3장 6-9절에 나타난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주인에게 1년의 유예 얻어내는 모습으로 끝나는 점은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라는 유예 기간, 회개하여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노력, 청함을 받았을 때 끝자리에 앉는 모습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요건이 됩니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잔치를 사양하고 참석하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잔치의 빈자리는 거리에 있던 아무 사람이 차지하게 됩니다. 14장 23절은 13장 29절과 연결되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이후에야 제자가 되는 길에 대한 말씀이 나타나는데, 저는 누가복음이 13-14장에서 신앙의 단계 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회개는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회개했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난 사람,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이제 가족과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때에야 예수님의 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제자의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제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을 짜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맛을 가진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소유를 버리는 일입니다.

누가복음이 요구하는 신앙, 자신의 소유를 모두 버리라는 신앙은 지금 시대에는 조금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물론 누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에도 무리한 요구이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가 괜히 적히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이 말하고 있는 신앙의 단계는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은 회개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신앙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가장 기초적인 자격 요건에 해당합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자격조차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은 어쩌면 이 단계에만 과도하게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마다 회개하는 삶’, ‘매주 교회에 나와서 회개하는 예배’만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죄는 끝이 없기 때문에 항상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매주 드려지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더 나아가 매일 새벽기도가 중요해집니다. 우리는 항상 회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있어서 회개는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깨닫는 일이며, 그 깨달음에 따라 반성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우리는 또 죄를 범하게 될지 모르지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자세 자체가 회개입니다.

이런 결단을 한 사람은 자신의 가족, 목숨을 내버리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에는 실제로 이런 결단을 요구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말씀이 특정 교회들 안에서 문자 그대로 인용되면서 교회에만 충성을 요구하는 변질된 형태로 나아갔던 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가족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누가복음 안에서 자신의 안과 밖에 있는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담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라는 의미입니다. 욕망과 욕심을 버리기에 그 사람은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묵묵히 걸어가기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유를 버리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 역시도 상당히 왜곡되어 전해진 말씀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교회에 바치라는 말씀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교회가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이 본질적으로 전했던 이야기는 나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도우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면서 살지 말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이 말하는 신앙은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적이라고 말하는 단계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며, 이 단계는 그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단계는 그 다음입니다. 세상 속에서 욕심을 버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며 살아가는 단계이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누가복음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 속에서 소금의 맛을 낼 때에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에만 매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만을 지속한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비용 계산도 안하고 공사를 시작한 사람과 같습니다. 결국 비용이 모자라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며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우리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작년부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개신교는 지금까지도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외면한 채, 교회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교성이라는 이유로 교회만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교회는 누가복음에 의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초대받은 잔치에 참여하길 거절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며, 선지자를 탄압하는 예루살렘과 마찬가지이며,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치유했다고 논쟁을 벌였던 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교회가 세상에 소금의 맛을 내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바이러스 공장이라고 질타당하는 이 상황을 조금씩 바꾸어갑시다.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해 나갈 때, 교회를 향한 질타는 칭찬으로 바뀌어 갈 줄 믿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교회를 이루어가시는 여러분, 소금의 참맛을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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