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종은 어떠한 폭력 앞에서 굴하지 않았다. ⓒGetty Image

제2 이사야서로 일컬어지는 이사야 40-55장에는 네 개의 종의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고난당하는 의인들이 많지만, 노래에 나오는 종이 예수의 모습과 가장 닮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난 앞에서의 태도가 가깝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주목하면 우리는 그 노래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 사건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노래들 가운데 하나로 세 번째 종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여기서 1인칭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배운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가 달변이란 말은 아닙니다. 그는 지치고 고달픈 사람을 말로 도울 줄 알았습니다.

이게 어떤 것일까요?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말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그의 말은 듣는 사람 속에 희망을 싹트게 하고 그 희망을 따라 살 힘을 북돋아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단지 말재주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침에 그를 일깨우십니다. 그의 귀를 일깨우시고 ‘배운 사람처럼’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하게 그는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사정에 공감할 수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구속되고 고난당하게 되었을까요? 그를 만나 희망을 갖고 일어설 힘을 갖게 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세력이 있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불법한 일을 한 적이 없지만, 그와 그의 일은 불온한 일로 규정됩니다. 그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희망 때문입니다. 급기야 그는 체포당하고 모욕당하고 고문을 당합니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했을까요? 원망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가리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한 일이 떳떳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 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귀를 여셨습니다. 그의 귀를 일깨우셔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하셨던 하나님이 그의 귀를 여시고 그의 마음을 들으시며 그를 붙들어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그를 강하게 만들고 이 고난의 시간이 저 세력들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정당성을 인정하신다고 그는 외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편에 계시니 그에게 죄를 씌우는 세력의 불의가 드러나고 말 것이며, 불의한 세력들은 낡은 옷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일하셨고 그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도움은 바로 그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저 하나님의 종으로 불릴 뿐 그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일을 했음에도 그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사람,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52-53장의 네 번째 노래는 그를 지극히 평범해서 주목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배운 사람‘처럼’ 할 수 있었을 뿐이며 배운 자들에 속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런 그는 특별한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일 수 있는 보통 사람입니다. 누구나인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누구나 그 사람처럼 위로와 희망의 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불온시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거기 있었고, 그들 때문에 세상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은 그들이 희망했던 세상에는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희망을 가질 수 없어 위로가 필요하고 위로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지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도달하리라는 희망도 없이 마치 바다 위에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엇이 등대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종은 오늘 요한1서 본문에 비춰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1절에 따르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동의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했던 시절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우리나라도 그런 곳이 아니니 더욱 더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의 표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그를 낳으신 이를 사랑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귀결되는 또 하나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추가됩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미 짐작하셨을 테이지만 요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출생의 관계로 풀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출생의 관계에서 보면, 그 이웃이 곧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웃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좁은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은 그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함께 하나님에게서 난 형제들조차 사랑하지 않는다고 탄식하며 눈앞의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우리는 이 물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을 사랑할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도 그의 계명도 모른다면, 그를 하나님에게서 난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 사랑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를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라면, 동시에 그것은 보다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자녀, 특히 하나님이 자기와 동일시하는 작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의 귀를 열어 말씀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모진 고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를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이와 같습니다. 그는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지치게 만들고 주저앉게 만들고 넘어지게 할지라도 세상은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형제들 속에 있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희망을 형제들과 나누며 세상을 이기신 주님(요 16,33)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 곧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은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얻는 평화의 위로로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발견되는 질서로 오늘의 세상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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