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역사가와 예언자의 차이이스라엘 역사 알기 ㉑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1.02.04 16:17

북왕국의 마지막 영광

지난 글에서 저희는 남왕국이 ‘아마샤’, ‘웃시야’, ‘요담’ 시절에 상당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시기 남왕국은 영토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고, 왕정 체계와 기록 체계까지 갖추게 됩니다.

남왕국 ‘웃시야’, ‘요담’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주전 785-745년)’도 상당한 발전과 영토 확장을 이룬 왕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북왕국의 성장을 이룰 수 있던 동력에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역할이 컸지만, 그보다 아시리아와의 동맹 관계 속에서 아람 세력을 몰아낸 덕분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3-14장」에는 ‘하사엘’과 ‘벤하닷’으로 대표되는 아람 세력이 북왕국을 끊임없이 침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시기 아시리아는 잦은 내분으로 인해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시기 아시리아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시리아 왕 ‘아다드 니라리 3세(주전 805-782년)’는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정복 전쟁을 다시 일으킵니다.

▲ 아다드 나라리 3세 비문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텔 알 리마에서 발견된 ‘아다드 니라리 3세’의 부조와 기록입니다. 현재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이 비문에는 ‘아다드 니라리 3세’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하고 받은 조공 내역이 나타나 있습니다. 번역은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227페이지를 따릅니다.

“일 년 후에 나는 아무루(Amurru)와 하티(Hatti) 전 지역을 점령했다. 나는 그들에게 영구적인 세금과 조공을 부과했다. 나는 다메섹인 마리(Mari)로부터 조공으로 은 2000달란트, 동 1000달란트, 철 2000 달란트, 채색 장식이 있는 리넨 의류 3000벌을 받았다. 나는 사마리아인 요아스와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서 조공을 받았다.” ANET 281-82, 그래비 『고대 이스라엘 역사』 227

이 비문에서 다메섹인 ‘마리’는 아람왕 ‘하사엘’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데,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쓴 ‘그래비’의 경우, 연대에 따라 ‘하사엘’이 아닌 그의 아들 ‘벤하닷’일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사엘’과 ‘벤하닷’의 정확한 재위 기간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북왕국 ‘요아스’는 이후에 더 살펴보겠지만, 친아시리아 정책을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아시리아는 북왕국이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에 제동을 걸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요아스’와 마찬가지로 친아시리아 정책을 펼친 ‘여로보암 2세’도 영토 확장 정책을 펼칩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북왕국의 영토를 확장시킵니다. 이때 아라바 바다는 사해를 가리킵니다(암 6:14 참고).

▲ 지중해 동편 지표 ⓒWikiMedia

구약성경에는 북왕국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예언자 세 명이 나타납니다. ‘호세아’, ‘아모스’, ‘요나’입니다. 이중 ‘호세아’와 ‘아모스’는 북왕국의 타락과 멸망을 경고하는데, 이들의 예언을 살펴보면, 당시 북왕국 지도층이 얼마나 부유한 삶을 누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호 2:5,8,13; 3:1; 4:7,11; 7:14; 9:1; 10:1; 13:6; 암2:8; 3:15; 4:4f; 5:11; 6:4ff 참고).

「열왕기하 14장 25절」은 예언자 ‘요나’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북왕국을 도우셔서 ‘여로보암 2세’가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실제 ‘여로보암 2세’가 하맛 어귀까지 영토를 확장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예언자 ‘요나’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밀러/헤이스’가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적어놓은 한 줄이면 충분히 설명될 것 같습니다. “후대에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요나서의 주인공이 된 가드헤벨 출신의 선지자”(밀러/헤이스, 『고대 이스라엘 역사』, 380)

‘하맛 어귀’는 정확히 도시 하맛을 일컫는 표현이 아니라 하맛 남쪽에 있는 레보-하맛을 일컫는다고 해석됩니다. 그 정확한 지역이 어디인지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하맛 어귀’가 ‘솔로몬’ 시절 가장 크게 확장된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라는 점입니다(왕상8:65 참고).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여로보암 2세’가 솔로몬 시절의 경계를 되찾았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번역하기 어려운 본문으로 꼽히는 「열왕기하 14장 28절」의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이라는 표현을 남깁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은 ‘유다에 속한, 이스라엘에(ליהודה בישׂראל)’입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for Judah in Israel’이 됩니다.

