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데스다 연못의 장애인을 고치신 예수 ⓒGetty Image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이 시간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길 축원합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예년 같으면 수첩도 바꾸고, 달력도 바꿔 걸지요. 새해가 시작된 거니까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보통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 양치를 하고 식구들에게 잘 잤느냐 안부를 묻습니다. 매일 습관처럼 하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의 글을 보니까 우리가 화장실에서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하는 일을 “예식”으로 표현했습니다. “Liturgy”인 것이지요. 우리는 아무 곳에나 “예식”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결혼예식, 장례예식, 제사 등 삶의 통과의례 중 중요한 전환점에 그런 단어를 우리는 붙이지요.

그러나, 생일날이나 환갑, 칠순잔치 등에 예식이란 단어를 붙이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 바로 삶과 죽음이라는 중요한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생일잔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아니지요. 그러나, 장례예식은 삶과 죽음의 중요한 경계선을 나타냅니다. 또한 제사도 산자와 죽은자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결혼예식은 어떤가요? 지금까지는 한 사람이라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에서 이제 두 사람의 상호의존이라는 완전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문이기에 옛 사람들은 혼례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뜻하는 “예식”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세수하는 게 무슨 “예식” 씩이나 될까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세수란 잠을 자고 이제 깨어나는, 다시 말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매일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부활을 우리가 엿볼 수 있기에 세수예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우리는 세수라는 작은 예식, 작은 행동에서 우리의 “부활”을 맛볼 수 있습니다.

비록 새해가 되어도 달라질 게 없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이런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여 시간을 달리 보면 우리는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다시 말씀드려, 새해가 됐기 때문에 우리가 새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달라져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우리의 매일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삶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을 우리가 볼 수 없기에 날마다 그저 그런 것입니다. 땅의 현실에만 파묻혀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우리의 삶이 아픈 것입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아시지요?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 살았지만 선녀는 자기의 고향인 하늘을 잊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사람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He passed away”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돌아갈 고향은 잊고 산 건 아닐까요? 연어는 때가 되면 자기가 알에서 깨어난 민물로 돌아가지요. 철새도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날아갑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갈 줄 알아야지요.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자기가 떠나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보내신 분이 맡겨주신 일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뿌리 의식입니다.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압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살아있는 시간은 자기를 보내신 분의 뜻을 수행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그 고통의 시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남김없이 홀가분하게 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의 끝에 서있는 사람으로부터 가끔 “헛살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슬픈 말입니다. “헛살았다” 이런 말을 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말은 38년 동안이나 병에 시달리던 사람을 안식일에 고쳤다고 하여 당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특색이 뭘까요?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사태를 보는 능력을 잃는 순간 우리 마음은 말라버리고,  하나님이 심어주신 우리 본래의 품성은 시들어 버립니다. 자, 여기에 평생 지병으로 신음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살림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고, 얼굴에서 웃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의 병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성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축하해주는 게 마땅한 일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 5장을 보십시오. 율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비난합니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던 한 병자가 건강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38년을 병으로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병고침을 받자 축하는커녕 율법 조문에만 집착합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고 영은 살린다(고후3:6) 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8:1)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데도 닭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아직도 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물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하는 온갖 죄와 헛된 욕망, 정치 경제적 억압과 가난과 각종 차별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니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거 같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버클리는 가장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라고. 그러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를 회고해보면 그동안 사회 속에 스며들어 있던 인종차별이 수면으로 나타나지 않던가요?

그런데 지금 오늘의 기독교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귀중한 종교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오히려 종교적인 독단과 편협함 속에 가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크리스챤이면서 인종차별적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고, 크리스챤이면서 남녀를 차별하고, 크리스챤이면서 가난한 사람을 더욱 업신여기고, 크리스챤이면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합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과 반대의 길입니다. 예수 믿으면 좀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됨이 넉넉하고, 품이 넓어서 누구라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일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과거에 속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제8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투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창조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 일에 동참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거대한 세력들은 죄의 그물을 드리우고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경쟁의 구조를 만들어 놓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돈 벌어서 다른 사람들 위해 군림하라고 유혹합니다. 그 경쟁의 승자가 되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그 경쟁에 밀려는 사람들은 무력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오기 어렵습니다. 전교 1등을 하지 못한 2등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또다시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소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희망으로 난 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주님은 희망의 씨를 이미 심으셨고, 미움과 증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때로는 불합리해 보입니다. 어리석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끗이 비우셨습니다. 깨끗이 닦인 유리창은 바깥에 있는 사물을 왜곡됨이 없이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버렸기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자처한다고 하여 그를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일만큼 친밀하고 가까우시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생각하고 부를 때 우리는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때로는 의를 세우기 위해 매를 들기도 하시지만, 더 큰 사랑으로 사람들을 품어 안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에는 낭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건물의 모퉁이 돌로 삼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보살핌’과 ‘아낌’이야말로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기본 질서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산성’입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속된 말로 짤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상에 틈을 내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이윤추구라는 거대한 물결에 생명을 보살피고 인간관계를 보살피는 작은 돛단배를 띄우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뭡니까? 하나님하고 친해져서 복이나 좀 받아보자는 것입니까? 넉넉하게 살고, 사업 잘 되고,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고 믿는 것입니까? 그것은 초보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기 위한 결단입니다. 어린 아이는 초보적인 믿음으로 살 수 있지요. 그러나 장성한 아들 딸은 아버지, 어머니의 일을 거들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고, 마음이 상한 이들의 벗이 되어주셨던 것은 그들을 보며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아들도 그대로 한다.” 바로 이 마음이 믿음입니다. 비록 서툴다 해도 지금부터라도 자꾸 해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며칠 전에 한 사진을 보았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눈이 많이 내리는 가운데 두 중년의 남자가 뭔가 주고 받는 사진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려고 해도 눈이 워낙 많이 내리는 가운데 찍은 사진이라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은 설명합니다. 서울역 앞에서 한 노숙인이 거리를 지나는 남자에게 “커피 한잔” 사달라 부탁했는데, 그 지나가던 남자는 자기가 입고 있던 방한복과 장갑, 그리고 5만원을 지갑에서 꺼내준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고, 감동어린 답글을 쓰니까 며칠 후 그 장면을 찍던 사진 기자가 설명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이름도 없고, 그저 눈이 오는 가운데 사진을 열심히 찍다가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와서 기자의 본성상 그냥 찍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사진 기자는 물어물어 노숙인을 찾아 인터뷰했고, 방한복, 장갑, 5만원권 이야기를 적었던 것입니다.

서울역 앞에서 일어난 이 일은 우리들의 가슴에 어떤 흔적을 남깁니다. 그날 그 노숙인에게 입고 있던 옷과 장갑을 건냈던 이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름도 없고, 말도 없지만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날 문득 찾아온 그런 순간에 그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리고 도울 수 있는 만큼 손을 내민 그 마음이 바로 천국에 속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 마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해주실 겁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그려온 그림을 부모가 액자에 넣어 보관하는 것은 그 그림이 가장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기 아이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는 낙서처럼 보여도, 그 그림은 부모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일 겁니다. 우리의 작은 선행조차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이렇게 쓰며 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하시는 일을 숨김없이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물질을 바치고, 그들 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 존재는 환해질 것입니다. 2021년 새해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사시겠습니까? 이제 제8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주님의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민기욱 목사(미국 트리니티 한인장로교회)  minics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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