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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와 의지 사이뜨겁게 사랑하라(베드로전서 4:7-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2.06 20:04
▲ Hans Suess von Kulmbach, 「Ascension」 ⓒGetty Image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제가 작년 말부터 올해 1월까지 계속 전해드린 말씀은 교회 밖, 세상으로 나가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지금 시대에 교회는 세상의 비난으로 인해 움츠러들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지난 잘못된 모습을 반성하며 세상을 향해 나가야만 하고, 세상에서 참된 빛을 발하며, 참된 소금의 맛을 내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게 씌워진 오명을 벗겨내야만 합니다.

오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는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도가 세상으로 나아감을 지향한다면, 교회는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를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사랑’을 강조하는 성경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은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3장일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요한1서를 꼽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도 ‘사랑’을 강조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오늘 본문 8절에서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1장 22절에도 나타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종말에 대한 신앙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장로 요한의 요한1서, 베드로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베드로전서, 모두 초대교회를 향해 기록된 편지입니다. 이 편지들은 한결같이 서로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라고 얘기합니다. 서로가 사랑하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말합니다.

사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곧 이 땅에 재림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종말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종말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7절 하반절에 나타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오직 흔들림 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와 마찬가지로 성도 간에 사랑하라는 말씀도 종말에 대한 생각이 근간에 깔려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종말에 대한 기초적인 신앙은 있지만, 임박한 종말, 곧 종말이 일어나리라는 신앙을 심각할 정도로 갖고 있진 않습니다. 내일 당장, 내년에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신앙은 지금은 이단 중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신앙입니다.

지금 당장 종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전서가 전하는 기도와 사랑을 무시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흔들림 없이 기도하라고 말했던 이유, 성도들 간에 사랑하라고 말했던 이유는 ‘종말이 올 때까지만 잘 버티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지금 우리가 임박한 종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언젠가 끝을 맺게 됩니다. 이번 주간 설교를 작성하면서, 훌륭한 삶을 사셨던 한 장로님의 소천 소식을 접했습니다. 또 존경하는 한 선생님의 투병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종말 사건이 일어나진 않을지언정,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온전히 살아왔음을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끝날 때문이 아니라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다짐하며 세례를 받은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이루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행할 일

오늘 베드로전서가 요구하는 성도의 자세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 행할 모습이 아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할 일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그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서로’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몇몇 사람만 열정적으로 사랑을 행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서로 서로가 사랑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8절 하반절에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합니다. ‘죄를 덮는다’는 표현은 심판 때에 죄가 보이지 않도록 가린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서 5장 20절에 유사한 표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 초대교회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 같습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하지만 이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 두 말씀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교회 밖에 있는, 여전히 죄인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돌아서게 했을 때, 죄인이었던 사람의 죄가 가려질 것이고 말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전서는 말하는 사랑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가 말하는 ‘죄를 덮는 사랑’은 용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용서할 때, 그들의 죄가 덮어지고 가려져서 하나님께 심판받지 않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베드로전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안합니다. 9-11절 말씀이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입니다. 먼저 원망 없이 서로를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가정 공동체 중심이었고, 예배에는 식사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접’하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심방이 활발히 행해졌던 우리 개신교에게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 이후, ‘대접한다’는 말을 꼭 집에 초대하여 식탁을 나눈다는 의미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더 큰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에게 아무런 원망 없이 베풀어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도들 간에 서로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면 물질적인 나눔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0절은 여기에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것으로 서로에게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각자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르고, 가진 재산도 다릅니다. 가진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장점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누군가를 돕기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단어가 ‘서로’입니다.

우린 때로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저 받기 밖에 못한다고 느끼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줄 것이 없기에 받기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고, 여러 가지 은혜를 각자에게 내리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받은 것으로 베풀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할 때에는 세상의 어려운 이웃들을 ‘그저’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냥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세상의 관계 속에서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길을 걷는 성도들에게 각자에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모두에게 능력을 허락하셨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모든 성도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베풀며, 서로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말합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합니다. 또 13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가 말하는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모두가 각자에 맞는 은사를 받았고 각자에 맞는 은혜를 입었기에 부족한 사람은 전혀 없는 공동체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각자 받은 것으로 서로서로 돕고, 베풀고,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세상에서 지친 영혼을 서로 뜨겁게 사랑함으로 치유하는 곳입니다. 다시금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 치유하는 곳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기 위해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됩시다. 우리가 이루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며, 그것이 날마다 우리의 기쁨으로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교회를 만들어나갈 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어 갈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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