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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집단면역 그날이 오면2021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2월호 ⑴
양권석(성공회대학교) | 승인 2021.03.02 22:02
▲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 2월26일 서울 마포구보건소를 방문, 재활시설 종사자인 김윤태 의사(푸르메 넥슨어린이 재활병원)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과 신학”을 다시 시작하며

지난 3개월간의 휴식기간을 마치고 사건과 신학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동안 ‘사건과 신학’의 발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신학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되었고, 향후 2년간 이 잡지의 제작을 책임지게 될 기획위원회와 편집위원회도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제2기 ‘사건과 신학’의 새로운 면모가 조만간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사건과 신학’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보다 신속하게 우리들의 신학적 신앙적 판단과 상상력을 함께 나누기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주제와 내용면에서의 현장성과 사건성, 그리고 구성과 편집에 있어서 교회 안팎을 아우르는 에큐메니칼적이고 대화적인 성격을 처음부터 강조해 왔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건과 신학’ 역시 같은 원칙과 방향을 지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대, 성별, 관심분야 등에 있어서 훨씬 더 다양해진 새로운 편집진은 그 내용과 구성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과 삶을 나누는 새로운 2021년의 ‘사건과 신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번 2월의 ‘사건과 신학은’, 2월 26일에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11월이 되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는 방역당국의 희망에 초점을 맞추어, 표제어를 “2021년 11월: 집단면역 그날이 오면”이라고 정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필자들의 상상력이 풍부하게 드러나리라고 예상합니다. 함께 읽어주시고 또 평가해 주시면서, 서로의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건과 신학 편집위원회>

백신과 재난의 끝을 향한 기대

2021년 2월 26일 드디어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금년 11월에는 집단면역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방역당국의 발표는 재난의 끝을 곧 보게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게 한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환자 발생을 최초로 알린 것이 2019년 12월 31일이다. 그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1월 20일에 국내에서 최초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재난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몇 주나 몇 달도 아니고 1년을 넘겨서, 세계적으로는 1억이 넘는 감염자와 250만이 넘는 사망자를, 국내적으로는 9만여명의 감염자와 1천6백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서야, 최소한 의학적으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 자체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구를 벗어나 화성에서의 삶을 꿈꾸고, 불사의 삶을 성취 가능하다고 뽐내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 인간과 인간 사회가 내놓을 수 있는 성적표 치고는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1년 넘게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보건 당국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듯이, 백신은 그 자체가 최종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 재난이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 아직도 예측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방역당국이 희망하듯이 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백신을 맞아서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고 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감염병 재난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또한 없다.

혹자는 백신 접종이 시작된 상황을 두고 이제는 바이러스를 향한 인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바이러스가 먼저 인간을 공격한 것인지, 인간이 먼저 바이러스가 살던 곳을 공격한 것인지는 한참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닥치는 재난들을 이렇게 공격대 반격의 틀로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재난을 피하거나,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재난의 근본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이 과거 역사에서 일어났던 감염병 재난과 비교해 볼 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그 병원균의 확산 원인에 대한 엄청난 양의 과학적 정보와 데이터를 매일 같이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정보들이 가져다 주는 가장 긍정적인 기여가 단순히 미신적이고 이념적인 권위들이 무너지고 과학의 권위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는데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재난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었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과학적 정보들을 접하면서, 결국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재난의 원인이 결코 바이러스에게만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무자비한 자연의 착취가 결국은 바이러스를 우리 곁으로 불러냈고, 그 바이러스가 정작 죽음이 되고 재난이 되는 곳은, 서로 만나지 않고도 일도 하고 투자도 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팬데믹 상황에서도 물리적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공간이었다. 지난 1년간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되고, 코로나 19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그림들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의 주류 종교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모이던 신천지, 그리고 병원인지 수용소인지 알 수 없었던 대남병원, 이태원 발 확산 때 나타났던 성소소수자들을 향한 특별히 교계 언론들의 혐오의 시선, 콜센터와 택배물류작업장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합숙소, 그리고 이어지던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 등등…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 그들은 이 자본주의 사회가 평가하는 생산력을 이미 다 소진한 채, 더 이상 가치를 주장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생명들이 아니었던가? 성소수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가 이미 그 이전부터 권리를 요구할 권리를 박탈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콜센터의 근무자들, 물류창고 근무자들, 택배노동자들, 이들 모두가 사실은 언택트(비대면) 사회를 위해서 언택트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언택트 사회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노동하도록 내 몰았던 필수 노동자들이었다.

이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장과 발전과 안전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연을 도구화하고 대상화하고 타자화해 왔으며,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들의 마지막 삶을 무시해왔으며, 인종적, 문화적, 성적 소수자들의 삶과 고통을 방치해왔으며, 언택트 사회에 대한 장미 빛 비전에 취해서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의 위험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착취당한 자연 환경과, 같은 사람이면서도 권리를 주장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코로나 19바이러스는 재난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 왔던 것이다.

경제와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삶이다. 자연을 포함한 타자들의 고통에 기초한 경쟁과 성장과 안전의 도모가 결국은 이 재난을 불러 온 것이다. 경쟁하여 빼앗고, 소유하고 독점하여, 배타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울타리를 쌓아서, 그래서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재난을 야기한 것이다. 타자들을 고통을 향한 무관심과 무책임, 그래서 타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곧 나의 생존을 위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이 결국 이 재난을 불러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연을 포함한 타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방치한 채 내가 쌓은 안전한 도성이라는 것은, 끝내 나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내용의 경쟁과 성장은 결국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그 어느 때 보다 깊이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삶, 제대로 사는 삶, 더 나아가 영원한 삶의 추구를 통해서 자신을 증거해 왔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소심하게 주춤거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어느 때 보다 담대하게 정말 생명으로 사는 올바른 길을 증언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쟁과 소유와 배제와 독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삶을 멈추고, 자연과 이웃을 향해 서로 가슴을 열고 나누며 섬기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언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처지가 봉준호의 “설국열차”의 승객과 같은 처지 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향한 질주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체념 상태가 너무 깊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과 성장을 멈추고서라도 더불어 사는 길을 찾자고 하면 아마도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재난은, 지금까지의 인간문명이 보여준 경쟁과 성장의 삶이 지속되는 한, 지구상에서의 인간의 삶은 매우 위태롭다는 것을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

의학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집단 면역을 향하여

언택트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들, 재난 상황에서도 오히려 투자도 하고 돈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재난이기 보다는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집단면역이 이루어지고, 다시 정상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위한 기회 정도로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없이, 사회적 거리를 두지도 못한 채,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백신 접종과 집단면역이 실현된다는 것은 의료적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학적으로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것 이상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정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되게 만들었던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삶의 조건이 변화되어야 한다. 이들의 타자화된 삶은 바이러스가 오기 이전부터 있었고, 그래서 바이러스가 왔을 때, 재난으로 폭발할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집단 면역은 의료적인 차원에서만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성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이용하고 착취해왔던 자연을 비롯한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삶의 태도의 큰 전환이 없다면, 의학적 집단 면역은 미봉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2021년 11월이 되면, 집단면역이 이루어졌음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제는 자연과 이웃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추구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향해 새 출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백신의 면역 효과도 진정한 의미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고, 작은 실천과 함께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의학적 집단 면역이 이루어지는 11월이 되면, 어쩔 수 없음의 굴레를 벗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는 우리를 보게 되지 않을까?

양권석(성공회대학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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