하맛은 북왕국보다도 한참 북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이 남왕국의 영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을 ‘이전에 이스라엘에 속하였던’으로 바꿔 읽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고, 이때의 ‘유다’가 남왕국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왕국 중심의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하맛 어귀까지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이라는 말을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앵커 바이블, 『Ⅱ Kings』에서 ‘코간’은 이런 해석은 과도한 추측성 해석이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구절의 해석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과 판단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열왕기의 평가

북왕국 ‘여로보암 2세’는 분명 영토를 확장시켰고, 북왕국의 부귀를 회복했던 왕입니다. 우리가 「열왕기」의 기록만 읽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와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의 영광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기욤 루이예의 「여로보암 2세」 목판화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1566년 프랑스 리용(Lyons)에서 기욤 루이예(Guillaume Rouillé)가 출간한 위인전기 ‘Promptuarii Iconum Insigniorum’에 있는 ‘여로보암 2세’의 삽화입니다. 

먼저 「열왕기」의 평가를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14장 24절」은 ‘여로보암 2세’가 다른 북왕국 왕들과 마찬가지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평가합니다. 반면에 ‘여로보암 2세’의 영토 확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여로보암 2세’의 영토 확장을 하나님의 구원하심 때문으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북왕국이 좋은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열왕기하 14장 26절」은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4장 27절」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로 끝납니다. 이는 ‘요아스’ 시절에 고난이 심하였기 때문에 ‘여로보암 2세’ 때에 북왕국을 회복시키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WBC 주석 『열왕기하』를 기록한 홉스(T. R. Hobbs)는 「열왕기하 14장 26절」에 나타난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가 관용적 표현이며, 모든 백성의 비참한 상태까지도 포함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열왕기」가 말하는 ‘여로보암 2세’의 치세는 비참했던 모든 백성이 구원받아 평안을 누린 것이 됩니다.

아모스의 평가

하지만 ‘아모스’의 예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구절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로보암 2세’ 시절에 북왕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아모스 4장 1절)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아모스 5장 11-12절)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아모스 8장 4-6절)

‘아모스’의 비판적 목소리에 관해서는 1998년 『기독교 사상』 42에 실린 임상국의 「아모스의 사회비판과 계약법전」을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 논문은 ‘아모스’의 예언이 남왕국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계약법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데, 전체적인 흐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모스’ 예언의 사회 비판적 성격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예언자 ‘아모스’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부유층에 의한 착취와 수탈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아모스」는 당시 북왕국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모스」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의 북왕국은 부유한 자들은 부를 누리고 즐거움을 누린 시기였지만, 힘없는 백성들은 모든 것을 잃은 사회였습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이 명확하게 대비된 사회였습니다.

호세아의 평가

「호세아」가 지적하는 ‘여로보암 2세’의 죄는 「아모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호세아」를 읽다보면, 북왕국에 정의와 공의가 사라졌다는 언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언자 ‘호세아’도 ‘아모스’와 마찬가지로 사회 정의를 외쳤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의 강조점은 친아시리아, 친이집트 정책 비판에 있습니다.

「호세아 1-3장」은 ‘고멜’과의 결혼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호세아’는 북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사랑을 찾아갔고, 그렇기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랑’은 ‘우상숭배의 죄’와 연결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호세아」에는 그 직접적인 대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집트와 아시리아입니다(호5:13; 7:11; 8:9; 9:3; 10:6; 11:5,11; 12:1; 14:3).

「호세아 1장 4절」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에 나타난 ‘예후’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루게 되겠지만, ‘호세아’는 「열왕기」처럼 ‘예후’를 좋은 인물로 보지 않습니다. 「호세아」에 나타난 반아시리아, 반이집트 정서를 생각해보았을 때, ‘예후’가 범한 가장 큰 잘못은 시리아-팔레스타인 동맹을 견고히 갖추었던 ‘아합’의 집안을 몰살하고 친아시리아 정책을 펼친 일입니다. 

