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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누가복음 9:18-2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2.23 16:04
▲ Pietro Perugino,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 (1492)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평안’을 날마다, 매순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저와 성도님들이 ‘왕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드렸습니다. 이 정체성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더욱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해줍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던지 왕의 한 마디나, 작은 행동일지라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왕의 한 마디로 인해 생명이 좌지우지되기도 했고,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이다!’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의 삶도 이런 영향력을 갖습니다. 말 한 마디, 작은 사랑의 행동이 생각지도 못 한 놀라운 결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늘 잊지 않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절제, 금식 등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경건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 기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오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순절의 첫 주일을 맞아 저와 성도님들이 이렇게 다짐했으면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여전히 모릅니다. 오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온전히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이 일관된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에 관해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모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다시 예수님을 온전히 알아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의 첫 구절인 18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와 같은 질문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기적’들 때문인데요.

누가복음 8장 본문을 보면,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는 장면과 열 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되는 장면,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는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이라 기록되었으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기적 체험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상의 일들을 직접 체험하거나, 눈으로 보거나, 들은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을 오늘날 스스로에게도 적용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장로님이 자주 쓰시는 표현 중에 ‘도깨비 방망이’가 있는데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여긴다고 안타까워하시며 쓰시는 표현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속담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고, 듣지만 예수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궁금해 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오해합니다.

큰 코끼리에 올라탔던 개미들이 지극히 적은 부분만을 보고, 만지고서는 코끼리는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면서 각자 자신이 옳다고 말 한 어리석은 개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개미처럼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이 전부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이 속담과 이야기는 사람들의 편견과 어리석음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 또한 이렇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기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더욱이나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가 필요한 상황에서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그 기대가 높아지는 만큼이나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했던 제자들은 더 심하게 예수님을 오해하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이 예수님을 가장 오해하기 쉽습니다. 마가복음 8:31-32을 보시면,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겨서 항의했을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있을 것 같은 장면이 상상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다시 왔나?’, ‘엘리야인가?’,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가?’ 정도로 생각했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정치적 군사적으로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자신들을 해방시켜야 할 그리스도가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일은 상상도하기 싫은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말을 예수님이 하셨기에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겨서 항의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8:33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고백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처럼 대단한 착각과 오해 속에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사람의 일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예수님 스스로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고하시며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한 것이 아닙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제자들의 어리석은 오해가 더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나 예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길을 가지 않아. 내가 가야 할 길은 다른 길이야. 너희들은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어. 세상이 바라고, 욕망하는 ‘영웅’의 길이 아니라, 패배자, 실패자,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해! 그러나 이 길은 진정한 승리의 길이자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온전히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나의 욕망과 대면해야 합니다. 나의 위선과도 대면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나의 상처, 피해자 의식과도 대면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들만을 생각하는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깨닫고 살게 되면 사람의 일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됩니다. 또는 사람의 일이 믿음의 시각으로 달리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누가복음 9:22-23)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게 된 것처럼, 우리 마음의 비늘이 벗겨져야 예수님을 온전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의 일에 매여 있는 비늘이 벗겨지는 것만큼이나 예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사순절 기간 저와 성도님들이 “나의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침묵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영적 성숙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오롯이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은혜의 사순절 기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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