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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짐신앙과 마음의 투쟁(시편 55:16-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2.20 22:36
ⓒGeorge Desipris/https://www.pexels.com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사순절 기간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던 그 주간에 대한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4복음서에 나타난 이야기와 각각의 복음서는 그 일주일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전달했는지를 살펴보았고, 재작년에는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작년 사순절에는 코로나로 인해 교회로 모이지도 못했기 때문에 짧은 말씀만을 나눴습니다.

예전에 전해드렸던 말씀도 지금 보면 조금 다르게 해석되어 다른 말씀을 전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시편 55편의 어려움

사순절 첫째 주일에 저희가 살펴볼 말씀은 시편 55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55편은 그냥 쭉 읽어내려가면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종종 보입니다. 제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12절에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이 부분이었습니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몇몇 주석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시편 55편은 시편의 다른 많은 시와 마찬가지로, 단어 자체의 해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하나의 특정한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단어에 대한 해석을 우리가 살펴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내용으로 보자면, 3-5절은 어떤 원수, 악인의 압제로 인해서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수와 악인으로 인한 고통의 호소는 시편에서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6-11절의 말씀은 예레미야 9장 1-6절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광야로 떠나고 싶은 심정과 성안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에 대한 고발입니다. 예레미야 9장 2절도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로 시작하여 거짓과 비방, 악행을 일삼는 백성들을 고발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부분을 통해 시편 55편이 예루살렘에 여행 왔거나 이주해 온 사람이 쓴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 시편 55편 6-11절은 예루살렘 외부인이 쓴 내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시편 55편 전체가 외부인이 적은 시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9장에서 모티브를 따온 시인의 사회 고발일 수도 있습니다.

시의 내용이 원수로부터 구원받기를 간구하는 내용에서 사회 고발로 넘어가는듯 싶을 때, 시의 내용은 또 바뀝니다. 자신의 원수는 사실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라고 말합니다. 함께 즐거움을 나눴고, 함께 하나님 앞에 섰던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18-21절로도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타나고, 앞서 말한 친구가 일반적인 친구가 아니라 조약을 맺은 이웃 국가를 나타내는 것처럼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 때문에 시편 55편을 왕의 시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시편 55편을 부분부분 떼어서 내용을 생각해본다면, 내용의 일관성이 없고 해석의 어려움으로 가득 찬 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편 55편과 우리의 고통

최근 학자들의 의견도 그렇지만, 저는 시편 55편이 몇몇 시와 글귀가 혼합되어 있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다른 이들의 시를 베껴서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요즘으로 치자면 메들리 곡처럼 다양한 시들을 하나로 묶어서 우리의 삶을 표현해 놓았다고 봅니다.

시편 55편은 하나님을 향한 탄식과 간구로 시작됩니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니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간구로 시편 55편은 시작합니다.

시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 악을 일삼는 이들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시인 외부에 있는 사람들, 시인의 주변인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시인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마음으로 심히 아파하게 만듭니다.

시인은 4절에서 사망의 위험이 자신에게 이르렀다고 말하는데, 이는 5절에 나타난 두려움과 떨림, 극심한 공포로 인해 생겨난 감정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아픔과 어려움, 힘든 일들은 보통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시인은 도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면 날아서 도망치고 싶다고 말합니다. 멀리 날아가 광야에 머물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광야를 척박하고 살아갈 수 없는 땅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구약성경 많은 곳에서 이런 의미로 광야를 말합니다. 하지만 때로 구약성경에서 광야는 적당한 풀이 있고, 적당히 살아갈 만한 곳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광야는 적당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과 아픔, 어려움을 피해 적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광야로 도피하려는 마음에 휩싸입니다. 8절에서 시인은 그곳이 자신의 피난처이며 폭풍과 광풍을 피할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곧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도피할 수 없으며, 지금의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거짓과 죄악과 재난이 있고, 악독과 압박과 속임수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이런 세상 속에서 도피할 수 없으며 계속 살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런 시인에게 또다시 고통이 찾아옵니다. 처음의 고통이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 의해 시인은 고통받습니다.

친구라고 여겼던, 동료라고 여겼던, 함께 기뻐했고, 함께 활동했던 이들에 의해 책망받고, 미움받습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이들에 의해 고통받게 됩니다.

도망갈 수도 없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당한 후에야 시인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을 구원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8-19절 말씀은 예전에 자신을 평안하게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회상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자신을 평안하게 도와주셨기에, 또는 예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들을 도우셨음을 알기에, 지금도 자신을 도우시리라는 믿음을 다시 일깨웁니다.

이런 믿음을 일깨웠음에도 시인은 20-21절에서 또다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과 화목했음에도 자신을 배신하고 거짓을 말하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안하게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음에도 시인은 또다시 분노에 쌓입니다. 그때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을 말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편 마지막 절인 23절은 자신을 괴롭게 만든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될 것이며 자신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리라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시편 주석을 쓴 바이저(Artur Weiser)는 시인이 마지막에 승리를 취하려는 복수심과 앙심에 지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 55편은 신앙의 해답을 주지 못한 채,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실패를 극복하려는 투쟁을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투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얻은 우리를 응답과 구원으로 이끄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믿음

시편 55편은 우리의 모습,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그 일들은 대게 외부로부터 시작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우리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족스러운 도피처, 우리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도피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보려고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하고 힘들어 보입니다. 살기 힘든 곳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살기 힘든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이들은 우리 옆에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을 떠올리며 간구합니다. 예전에 도우셨던 것처럼 지금도 나를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 신앙을 떠올렸음에도 우리는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합니다. 계속 그 마음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인의 고통을 영원히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도우신다는 신앙을 다시금 떠올리며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시편 55편이 이렇게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시편 55편은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있는, 앙심을 품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셔서 나의 마음은 평온하리라는 믿음은 가졌지만, 여전히 내 안에 감춰진 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음을 드러내며 끝납니다.

시편은 이렇게 끝났지만, 이 순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우리 때문에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우리를 원망하시거나 질타하시지 않으신 예수님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시편 55편의 시인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는 이런 마음까지 버릴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시편 55편의 시인은 우리의 인생,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놓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해보았고, 지금도 이런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짐을 내려놓음이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오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는 원망과 분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림으로 모두 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그 날에 우리 안에 오직 하나님 주시는 평안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만이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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