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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왕과 권력을 가지려는 제사장이스라엘 역사 알기 ㉔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1.02.25 15:16

「열왕기」와 「역대기」의 관점

이번 글에서는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타난 ‘요아스’ 시대에 관해서 비교하며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두 역사가 집단은 무엇을 전하려고 했는지 그 차이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요아스’에 관한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은 거의 유사합니다. 다만 큰 차이를 만드는 인물이 있는데, 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역대기 22장 11절」은 ‘요아스’를 구한 ‘여호세바(여호사브앗)’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역대기」의 진술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요아스’가 어떻게 성전에서 지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고, 제사장 ‘여호야다’가 구출된 아이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또한 ‘여호세바’가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제사장 ‘여호야다’가 무대 앞에 나타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앞서 던져진 질문들을 생각해본다면, 「열왕기하 11장」에 기술된 ‘요아스’ 구출과 ‘여호야다’ 혁명 이야기는 생각보다 허술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1장」에서 ‘요아스’와 제사장 ‘여호야다’의 연결점은 성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시작점에서부터 「열왕기」와 「역대기」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반역을 일으킨 제사장 ‘여호야다’라는 인물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요아스’가 성전에서 자랐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반면 「역대기」는 제사장 ‘여호야다’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을 둡니다. 「역대하 22장 10절」에서 ‘아달랴’ 통치가 시작되는 순간 등장한 제사장 ‘여호야다’는 「역대하 23장」에서 혁명과 개혁을 일으킵니다. 「역대하 24장」에서는 평생에 걸쳐 ‘요아스’를 바르게 보필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의 죽음 이후 남왕국은 악한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Paul Gustave Doré, 「아달랴의 죽음」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귀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é, 1832-1883)’의 판화 성경에 삽입된 ‘아달랴의 죽음’입니다. 「열왕기하 11장 16절」과 「역대하 23장 15절」의 기록에 따라 ‘아달랴’가 말이 다니는 길에서 죽임당한 것으로 그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왕국 ‘아달랴’와 ‘요아스’ 이야기에서 나타난 「열왕기」와 「역대기」의 차이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전에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우선 이 작업이 실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로 「역대기」의 기록이 「열왕기」가 허술하게 기록해놓은 역사를 보완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고고학적인 결과들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역대기」의 기록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 남왕국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고고학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가 이 시기 남왕국에 관해 거의 다루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가 기록한 ‘아달랴’와 ‘요아스’ 이야기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가지고 있는 역사 자료가 달랐거나, 「역대기」를 기록한 역사가 집단이 더 많은 사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점의 차이로 인해 약간은 다른 역사를 기록했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인해 발견된 「열왕기」와 「역대기」의 관점과 차이점이 두 역사서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이나 차이점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 집단의 관점을 확실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무엘상」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열왕기하」를 다루고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역대기」 역사가 집단의 관점을 말하려면 「역대상」까지 모두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글은 지금까지 다뤄왔던 두 역사서의 내용 속에서 발견된 관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작업입니다. 지금 발견된 관점이 이어져서 최종적으로 같은 결론을 도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역사가 집단이 보여주고자 한 핵심을 향하는 하나의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전제 속에서 ‘아달랴’와 ‘요아스’ 이야기에 나타난 두 역사가 집단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역대기의 제사장

먼저 「역대기」에 나타난 이야기를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열왕기하 11장」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호야다’입니다. 하지만 「열왕기하 12장 4절」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아스’로 바뀝니다. ‘여호야다’는 무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역대기」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여호세바’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다는 「역대하 22장 11절」의 진술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많은 학자가 이 진술을 너무 가볍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 기록은 조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이어(Jacob M. Myers)’는 『역대기 하』 주석에서 왕실과 고위 사제 간의 혼인에 주목하라는 말을 남기고 있지만,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역대기 하』, 국제성서주석 12-2, 178). WBC 『역대하』 주석을 기록한 ‘딜라드(Raymond B. Dillard)’의 경우에는 『역대하 24장 15절』에 나타난 ‘여호야다’의 나이를 근거로 ‘여호세바’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제사장 ‘여호야다’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습니다(『역대하』 , WBC 15, 293).

‘딜라드’의 이런 무던한 해석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이어’의 지적대로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제사장과 왕실 간의 혼인은 제사장 ‘여호야다’와 ‘여호세바’ 밖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면, 왕실과 제사장 집단이 혼인으로 인해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호세바’는 남왕국 ‘여호람’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남매입니다. 남왕국은 ‘여호람’과 ‘아달랴’의 혼인을 통해 북왕국 ‘아합’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이런 혼인 관계에 따른 남왕국과 북왕국의 동맹 상태를 지적합니다.

