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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의 모범답안은 없지만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II (로마서 8장 10~13절)
홍인식 목사(더처지) | 승인 2021.02.22 15:24
▲ 인간의 생명 뿐만 아니라 온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Getty Image
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11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서 8장 10~13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올해 목회표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입니다. 일 년 동안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그것이 실천적인 삶에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용주의에 물들어 있는 요즘 사람들은 주로 단순하고 짜여 있는 답변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질문에 대하여 모범답안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신앙생활에서도 모범답안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신앙은 매우 역동적인 것이라서 모범답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각자 처해 있는 삶의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각자 나름의 답변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신앙이 생활과 연결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나 혹은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껍데기의 신앙일 뿐이며 결코 그러한 신앙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날지라도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는 몇 가지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전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로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따라서 그 영의 기운으로 우리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삶이야말로 하나님 사람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임을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가 계속해서 읽어가고 있는 본문인 로마서 8장 10~13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의 두 번째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생명 중심의 삶

사도 바울은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10절)

사도 바울은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제일 중요한 특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의,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올바르고 진정한 의미의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당시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종교 생활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모든 사람은 종교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는 그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가 그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기능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억압적인 기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종교적인 계명과 율법 때문에 시달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종교가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유대인들에게도 유대교의 율법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 혹은 이방 종교의 수많은 종교 예식은 사람들을 신 앞에만 나아가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신 앞에 서기만 하면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들지 못하곤 했습니다. 신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믿으면 믿을수록 그들의 삶에서는 생기와 활력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규범과 억누름만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믿으면 믿을수록 그들은 더욱 죽어만 갔습니다. 믿으면 믿을수록 그들은 점점 더 죄인이 되어갔고 그들의 삶에서 그들은 죄 때문에 죽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종교적 배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마의 사람들과 유대교 사람들에게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죄는 우리를 죽인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영을 진정한 생명을 향하여 살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명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때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생명 중심의 삶,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삶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은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해 삽니다. 생명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생명을 향하지 않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와 수고는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을 잃어가면서까지 해야 할 일들이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재물을 쌓아놓고 좋아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 12:20)

오늘 우리는 진정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믿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고 싶어서 믿음을 갖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우리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로 과격한 이단 종파들의 가르침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실지로는 죽자고 믿게 만드는 것이 이단 종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 내에서 혹시 이런 가르침은 없는 것일까요?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믿음은 믿음의 본질을 중요시합니다. 믿음의 본질을 회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사람들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생명을 갖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면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11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본질에 충실하기에 그들의 삶에는 늘 활기가 넘쳐 납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 있기만 해도 우리는 괜히 신납니다.

그러나 죽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본질을 외면하고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에 가득 찬 사람들 옆에 있으면 죽음의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생명의 향기가 나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세속적이고 욕망으로 가득 찬 역겨운 죽음의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이처럼 생명의 향기로 채우는 작업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면서 본질을 우선 선택할 삶의 가치로 삼는 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쉰다고 해서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그에게서 생명의 향기가 나야 가능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13절)

바울의 권고는 매우 간략합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사는 삶은 죽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몸의 행실들을 죽여가면서 살아가면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주장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말이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음에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살면 죽을 것이고 죽이면 살 것입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대립 되는 말을 연관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인생은 살면서 죽고, 그리고 죽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살고자 어떤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살고자 했던 바로 그 일 때문에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죽어도 좋다고 해서 했는데 바로 그 일 때문에 살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처럼 삶과 죽음이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인생의 모습에서 진리를 발견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명을 중심으로 살고자 할 때 반드시 죽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몸의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몸의 행실은 개인적으로는 나의 욕망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가 없는 일들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에 있어서 비본질적인 것과 관련된 행위들이 몸의 행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점차로 비본질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죽여 나갈 때 우리는 점차 진정한 생명을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빌 3:8-9)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버릴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몸의 행실들을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꾸준한 연습과 하나씩 하는 실천으로 인하여 점차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들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미리부터 실천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몸의 행실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실천적인 삶을 오늘부터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성숙이란 이처럼 버려야 할 것을 잘 구별하여 미리미리 버리고 끝까지 싸 들고 다니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말합니다.

이삿짐을 꾸리다 보면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이런 것도 지금까지 싸 들고 다녔구나.’ 하는 생각합니다. ‘미리미리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물건들도 너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약 2년 정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옷이나 구두 등은 사실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싸 들고 다닙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등등.

그런 것들이 오늘 우리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살림살이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은 조용한 시간에 우리 살림살이에서 버릴 것, 정리할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것도 삶을 평화롭고 단순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이삿짐을 싸면서 차라리 이 물건은 벌써 버렸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를 하듯이 우리네 삶에서도 빨리 버렸어야 할 생각들이나 습관들, 가치관들을 보면서 후회를 하기 전에 지금부터 버릴 것은 버리는 실천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사람으로 살기

일 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생명을 중심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 년 동안의 삶에서 많이 버리는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삶의 모습들,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비본질적인 것들, 중요한 가치들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욕망, 이러한 것들을 버리는 삶을 실천해 봅시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범답안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이 원리를 따라 각자의 서로 다른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실천적인 답변을 스스로 발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생명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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