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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⑻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1.03.01 22:2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출 20,3-5a)

< 1 >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돌 판에 받은 계명이지만,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는 선언은 십계명의 신적 권위와 변경불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임의로 바꾸거나 자의로 해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명령을 참되신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표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의소소통의 방식은 ‘명령과 순종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순종이든지 아니면 불순종일 뿐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은 순종과 예배의 대상이지,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거나 부리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첫 째 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정체를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밝힙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억압받는 백성의 해방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을 이스라엘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또한 이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세상과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 속에 계시고, 역사에 개입하시는 분입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신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에 참여하지 않는 신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개입하신다는 표현입니다.

< 2 >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방식이 ‘질투’라는 것입니다. ‘질투’는 적대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도 드러납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신 4,24; 신 6,15).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퍼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저주를 그에게 내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신 29,20)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들이 주님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그는 당신들에게 대항하여 돌아서서, 재앙을 내리시고, 당신들에게 좋게 대하신 뒤에라도 당신들을 멸망시키시고 말 것입니다.”(수 24,19b-20)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신이라는 주장은 신을 형이상학적이고 보편적 사랑의 존재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매우 쩨쩨하게 들립니다. 사람들은 신이 공평하고, 냉정하고, 공정한 통치자로서 만인을 차별 없이 대하는 왕과 같은 존재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때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소유욕이 강한 남편(겔 16,38), 그럼에도 애정을 가진 남편처럼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정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의분을 느끼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입니다(요 11,35).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내 앞에서”라는 단서는 하나님을 우상들과 함께 예배할 수 없다는 제의적 명령임을 보여줍니다.

▲ Nicolas Poussin, 「Adoration of the Golden Calf」(1634) ⓒWikipedia

< 3 >

하나님은 만신전 안에 있는 한 명의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쇠를 녹여 만든 신상이나(레 19,4),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조각한 신상이나 돌기둥, 남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고(레 26,1; 신 4,16), 심지어는 숫염소, 송아지 형태로 인간이 손으로 만든 우상들과 함께(대하 11,15), 동시에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상들은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 아세라는 하늘의 여신으로 다산을 상징하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고대 근동에서는 번개의 신, 농경 신, 술의 신 등 수많은 신들이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는 계명은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함께 제의적으로 섬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는 다른 우상들을 믿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것입니다(삼상 12,21). 그러나 성서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고(출 6,5; 삿 2,18), 울부짖음을 들으시고(신 26,7; 시 40,1), 응답하시는 분입니다(대상 21,26; 대하 32,24). 

그러므로 우상 금지 명령은 죽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자 동시에 하나님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우상처럼 형상화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 어떤 형이상학적 관념에 가둘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인간적 욕망이 투영된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 4 >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소식이 없자, 아론을 부추겨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아론은 금모으기를 하고, 그 금으로 송아지 상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형상화합니다(출 32, 1-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 후의 이야기에서 알고 있듯이, 자신을 황금송아지로 형상화하고 섬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셨습니다(출 32,27-28). 

우상숭배는 보이지 않고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보이는 사물로, 사람이 조종 가능한 존재로 형상화하는 것이자, 동시에 참되신 한 분이신 하나님만 섬기지 않고서도, 다른 신적인 세력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우상, 하나님이 아니어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인간을 강력하게 유혹하면서 섬김 받는 우상은 무엇일까요? 재물이지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재물로 번역된 단어는 ‘맘몬’(Mammon)입니다. 돈, 재물을 뜻하는 헬라어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굳이 ‘맘몬’이라는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은 ‘재물’이 가지고 있는 신적 세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단지 교환수단이 아닙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되는 세상을 보면, 돈은 우리 시대의 우상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님,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만 옵니다. 그리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맘몬이라는 우리 시대의 우상을 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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