‘여호세바’가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남매라는 사실은 그녀 역시도 북왕국 왕조와 연결된 남왕국 왕조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런 남왕국 왕실의 인물과 혼인 관계였다는 사실은 제사장 ‘여호야다’ 역시 남북왕국 동맹 집단의 구성원 중 하나였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두 사람의 혼인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이는 제사장 집단에 의한 바른 남왕국을 세우기 위한 혁명이라기보다 내부적으로 일어난 반란이 됩니다. 물론 이 반란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아달랴’ 왕족 살해 사건이 전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사장 ‘여호야다’가 본래는 남북왕국 동맹체를 구성하는 일원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기록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혼인 관계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봐야 하는지 의심이 갑니다. 「역대기」가 앞서 살펴본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또 제사장 ‘여호야다’를 과도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첨가한 내용이라고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역대하 22장 11절」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도 이를 역사적 사실로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혼인 관계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혼인 관계가 사실일 경우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정치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둘의 혼인 관계가 사실이 아니라면, 제사장 ‘여호야다’와 공주 ‘여호세바’의 관계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의 연합과 같이 왕국 내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맺어진 연합 관계였으며, 이 연합체의 반란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집단은 제사장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대기 23장 1-3절」은 제사장 ‘여호야가’ 온 유다를 돌며 족장들을 포섭했다는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이는 「열왕기」의 기록과는 다릅니다. 「열왕기」에서는 일부 백부장들과 조약을 맺고 반역을 일으켰다고 말하지만, 「역대기」는 온 백성이 ‘아달랴’를 몰아내기 위해 힘을 모았고, ‘여호야다’가 이를 중심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합니다.

「역대기 24장 3절」은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두 아내에게 장가 들게 했다고 말하는데, 왕의 결혼까지 결정할 정도로 ‘여호야다’의 권력이 강했다고 말합니다. 사실 「역대기」는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올바른 사람들과 혼인시켰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넣었을 것인데, 지금 이 내용을 읽는 제 눈에는 ‘여호야다’의 권력을 과도하게 설정해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여호야다’와 ‘여호세바’의 혼인 관계 설정과 마찬가지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첨가했는데, 결과적으로 ‘여호야다’가 과도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역대기 역사가 집단의 무리한 수정 작업이 본래 자신들의 의도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열왕기하 12장」에서 ‘여호야다’가 무대 뒤로 퇴장하게 되는 사건도 「역대기」는 한 구절을 첨가하여 수정합니다. 「열왕기」에서는 ‘여호야다’ 역시 제사장들의 부패에 동참한 것처럼 그려지는데, 「역대하 24장 7절」은 성전 수리를 하지 못한 이유가 ‘아달랴’의 아들들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앞선 ‘아달랴’에 관한 기록과 모순됩니다. ‘아달랴’의 아들들은 유다의 왕족들입니다. 남왕국 ‘여호람’의 아들들이기도 하며, ‘아하시야’의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달랴’가 왕족을 몰살했다는 기록과 ‘아달랴’의 아들들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모순됩니다만, 「역대기」는 ‘여호야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모순된 진술을 첨가합니다.

성전 보수에 관해서도 약간의 수정이 일어납니다. 「열왕기하 12장 4-8절」은 ‘요아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바르게 보수하지 않고 바쳐진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제사장들의 이야기와 재위 23년 차에 ‘요아스’가 이런 제사장들을 꾸짖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12장 11-15절」에는 모인 돈을 수리하는 이들에게 넘기고 성전을 보수하도록 하는 규정과 이를 실시한 내용이 나타나는데, 「열왕기하 12장 15절」에는 그들에게 은을 줄 때, 회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2장」에서는 받은 은을 마음대로 사용한 제사장들과 돈을 셈하지 않아도 맡은 일을 성실히 행한 일꾼들의 대비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역대기 24장」에는 이런 내용이 삭제됩니다. 이런 내용은 삭제되고, 성전에 모인 은을 기술자에게 맡기는 일이나 공사 후 남은 대금을 정산하는 역할을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역대기 24장 15-22절」은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 우상을 섬기며, 악한 길을 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열왕기하 12장 2절」과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그 내용을 과도하게 증폭시켜서 ‘요아스’가 악해졌기 때문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까지 죽였다는 이야기로 만듭니다.

