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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윌리엄 스코트의 조사 김계안에 대한 찬사20세기 초기 북간도 장로회 선교의 개척자 김계안 조사 ⑵
이이소 | 승인 2021.02.20 16:45
▲ 1940년대 초 동만노회 21회 참석자들. 앞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윌리엄 스코트(서고도) 선교사이다.

선교사 윌리엄 스코트는 1914년 12월 3일에 한국에 도착하여 42년 긴 세월이 보내고 1956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에 머물렀다. 그는 초기에 성진에서 권서인을 감독하며 만주지역 등 오지교회를 자주 방문하였다. 1922~24년 까지는 용정의 은진중학교 교장 직을 수행하였으며 1925년에 함흥영생학교 교장 직을 맡았다. 1928년에는 한국인 지도자를 키우기 위하여 영생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본국 캐나다로 돌아가서 긴 침묵 끝에 1975년에 <한국에 온 캐나다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캐나다 선교부가 세운 그리스도공동체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한국 상황의 변화를 담담하게 기술한 그의 책은 한국과 캐나다 교회에 전해주고 싶은 그의 최고 그리고 최후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캐나다장로회 선교에 대한 그의 평가이며 감사이고 그가 함께 협력했던 한국 사람들에 대한 진심의 토로이며 찬사이다. 그의 그런 책에 조사 김계안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그의 김계안 조사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와 추모일 것이었다.

그는 성진에 거주하며 용무 상 용정에 자주 들렸다. 그리고 용정교회의 제1 선임 장로인 김계안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의 사진에 1919년 캐나다 해외선교국의 부국장인 암스트롱의 북간도 방문 시 그와 조사 김계안과 암스트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선교사 스코트와 김계안의 관계를 엿보게 해준다. 그의 책 속에 나오는 조사 김계안에 대한 기록은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심장하며 심오하다.

“그가 지금까지 부처에게 바쳐 온 모든 헌신과 열정을 이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바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는 이 초신자를 환대해 준 그리어슨 박사와 교제하게 되었다. 그리어슨 박사는 그를 새로 문을 연 소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했으나 김씨의 온유한 정신은 원기 왕성한 한국 젊은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관해서 좀 더 배우게 하려고 그의 집에서 요리사가 되도록 했으나, 부처에 대한 김 씨의 오랜 기도가 그에게 만성적인 감기와 콧물을 남겨주었다.

이제 김계안은 전도자로서 그리고 권서인으로서 종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부했다. 따라서 초기 한국 그리스도교인들 중에 가장 결실을 많이 맺을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는 불교의 스님으로서 돌아다녔던 같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있는 모범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를 환영하였으며 북한 지역의 많은 교회가 김계안의 설교와 모범에 그 기원을 두게 되었다.”[1]

위의 글에 선교사 스코트의 조사 김계안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첫째 그를 초기 한국 그리도인들 중에 전도하여 가장 많은 결실을 맺은 사람으로 보았고, 둘째 그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있는 모범으로 생각하였으며 셋째 권서인으로 종사하기에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연구 노력하는 탐구자로 알았으며 넷째 그의 설교와 모범이 북간도를 포함하는 북한지역의 많은 교회들의 설교와 모범의 기원이 되었다고 파악하였다. 이는 선교사 스코트의 조사 김계안의 영적인 삶과 활동에 대한 진지한 평가이며 역사적인 기록이다. 그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북간도교회와 교우들을 사랑하며 섬겼던 개척자 김계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년이었을 때 절에 보내졌고 불교에 입문하여 수련생으로 게를 받았고 스님이 되었다. 선교사 스코트는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그와의 대화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한국은 불교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말문을 열었다. “많은 한국인은 부처의 도를 통해서 위안과 영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특질 중에 어떤 것들은 부처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는 더 낫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리스도에게 더 큰 빚을 졌습니다. 나는 부처가 나에게 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더 크게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제공해준 생활은 측량할 수 없이 풍부하고 부처에 의해 제공받은 것보다 더 충만했습니다.”

이것은 좋은 출발이었다. 이어서 나는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다음에 요약한 것처럼 여러 가지를 서로 비교하며 나에게 대답했다.

“부처는 고독의 애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산 깊숙한 곳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애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상생활의 길거리에서 우리를 찾으십니다. 부처는 인간이 지나갈 때 무심히 편안하게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위하여 고통스러워합니다. 부처는 삶과 모든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리스도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더 풍부한 생활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부처는 우리에게 고독한 명상과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기본적인 훈련과 더불어 사람들의 예배 중에 계시는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요청하십니다.”[2]

그의 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며 고난당하고 있는 북간도 조선인과도 하나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제공해준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위안과 영감으로 절망과 가난 속에 있는 조선인들을 싸매주며 치유하며 희망을 주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스러워하시며 질병에도 불구하고 더 풍부한 삶의 길을 보여주시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협력하여 망국 백성의 고난의 운명을 뛰어넘으며 복음 전파의 길,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미주

[미주 1] 윌리엄 스코트, <한국에 온 캐나다인들>, 212~219.
[미주 2] 윌리엄 스코트, 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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