이런 내용은 2018년 『구약논단』 24에 실린 박경식의 「호세아의 결혼 비유에 담긴 사회정치학적 수사학 연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호세아」에 대한 지난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는데 상당히 많은 지면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시기에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호세아’의 예언을 종교적으로만 읽는다면, ‘예후가 흘린 피’에 대한 경고를 ‘폭력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겠지만, ‘호세아’의 예언은 종교적 선포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선포였다고 봅니다. 「호세아」에 나타난 이런 정치적 성향은 우리가 이미 바벨론 포로기 직전 상황을 다루며 살펴보았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정치 상황에 따른 예언을 했고, ‘에스겔’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의 역사 기록도 정치색이 상당히 묻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호세아’의 예언이 완전히 정치적인 선언이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호세아’는 자신의 예언 속에서 분명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 2세’의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북왕국 사회가 붕괴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호세아’가 지적한 사회 붕괴를 예언자 ‘아모스’의 선포와 연결시켜 본다면, ‘여로보암 2세’의 친아시리아 정책이 부유층, 귀족 계층에게는 부와 영화를 안겨주었지만, 백성들에게는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이스라엘 역사 알기(19) ‘이스라엘 열왕의 공백기’」에서 ‘디글랏빌레셀 3세’ 시절, 아시리아에 바쳐야 하는 조공이 속국들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아시리아를 향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시리아 왕 ‘아다드 니라리 3세’가 매년 부과한 세금이 얼마나 과도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왕기」, 「호세아」, 「아모스」에서 보여지는 북왕국의 모습을 통해 유추하자면, 그 세금의 양이 과도하게 많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왕국 부유층은 상당한 부를 쌓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왕국에 만연한 불의의 원인은 아시리아 때문이라기보다 ‘여로보암 2세’를 비롯한 귀족층, 부유층의 부패였다고 봅니다.

무엇이 죄인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로보암 2세’ 시절 하나님의 구원이 있었다고 기록한 「열왕기」는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는가? 아니면 북왕국 백성들의 삶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가?

「열왕기하 14장 24절」에 기록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라는 평가는 백성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차적으로 생각했을 때, ‘여로보암 2세’ 시절에도 여전히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음에 대한 지적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북왕국 왕이기 때문에 ‘악하다’ 평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왕기」가 ‘여로보암 2세’에 대해 ‘악하다’ 평가하는 이유는, 남왕국 역사가 집단이 이미 북왕국의 멸망을 보았고, 결국 멸망하게 된 북왕국 역사라는 큰 틀에서 ‘여로보암 2세’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악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열왕기」는 역사의 큰 틀 속에서 북왕국의 영토의 확장, 국력의 신장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기에 ‘여로보암 2세’의 통치는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열왕기 역사가 집단에게 있어서 ‘여로보암 2세’의 영토 확장은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가 ‘하맛 어귀’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호세아’와 ‘아모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북왕국의 번영 뒤에 숨겨진 사회의 부정의, 사회의 붕괴,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들 예언자들은 ‘여로보암 2세’를 ‘악하다’ 평가합니다.

남왕국 역사가 집단의 역사 기록과 북왕국 예언자들의 예언이기에 이런 차이를 보일지도 모릅니다. 남왕국 역사가 집단이 북왕국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히 판단하며 이를 통해 왕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기록 속에서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역사라고 말하는 큰 틀 속에서 국가가 성장한다면, 내 재산만 많아진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 소수의 희생은 괜찮다고 여기는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는 왕위에 오른 지 여섯 달 만에 ‘살룸’의 반란에 의해 죽임당하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옳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 ‘호세아’와 ‘아모스’의 선포와 같이 붕괴되어 버린 북왕국의 사회는 다시 회복되지 못한 채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북왕국의 역사를 보며, 지금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언자들의 시선이 아닌 역사가의 시선으로만 사회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북왕국 ‘요아스’에 대해 다루게 될텐데, 북왕국 ‘요아스’ 시대에 예언자 ‘엘리사’가 죽었다고 「열왕기하 13장 14-21절」은 말합니다. ‘엘리사’나 ‘엘리야’에 대해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따로 다루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