▲ William Brassey Hole, 「스갸라 살해」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윌리엄 홀(William Brassey Hole, 1846-1917)’이 그린 ‘스갸라 살해’입니다. 「역대하 24장 21절」에 따르면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다고 나타나는데, 그림에 나타난 장소는 성전 뜰이 아니라 성전 문밖으로 보입니다.

‘요아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하들의 반란에 의해 죽임당하게 되는데, 「열왕기하 12장 20-21절」은 그 이유를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대하 24장 25절」은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기 때문에 반역하여 ‘요아스’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역대하 22-24장」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호야다’입니다. ‘요아스’는 조연일 뿐입니다. 「역대하 23-24장」의 구조는 ‘아달랴의 죽음’-‘여호야다 개혁’-‘여호야다의 말을 잘 들은 요아스’-‘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정책을 뒤집음’-‘요아스의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말을 잘 들었을 때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역대하 24장 15-16절」은 ‘여호야다’가 130세에 죽었으며, 왕의 묘실에 장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라고 평가합니다.

▲ 아일랜드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of the Church of Ireland, Armagh) 스테인드글라스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아일랜드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of the Church of Ireland, Armagh)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아일랜드 대주교 로버트 그렉(Archbishop Robert Gregg)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것인데, 왼쪽에 있는 인물이 ‘여호야다’입니다. 가운데에는 「역대하 24장 16절」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로버트 그렉 대주교가 그 지역을 위해 쏟은 노력을 기리기 위해서 2019년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역대기」는 제사장의 역할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또 왕이 제사장과 대립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적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왕국 ‘웃시야’와 당시의 제사장 ‘아사랴’의 대립입니다(역대하26:16-23). 「열왕기하 15장 4-5절」은 남왕국 ‘웃시야(아사랴)’가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나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대기 26장 16-23절」에는 ‘웃시야’가 교만해져서 스스로 제단에 분향했다가 나병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레위기 10장 1-2절」에 나타난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잘못된 불로 분향했다가 죽은 이야기나 「민수기 16장 1-35절」에 나타난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했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처벌할 때, 향로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태운 이야기도 연상시킵니다.

‘웃시야’ 나병 사건은 실제 역사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열왕기」의 기록 속에서는 왕정 시대에 제사장의 권력이 이 정도로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대기」에서는 왕정 시대에 제정 분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제사장 집단은 국가의 한 축을 이룬 것처럼 말합니다.

실제로 제사장 집단이 일정 역할을 감당하기는 했겠지만, 왕에 가까운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기 이후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장 집단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이 권력을 굳게 세울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대기 역사가 집단은 자신들의 역사서 속에 제사장을 강조하며 그들의 권위를 높이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때로 왕을 가르치기도 하고, 때로 왕과 대립하기도 하면서 왕실이 사라져 없더라고 제사장 집단이 이스라엘 통치의 대리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의 성전

이제 「열왕기」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11-12장」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호야다’에서 ‘요아스’로 넘어갑니다.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다윗 왕조를 다시 세운 공은 있지만, 성전의 피폐해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배만 채운 인물로 그려지며 주인공의 자리를 ‘요아스’에게 내줍니다.

하지만 「열왕기하」의 ‘요아스’ 이야기에서 실제 주인공은 ‘요아스’도 아닙니다. 숨겨진 주인공은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7년에 걸쳐 건축됩니다(왕상6:38). ‘여호야다’의 반역은 ‘아달랴’ 7년 차에 이루어집니다. 이때 ‘요아스’의 나이는 7세였습니다. 7이라는 숫자를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처음부터 적었던 숫자인지는 의심이 가지만, 지금 우리 손에 놓여진 「열왕기」 안에서 이 둘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또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통일왕국을 40년간 다스렸습니다(왕상11:42). 「열왕기하」에서 남북왕국 통틀어서 40년간 왕국을 다스린 왕은 ‘요아스’ 밖에 없습니다. ‘솔로몬’ 이야기와 ‘요아스’ 이야기는 성전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이는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성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솔로몬’에 의해서 건축된 성전은 ‘요아스’ 때에 올바른 복구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요아스’의 성전 이야기에는 다른 장치가 하나 더 숨겨져 있는데, 은을 모으는 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정책은 이후 ‘요시야’ 때에 다시 나타나는데, ‘요시야’는 성전을 보수하면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왕하22:3-11).

