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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Clubhouse)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2.19 16:20
▲ 특정 폰에서만 구동되는 SNS인 클럽하우스 ⓒ화면 캡쳐

이 시스템은 음성으로 대화하고,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작년 간간히 사용에 대한 언급이 있더니, 영향력 있는 이들로부터 요사이 핫해졌다. 설 연휴부터 체험기를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본다. 아고라 광장처럼 다양한 주제에 거침없는 대화가 오고가며, 격이 없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즐거움에 밤을 새우고 있단다.

전염병의 전 세계적 창궐로 비대면의 온라인 강의가 늘어났다

나는 아기를 직접 양육하여 시공간의 제약이 많은 전업주부다.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교육방식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뉘거나 업고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주최측이나 다른 수강자들의 아량 내지는 배려로 가능한 소수의 경우였다. 공공기관의 강의, 심지어 여성행사라도 아이와 함께라면 참여자체가 불가한 때가 허다했다. 그런 때면, 개인적으로 사정을 해보거나 공적으로 수강자를 위한 아이돌봄을 요청하였만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의 문제, 개인적인 해결의 문제이고 인식과 제도 구조는 여전히 정책 슬로건과 멀다. 나처럼 물리적으로 갇히는 이들이 많아지니 달라진 것일 뿐이더라도 일단, 나에게 큰 전환으로 인한 배움의 참여는 기뻤다. 두 기기로 동시접속하기 신공까지 발휘하며, 매일의 스케쥴을 채웠다. 방구석을 탈출하였다.

그러면서, 실시간 소통프로그램으로 사용하던 줌이나 ‘구글 미트’(Google Meet)에서 느꼈던 대안적 필요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느낀 ‘아재성’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얼굴보기에 익숙한 구세대들은 대체로 화면 켜기를 종용하고. 젊은 세대는 화면을 끄는 것만 아니라, 이름도 익명성을 갖고자 하였다.

말하는 권력들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는 어려웠다. 여전히 일방적 소통을 하면서 화면만 보고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단다. 통성명이라도 해야 어떤 이야기가 진행됐다. 수강자들의 소통반응을 확인, 기념 촬영이나 참여 인증 등 다양한 이유를 강사와 진행자들은 말하였다. 이에 화답하여 주변을 정돈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자신의 모습 보이기를 뿌듯하게 설정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화면배경을 바꾸는 것도 PC사용 환경에서나 가능하다. 운전하며 이동 중에 함께 하는 사람도 있다. 커튼을 치고 어두워진 방에서 아이를 재우며 참여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들으니, 많은 친구들은 화면을 켜라는 선생님의 말에 벽과 천정으로 화면을 고정하고 누워서 수업을 듣기도 한단다. 참, 어떤 경우라도 다양한 환경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될 각자의 마이크 음소거는 필수다.

말하는 지식권력에 대한 말 못 하는 젊은 저항이 통쾌하였다

아무리 얘기해도 화면을 켤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켜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적지 않았다. 통신환경이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에 대한 이야기는 제쳐두더라도 화면을 켠다한들 공유하는 첨부자료 외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나 수어가 사용된 경우도 거의 없었다. 삭제하는 것에 자연스러운 다수는 어차피 비대면 상황은 목소리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것이라는 경험적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클럽하우스라는 그것은 단순히 오디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해야 하고, 기존 이용자의 초대나 수락을 통한 연결접점이 필요하다. 폐쇄성과 희소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니즈를 만들고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인플루언서’(Influencer)와 ‘셀럽’(Celebrity)들을 통하여 초기 유저들을 확보하는 중이다. 이는 비즈니스 확장에 있어서 전문이거나 고가의 제품에 사용하던 구전마케팅이 온라인에서 진화한 방식이다.

과도기에 새로 나타난 ‘에어비앤비’(Airbnb)와 ‘우버’(Uber)는 처음 고객을 등록시키기 위해 집집마다 방문해야 했다. 이제는 온라인 파도타기로 휩쓸리며 플랫폼의 소비자들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들은 일정한 요건이 채워져 또 하나의 거대한 독과점 플랫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때가 되면, 베타버전이기 때문이었다며 오픈전환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회원이 몇 명되면 오픈하겠다는 넛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말할 권리를 찾았다며 잘난척 해봐야 그들이 인식하지 않는 이면의 기술과 권력이 말하게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의도에 따라 종속된 소비자일 뿐이다. 여전히 듣는 이들은 어떤 주제를 말하며, 침묵하게 만들지 만드는 힘이라도 겨우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매력을 갖는 것들은 결핍과 제한이 있어서란다. 증거라도 하듯이 폐쇄형 음성sns를 이용하기 위해 시장에서는 기기의 중고매물도 귀해졌고, 중고마켓에서 초대장을 사고 팔기까지 한다. 나는 만들어낸 필요에 자극된 선택하지 않음으로 자유를 누리련다. 재빨리 갈아타 얼리어답터로서 인증하는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을 sns에서 보는 것이 씁쓸하다. 그런, 엘리트 기독인. 할말 많은 그들은 교회의 참된 리더,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일까? 아는 것이 힘이라면, 힘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현혹할 치장되었으나 값싼 복음을 만드는 것은 보이콧!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권력을 흩으시며 무능하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따르려 묵묵히 작정한다. 그만 쓰고, 아이들과 함께 봄오는 소식을 알리는 풀꽃을 찾으러 들판에 나가야겠다. 거친 바람에 뉘어져 그 자리에서 가만히 꽃을 피워내는 삶의 자리를 지키는 힘없는 아름다움들이 곧 흐드러진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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