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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대로 풀리지 않는다모두를 아끼시는 하나님(요나 3:7-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3.06 22:52
▲ 「Jonah Awaits the Destruction of Nineveh」 ©MultipleWorlds Media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저희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행하던 모습이 있다면 반성하여 회개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요나서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말씀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요나는 아시리아가 구원받는 것이 싫어서 스페인으로 도피합니다. 성경에는 다시스로 도망쳤다고 나옵니다. 요나가 배에 올라타 다시스로 도망가던 중에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키셨고, 요나가 탄 배를 위태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자신 때문임을 깨달은 요나는 자진해서 바다에 던져집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큰 물고기 속에서 삼 일을 보낸 후, 육지에 나오게 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합니다.

요나서 4장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회개를 선포한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이 당연히 회개하지 않고 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니느웨 동편에 작은 집을 짓고 성을 지켜봅니다. 하지만 요나의 생각과 다르게 니느웨 백성들은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요나서는 네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도 없지만, 이를 더 요약하자면 이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밋대의 아들 예언자 요나는 ‘요나서’뿐만 아니라 열왕기하 14장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북왕국의 예언자였고, 여로보암 2세 때(주전 785-745년)에 활동했던 예언자로 보입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에 따르면 요나는 여로보암 2세에게 영토 확장의 예언을 전했다고 합니다. 실제 역사를 추적해보면, 여로보암 2세 때의 북왕국은 영토 확장의 측면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북왕국의 영토는 북쪽으로 하맛 어귀까지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사해 바다까지 닿았습니다. 하맛 어귀는 이스라엘이 가장 강한 국가였다고 전해지는 솔로몬 시대의 영토 경계입니다. 이 경계를 회복한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이런 영토 확장을 이룰 수 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는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리아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 한 속국 간의 전쟁은 묵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아시리아 입장에서는 계속 반란을 일으키는 아람이 눈엣가시였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충실한 여로보암 2세가 아람을 공격하는 일을 용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요나서의 말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요나는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를 거부합니다. 적국인 아시리아의 구원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요나가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여로보암 2세 때에 북왕국과 아시리아는 종속국 관계였습니다. 북왕국은 아시리아를 등에 업고 엄청난 영토 확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호세아와 아모스의 예언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적으로는 부패와 포악이 가득 차 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요나가 아시리아를 이토록 미워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요나서에 사용된 단어 중에 상당수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사용된 단어들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어떤 사극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한 중견 배우가 자신도 모르게 “쑈 하고 있네”라는 애드립을 했고, 이것이 그대로 방송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쑈 한다”는 말은 사극의 배경인 조선 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이지만, 우리는 이 사극이 현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기에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요나서에는 후대에 사용된 단어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즉 요나서가 기록된 시기가 여로보암 2세 때가 아니라 그보다 한참 이후인 바벨론 포로기 이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 결정적으로 여로보암 2세 때에 아시리아의 수도는 니느웨가 아니었습니다. 니느웨를 아시리아의 수도로 삼은 왕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주전 705-681년)입니다.

니느웨는 주전 720년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 최소 15년 뒤에야 아시리아의 수도가 됩니다. 그리고 주전 612년 바벨론과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점령될 때까지 아시리아의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입니다. 실제 요나가 활동했던 시기에 니느웨는 아시리아의 수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로 인해 요나가 70살이 넘어서 니느웨에 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과도한 추측으로 보입니다.

요나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어떤 이들이 여로보암 2세 때의 예언자 요나의 이름을 빌리고, 시대 배경은 그보다 한참 후인 북왕국 멸망이 가까운 시기로 설정하여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나서는 거짓말이고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과거에는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글을 적는 일이 흔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나의 이름을 빌린 이들이 어떤 신앙을 전달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입니다. 그렇게 살펴본다면, 요나서는 구약성경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신앙과 신학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멀리 있는 말씀을 볼 필요도 없이, 요나서 앞뒤에 있는 오바댜나 미가만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과정에 이웃 국가의 멸망이 선포됩니다. 대부분 예언서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만든 이웃 국가들이 하나님에 의해 멸망할 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거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웃 국가는 멸망당하거나 둘 중의 한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침략자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면 이는 당연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적국이 멸망해야 이스라엘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요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적국이 자신들의 악을 회개하여 버리고 하나님의 길에 선다면, 이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일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의 구원으로도 이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폭력적 심판이 있어야 다른 누군가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공식이 아니라, 악을 버린다면 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있는 대부분 예언자의 선포를 뒤집어엎는 선포입니다.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은 심판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지만, 모든 사람과 생명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모두를 구원하고자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선언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 사실을 잊습니다. 요나가 4장에서 하나님께 불만을 늘어놓은 것처럼, 요나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모든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나만 사랑해주시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간구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서 중·고등학교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반에서 다섯 명이 하나님께 1등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1등으로 만들어주셔야 합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돈 잘 벌게 해달라는 기도는 정말 수많은 사람이 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들 모두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모두가 돈을 많이 번다면, 그것은 그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가치 없는 돈을 모두가 손에 쥔 상황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런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이런 간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간구의 근본에는 ‘저 사람 말고 나에게’라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모두가 다 같이 받을 수 없는 것을 간구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간구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번 주 로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로또 1등 시켜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복권 1등이 되는 상황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주실 수 있는 복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 마음의 평안, 육신의 건강, 행복한 삶을 허락하시는 분이시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서 나에게 주시는 분도 아니고, 다른 이들은 낮추고 나를 높이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똑같이 사랑하시고 똑같이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요나서에 나타난 요나는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께 불만을 표출합니다. 요나가 보이는 모습은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 자세가 아닙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이를 가르쳐줍니다.

요나서에 나타난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나와 같이 우리만 구원받기를 바라는 신앙,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신앙은 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지도 않으실 간구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간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똑같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에게 평안과 기쁨과 행복, 육신의 강건함으로 채우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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