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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아래서의 생각“부름 받은 대로 사는 삶”(고린도후서 4:4-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3.01 22:20
▲ 칩코 운동에서 여성들이 나무를 안고 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지난주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내려놓고 다시 예수님 알기를 시작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또는 예수님에 대해 몰랐다면 알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은 변화되고, 점점 더 평안해 집니다. 환경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어떤 지식을 얻게 되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라는 빛의 조명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가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나의 인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삶의 방향성이 이전과는 달라집니다. 삶의 방향성이 달라진다는 건, 사람의 일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일에 매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사람의 일에 매이면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님도 왜곡해서 받아들이면서 믿음 자체가 변질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로 파생되는 ‘그릇된 마음이라는 비늘’이 하나님의 일을 담고 있는 마음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작동되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우리 각자에게는 걱정과 고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 또는 어떤 관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장기간 해결되지 않는 걱정 들 또는 그 때 그 때 마다 발생하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이 생각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잖아요? 이 걱정 뒤에는 다른 걱정이 따라오고 또 다른 걱정이 떠오르는 식입니다. 그러다보면 밥 하고, 밥 먹고, 치우고, TV보다가 잠드는 거에요. 걱정만하다 하루가 다 지나갑니다.

걱정하다 안 되면 기도하겠죠. 그런데 기도의 내용은 또 어떻습니까?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걱정거리들을 이제는 입으로 뱉기 시작하죠. 교회는 나와 예배는 드리고 기도는 하지만 믿음의 방향성은 여전히 사람의 일에 매여 있습니다.

이렇게 매이다보면 말씀도 나 듣고 싶은 대로 취사선택을 하거나 말씀의 의미는 그렇지 않은데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듣는 잘못된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일에 매여 있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6:27)

오늘 본문 4절을 보실까요? “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으로는 “4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읍니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악신’은 무엇을 말할까요?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지 못하는 근심과 두려움, 그릇된 욕망, 삶의 경험, 확고한 가치관 등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이런 악신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설명을 합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조명이 마음속을 비추어서 어두움, 악신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와 우리에게 비추어주신 빛이 당신들에게도 동일하게 비추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빛의 조명으로 사람의 일에 매여 있을지라도 나와 당신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라는 용기와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거나,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주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으로 당신들도 이 엄청난 능력이 당신들 안에서 드러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순절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다시 알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베드로전서 2:20b-21을 보시면 “20b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21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빛의 조명을 통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드러나면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불렀고, 본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명확하게 보여주신 분입니다. 이런 삶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라도 베드로의 고백처럼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는 경우들도 많이 생깁니다. 이런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저항이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저항이 따라올까요? “아~ 오늘 좋은 일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못하네.” 혹시 이런 말을 입으로 또는 머릿속에서 한 적은 없으신가요? 때로는 타인이나 내 안에서 “네 삶이나 돌봐라.”라고 속삭일 지도 모르죠. 이런 유혹과 저항에 부딪혀 우리는 다시 사람의 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안에 엄청난 능력이 주어졌기에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빛이, 생명이 우리를 통과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 때문에 어떠한 고난과 박해가 앞에 놓여 있고 심지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8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얼마 전 책을 읽으면서 감동적인 사건 하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서 숲을 파괴하고 착취하려는 파괴적 폭력에 맞선 가르왈 지역 여성들의 생명평화운동 이야기입니다.

이 가르왈 지역의 남성들은 다국적 기업의 하수인들이 되어서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는 숲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이젠 제발 그만 하세요. 제발, 나무 좀 그만 배라 그러세요. 새들이 앉아 있을 나무조차 베어 버리면, 새들은 마을로 내려와서 우리가 애써 지은 곡식을 먹어버려요. 그럼 우리 아이들은 무얼 먹나요? 땔감조차 싹 쓸어 가면 우리는 뭘 가지고 밥을 먹나요?”

이상한 조짐이 보이자 마을 주민들이 숲에 모여 모임을 열고 있을 때, 다국적 기업의 대표와 이 마을 출신의 하수인 남성 사이에서 수상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계속해서 벌목을 할 수 있다고 장담했잖소?” 그러자 하수인이 쩔쩔매며 대답하기를. “아, 나리, 이제는 모든 게 변했답니다. 제가 나리께 말씀드릴 때만 해도 일이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답니다. 벌목이 계속된다면, 저는 오늘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을 겁니다.”

화가 난 건설소장은 여성들에게 소리 질러 말합니다. “무식한 아낙들아! 숲이 무엇인지 알아? 송진과 목재 그리고 외화란 말이야!”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숲이 무언지 진정으로 아십니까? 숲은 우리의 어머니, 흙과 물과 깨끗한 공기입니다. 식량이 떨어질 때면, 우리는 이 숲에 와서 풀과 열매를 모아다 우리 아이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당신들은 이 나무에 손 끝 하나 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며 여성들은 나무 등결을 한 아름씩 끌어안았습니다. 나무에 자신의 몸을 묶기도 했습니다. 협박과 위협, 회유가 있었지만 여성들은 결국 숲을 지켜냈습니다. 이렇게 토착여성들이 온몸으로 나무를 끌어안아 숲을 구해낸 ‘칩코 운동’은 이후 세계적으로 커다란 감동과 영성을 일깨웠다고 합니다._<깨어나는 여신>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보면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숲을 파괴합니다. 폭력을 저지르고, 거짓을 일삼습니다. 그렇기에 살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의 방식이 생명을 살릴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가르왈 지역의 여성들이 박해와 위협 속에서 무서워했을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켜냈습니다. 파괴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을 희생하는 평화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 생명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8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비장한 고백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지 않을지라도 말씀이 전하는 교훈은 예수의 생명이 나의 몸에, 그들의 몸에, 우리의 몸에 나타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1년인 오늘날 나에게 ‘하나님의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름 받은 대로 살기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사랑하면서 살고, 생명을 살리면서 살기 위해 무엇을 고치고, 버리고, 비우고, 선택해야 할까요?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3)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은혜가 없다면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볼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살피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내 안에 심어주신 놀라운 능력을 해방시키십시오. 이런 과정 속에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더불어 ‘사람의 일’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풀려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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