「열왕기」의 숨겨진 주인공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세워지고, ‘요아스’ 때에 복구 정책이 수립되고, ‘요시야’ 때에 이 정책에 따른 바른 복구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성전 복구는 율법책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율법책은 바른 성전에서 나왔기 때문에 훗날 바벨론 포로기 이후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성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런 성전에서 율법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요아스’ 이야기 속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스라엘 역사 알기(11) 「요시야 종교개혁의 심장, 율법책은 어디에 있었을까」’에서 살펴보았던 내용인데, ‘요아스’의 은궤 규정은 이후 ‘요시야’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의 복선이 됩니다.

「열왕기하 12장 9절」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이 은궤를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를 높이기 위한 기술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은을 착복하는 제사장 집단 중 하나였음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역대하 24장 8절」에는 ‘여호야다’의 이름이 사라지고 ‘요아스’가 명령하려 은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만 나타납니다.

누가 은궤를 만들었는가는 「열왕기」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2장」은 잘못된 제사장 집단이 성전을 방치해 놓았을 때, ‘요아스’가 성전을 보수하며 바르게 세우려고 했고, 그때 율법책 발견으로 연결될 어떤 사건의 기초가 세워졌음을 보여줍니다. ‘요시야’ 종교개혁이라는 전환적 사건을 향해 가도록 이끄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아스’의 성전 보수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요아스’가 은궤를 실제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은궤는 존재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요아스’ 시절에 성전을 둘러싼 권력 갈등이 있었고, 이 갈등에서 ‘요아스’가 승리했다는 점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와 관련된 「열왕기」와 「역대기」의 차이점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그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열왕기」의 관점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2장」에 나타난 성전 보수 규정의 제정은 ‘요아스’에 의한 제사장 권력 견제이자 압박 수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관한 세부 내용이 실제 역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 왕실과 제사장 집단의 갈등이 존재했음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1-12장」과 「역대하 23-24장」의 내용을 통해 제사장 ‘여호야다’가 주동한 반란으로 인해 ‘아달랴’는 폐위되었고, 제사장 집단이 남왕국 안에서 큰 권력을 쥐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3장」과 「역대하 25장」 이후 제사장 집단이 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여호야다’로 인해 권력을 쥐었던 제사장 집단은 분명 ‘요아스’의 어떤 활동에 의해 그 권력을 잃게 됩니다. 꼭두각시였을지도 모르는 ‘요아스’는 성인이 되면서 제사장의 권력을 모두 왕실로 되돌립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생각해본다면 「열왕기하 12장 20절」에 나타난 ‘요아스’를 살해한 신복들이 어떤 집단과 연결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에서 ‘요아스’가 살해당할 만한 단서는 단 하나밖에 찾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 집단과의 갈등입니다.

이는 「역대하 24장 25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아스’의 신복들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요아스’를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죽였다고 말합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역대기」가 제사장 ‘여호야다’를 높이기 위해 수정해놓은 내용은 오히려 제사장 집단의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도 합니다.

앞서 「역대기」의 관점을 말씀드리면서 ‘왕실이 사라져도’라는 표현을 적었는데, 역대기 역사가 집단은 다윗 왕조 정통성이 사라지더라도 제사장 집단에게 해를 입히면 벌을 받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이는 「열왕기」와 완전히 다른 생각입니다.

「열왕기하 14장 5-6절」은 남왕국 ‘아마샤’가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모두 처형했다고 말합니다. 그에 앞서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섰다’고 말하며 남왕국 왕실 권력이 굳건하여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역대하 25장 3-4절」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열왕기」는 다윗 왕실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다윗의 자손들이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 위기를 극복해내는 중심에는 성전이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아달랴’는 남왕국 일부 세력의 연합체에 의해 살해당하고 왕위를 ‘요아스’에게 넘겨줍니다. 이 반란의 주동자 역할을 했던 제사장 집단은 남왕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얻게 됩니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꼭두각시였을 뿐인 ‘요아스’는 성인이 된 이후에 제사장 집단을 압박하여 권력을 왕실로 되돌립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제사장 집단과 이들과 연결된 집단은 ‘요아스’를 살해하고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했지만, ‘요아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마샤’에 의해 모두 처형당하고, 더 이상 남왕국에서 제사장 집단이 권력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역대기」의 내용 속에서, 포로기 이후 제사장 집단은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일련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노력의 일환이 독자적으로 기록한 역사서 「역대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예후’의 반란과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남왕국 ‘아하시야’ 이야기도 아마 다음 글에서 함께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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